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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아 간 낙산사 해수관음보살상 앞에는 좌정을 한 채 기도삼매에 든듯 미동도 하지 않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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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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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이런 모습이 삭막한 거구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헛헛해 하거나 살벌해 할 거라는 느낌뿐입니다. 서글픔처럼 까마득하게 잊었던 그 모습이 번득 떠오릅니다. 군 입대를 하던 날, 하루에도 몇 번씩 손질을 하며 길게 기르던 머리카락을 삭둑 잘라내고 거울을 통해 바라보던 그 모습, 듬성듬성 흉터가 드러난 빡빡머리 자화상에서 느끼던 그런 서글픔이 명치끝에서 쿡쿡 치밀어 오릅니다.
예전처럼 무성했던 소나무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고, 울창했던 그늘숲을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시선의 초점을 맞추거나 마음을 의지할 뭔가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모든 것이 깡그리 잘려나가 적나라하게 흙바닥을 드러낸 낙산사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수술을 위해 홀랑 벗겨진 채 수술대에 올려진 환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수술에 앞서 이것저것을 검사하느라 찌르고 짼 환자의 몸뚱이처럼 민둥산이 된 오봉산은 홀랑 벗겨진 채 여기저기가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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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이 시작된 낙산사에서는 세세천년의 초속이 될 돌들을 다듬느라 뚝딱뚝딱 망치소리가 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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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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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치고,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타버린 푸른빛도 돋아나고, 사라진 나무그늘도 드리우며 예전의 모습들을 찾아가겠지만 복원이 시작된 낙산사의 모습은 정말 수술대에 올려진 환자의 모습, 사고 때보다도 수술대에 올려지면 더 처참해 보이는 환자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낙산사는 복원 중, 돌 다듬고 나무 켜고
7번 국도를 달리다 낙산사 일주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조경공사 중이라 차량을 통제한다는 입간판이 보이고, 이미 진입한 차량들은 유스호스텔 주차장으로 안내합니다. 주차를 하고 낙산사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나마 솟아 있던 숯 검댕이 나무들까지 깡그리 잘라버려 민둥산이 된 오봉산에는 굴삭기들이 게처럼 옆걸음질을 하며 흙을 파거나 싣고 있습니다.
홍예문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뚝딱뚝딱' 석수장이의 망치소리가 들립니다. 흐르는 땀을 쓱쓱 장갑 낀 손으로 문질러 가며 노련한 망치질로 거친돌들을 다듬어 갑니다. 불에 그슬리고 숯검정이 묻어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던 홍예문 석축이 철거되고 새살처럼 뽀얀 돌들로 깔끔하게 축성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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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에 그슬렸던 홍예문 석축이 철거되고 반듯반듯 귀를 맞춘 뽀얀 돌들로 축성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진 아래는 철거 된 홍예문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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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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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다듬어진 돌들이 바람 한 점 스며들거나 빠져나가지 못 할 만큼 틈새 없이 차곡차곡 귀를 맞추며 쌓여지고 있었습니다. 축성되고 있는 홍예문 자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그곳 역시 눈길이 허전합니다. 알몸으로 허허벌판에 버려진 것처럼 눈길에 걸리는 게 없으니 머릿속까지 허전해집니다. 바리깡(이발기계)으로 깡그리 밀어낸 민머리처럼 주변 사방이 빡빡 민 민둥산입니다.
비록 불길에 그을린 나무들일지언정 나무들이 서 있을 때는 눈길조차 허전하지는 않았는데, 나무들을 깡그리 베어낸 낙산사는 아무리 봐도 허전함뿐입니다. 빡빡머리 때 머리가 시리면 머리를 쓰다듬던 습관이 돋아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느라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법당 복원에 소용되는 나무들도 신토불이 양양산 소나무로
헛헛하기만한 눈길을 코앞으로 돌리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 실린 트럭이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나무들이 그득한 대형 창고가 보입니다. 직감적으로 전소된 전각들을 복원하는데 소용된 기둥이나 대들보 그리고 서까래나 문틀을 짜고 다듬기 위해 옮겨오는 재목들임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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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토불이! 법당을 복원하는데 소용되는 목재들은 양양에서 생산되는 소나무만을 사용하는 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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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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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민의 성원으로 복원되어 세세천년을 이어나갈 전각들에 뼈대가 될 나무라고 생각하니 예사롭게 보이질 않습니다. 굵은 나무, 조금은 가느다란 나무, 긴 나무, 조금은 짧은 나무, 대형 트럭에 실려 온 나무들은 통풍이 잘되게 하늘만 가려진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습니다.
