♡피나얀™♡【여행】

숨이 턱턱 막혀오는 메밀꽃 순수

피나얀 2006. 9. 16. 18:37

 

출처-[오마이뉴스 2006-09-16 15:21]

 

▲ 숨이 차오르는 메밀밭 정경
ⓒ2006 윤희경
화전 밭머리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묵정밭 갈아 메밀을 심어놓으니 초록바다에 하얀 물결이 출렁입니다. 화전 밭이었지만 조만한 정성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섭니다.

어느 날 꿈처럼 하얀 순수로 꽃물을 여는 메밀꽃들이 좋아 한낮에 한 번, 밤중에 다시 메밀밭머리에서 꽃들을 만나 봅니다.

가을볕이 메밀밭에 내려 쬘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바다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가을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다가 바람이라도 한 줌 설렁거리면 메밀꽃 내움이 짜릿하게 코를 찔러옵니다.

▲ 메밀꽃망울은 분홍색에서 서서히 흰색으로 변한다.
ⓒ2006 윤희경
상현달이 떠오르기 시작한 윤칠월 초닷새 밤부터 메밀밭을 찾아갑니다. 밤중 메밀밭은 고요가 맴돌아 숨쉬기조차 죄송할 지경입니다. 보름달 배가 점점 차오르면 하품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이슬이 조금씩 내려 온 몸이 축축해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밭머리에서 짐승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머리끝이 섬뜩 곤두섭니다.

하현달이 기울자 밤마다 암노루가 메밀밭가로 내려와 어린아이처럼 울어댑니다. 그렇잖아도 희미한 달빛으로 으스스한데 노루마저 보채니 애잔하기 그지없습니다. 노루가 울면 재수가 없다는데 불긴한 맘에 손전등을 깜빡대자 울음을 뚝 그치고 산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 진홍색 꽃술에선 알싸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2006 윤희경
노루가 달아나면 또 다시 이슬이 내리고 고요가 밀려옵니다. 싸한 바람 속으로 물보라가 춤을 추듯 넘실댑니다. 메밀밭은 부서지는 바닷물이다가 소금밭이 되기도 하고, 양치기 목장처럼 아늑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파고듭니다.

오래 전에 읽은 <메밀꽃 필 무렵> 속으로 들어가 허 생원과 동이를 떠올리며 장돌뱅이들의 목소릴 다시 듣습니다. 강원도 봉평과 대화의 시골 장터를 떠돌며 맺어지는 혈육의 정은 아직도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애환 속으로 녹아내리는 메밀꽃 향내는 세월이 흘러도 마냥 풋풋합니다.

메밀꽃은 가지와 줄기 끝에서 여러 송이가 모여 꽃다발로 피어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같다 하여 ‘교화(簥花)’즉 메밀꽃이라 부릅니다. 메밀꽃은 대체로 흰색인 줄 알지만, 피어날 땐 흰색 바탕에 분홍색 꽃물로 차오릅니다.

▲ 흐드러지게 피어난 하얀 순수
ⓒ2006 윤희경
꽃잎이 커갈수록 하얀 순수로 변합니다. 한낮엔 가을의 아늑한 그리움으로 피어나 햇볕이 들면 ‘쨍’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다가서고, 밤중이면 고요와 적막감으로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다섯 가지 색을 가지고 있는 메밀, 꽃은 희고, 잎은 하트 모양으로 푸르며, 줄기는 붉습니다. 열매는 검고 뿌리는 노란색입니다. 줄기 속은 비어 허한 듯하지만 가뭄에도 끄떡없는 강인한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열매가 갈색에서 흑색으로 변해 메밀묵이 되기도 하고, 막국수와 메밀부침개로 입맛을 되살려내기도 합니다.

▲ 메밀 대궁은 붉고 뿌리는 노랗다. 다섯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
ⓒ2006 윤희경
가을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혀오는 메밀꽃 하얀 순수, 이 가을에 결혼할 신부에게 부케로 안겨주고 싶은 한숨 같은 꽃입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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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소개 : 윤희경 기자는 북한강 상류에서 솔바우농원을 경영하며 글을 쓰는 농부입니다. 올 4월에 에세이집 '북한강 이야기'를 펴낸 바 있습니다. 카페 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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