탑돌이를 하듯 나무가 쌓이고 있는 창고를 돌고 돌았습니다. '낙산사 법당 복원불사용 양양지역 우리 소나무입니다'라는 글과 인사말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양양지역에서 소용될 목재들이니 양양지역에서 자란 소나무들만을 사용하는가 봅니다. 가볍고 쉽게 생각하면 훨씬 굵고 반듯반듯한 수입목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신토불이처럼 제 땅에서 자란 나무라야 양양지역의 습도나 온도에 제격일 테니 양양지역 소나무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입니다.
나무 창고를 돌아 원통보전이 있던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발굴조사를 하느라 바닥은 온통이 파헤쳐져 있습니다. 정말 큰 수술을 하기 위해 살가죽쯤은 발기발기 찢어낸 듯한 아픔이 배어나오는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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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였겠지만 이렇듯 파헤쳐진 모습은 가슴에 찬바람이 돌도록 허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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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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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비틀어진 딱지처럼 군데군데 돌 더미가 보이고, 언제 적 건물의 초석이나 경계였는지 모르지만 반듯한 돌들이 메스자국처럼 길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나마 있던 이런저런 가건물들조차 모두가 철거되고 나니 원통보전 앞은 황망할 뿐입니다. 그대로 남아 있는 원통보전 앞 석탑을 돌고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생채기처럼 남아 있는 원통보전 담장 길을 돌아 그 좋기만 하던 오솔길로 접어드는 순간 서러움 같은 허전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어 닥친 태풍이 남긴 상처들
좋다고,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좋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오솔길 역시 까까머리 민둥산입니다. 치부처럼 맨땅을 다 드러내놓고 구릉을 따라 밋밋한 곡선을 그린 황망한 풍경입니다. 술래처럼 빼곡한 나무들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던 보타전도 나신처럼 고스란히 다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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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보타전도 그대로 드러나고, 멀리 해수관음보살상까지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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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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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가도 허전하고 삭막할 뿐입니다. 거칠 것 없이 멀리 내다보이는 바다도 시원하거나 후련함보다는 허전한 느낌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나무들은 밑동이 삭둑 잘린 채 더 이상 보이질 않고, 둘이 걷기에 딱 좋았던 오롯한 오솔길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화재 때도 용케 피해를 면했던 보타전 지붕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군데군데 기왓장이 보이지 않고 황토 빛 흙들이 여기저기 뭉쳐져 있습니다. 지난여름 태풍이나 얼마 전 폭우 때 기왓장이 날아가고, 기왓장이 벗겨지니 그 아래 있던 흙들이 흘러내린 모양입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통증을 보듬으며 보타전 뒷길을 돌아가니 해수관음보살상 앞입니다. 모든 게 뻥 뚫린 듯 망망하기만 합니다. 스님 한 분이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 좌정을 한 채 기도삼매에 듯 미동도 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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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친 데 덮친 격, 지난번 태풍으로 관음전 앞은 무너지고 그나마 남아있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뿌리 채 넘어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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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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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장마에 무너진 해수관음전 앞쪽엔 파란색 비닐이 상처를 동여맨 붕대처럼 늘려져 있고, 축대를 쌓는 인부들의 손길만 바쁘게 움직입니다.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곳에서는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뻥 뚫린 공간입니다. 낙락장송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의상대도 한눈에 드러나고,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속초 쪽 해안마을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투정이라도 부리듯 땅바닥을 툭툭 걷어차며 비탈길을 내려오니 보타전입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보았던 보타전 지붕은 지난 태풍에 입은 상흔이 역력했지만 앞쪽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건재합니다. 누각으로 보타전 앞쪽에 세워져 있는 보타락에는 얼마 전 복원 된 범종이 여행객처럼 놓여 있습니다.
보타전을 돌아 다시금 일주문으로 나가는 언덕에는 너덧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뿌리 채 뽑힌 쓰러져 있습니다. 화마를 피해 겨우 남아 있던 소나무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어 닥친 지난 태풍에 넘어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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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락장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의상대도 누런 색깔로 비춰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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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박고 있어야 할 뿌리들을 고스란히 드러낸 소나무들은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말라갈 것입니다. 아직은 싱싱해 보이는 소나무가 주검처럼 나뒹구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산불이 번지지 않아 빼곡한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면 그깟 태풍쯤 별것 아닌 듯 서로를 의지해 버틸 수 있었겠지만 듬성듬성 외롭게 남아 있던 소나무들은 태풍을 이겨낼 힘도, 버틸 기력도 상실했던 모양입니다.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사는 인간들에게 보여주는 자연의 가르침, 제 아무리 튼튼하고 잘났어도 혼자는 살 수 없으니 더불어 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법문을 보는 듯합니다.
철각의 소유자인 스님이지만 복원원력의 중압감은 버거웠던 듯
얼마 전 낙산사 주지인 정념스님이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먼 길을 온 김에 인사나 드릴 생각으로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뵐 수가 없었습니다. 치료차 출타를 하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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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복원되어 올겨 온 동종이 보타락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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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뵙기를 포기하고 경내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보살(여신도)에게 스님의 근황을 여쭸습니다. 작년에 화재를 당하는 순간부터 스님께서는 불철주야, 동분서주, 종종걸음을 치며 뒷수습을 하고, 복원불사에 전념하느라 하루 한시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스님처럼 1년여 동안 그렇게 생활하면 무쇠다리라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말도 덧댑니다. 스님은 당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고 1년여 이상을 그렇게 불사원력에 전념하다 보니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겨 병원치료를 받아 회복중인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봉정암 주지를 역임하면서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그 멀고도 험한 봉정암 길을 오르내려도 끄떡없던 철각의 다리였지만, 전소된 낙산사가 세세천년을 이어나갈 국민들의 낙산사로 반듯하게 복원하여야 한다는 원력의 중압감만큼은 버거우셨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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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암 길도 일주일에 몇 차례 씩 오르내리던 스님이었지만 복원불사에 전념한 1년 무게는 스님의 철각조차 견디기 힘들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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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임윤수 |
타버린 나무들이 잘려나갈 때마다 지켜주지 못한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그 푸른빛을 다시금 복원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느라 한 그루 한 그루의 밑동을 어루만지며 원력의 의지를 세웠을 거니 낙산사 안에서 걸은 거리만도 수 백리가 넘을 듯합니다.
모든 것을 후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도와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불사를 진행하려다 보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이런저런 갈등도 있을 수 있고,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 갈등과 어려움이 천 근 만 근의 무게로 육신의 다리를 압박하니 철각인 스님의 다리도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낙산사가 원만하게 복원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1년여 동안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정부당국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차분하게 준비를 하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는가 봅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라면 입었던 환자복도 홀랑 벗기고 머리카락조차 빡빡 밀어내야만 하듯 지금의 낙산사 모습이 그랬습니다.
불에 탄 전소물들이나 불에 그슬린 나무들조차 깡그리 치워지거나 베어져나가 벌거벗겨진 환자의 몸처럼 처음보다 훨씬 처참해 보기거나 을씨년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복원을 위한 과정이며 새천년을 시작하는 출발일 뿐입니다.
찾아주는 발걸음이야 말로 아름드리 소나무와 낙산사를 복원하는 도반의 여정
늦가을이 지나고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 겨울이 되어도 낙산사에서는 세세천년을 이어나갈 복원불사의 열기는 식지도 끊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법당을 짓는 데 소용될 나무기둥이나 대들보를 다듬는 소리가 톱 소리나 대패소리로 울려 퍼질 것이며, 주춧돌을 다듬으며 나는 망치소리 또한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셨고 관심도 보이셨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도 도움도 조금은 시들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때쯤, 복원이 시작되고 있는 이때쯤이야 말로 회복의 원기가 될 수 있는 관심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름드리 소나무일지언정 주변에 의지할 소나무들이 없어지니 지난한 태풍에 뿌리를 드러내고 넘어지듯, 낙산사 스님들이 제아무리 아름드리 소나무일지라도 함께해주고 더불어 주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다면 너무 외롭고 힘든 불사가 될 듯합니다.
불에 그슬려 잘려나간 나무들을 대신해 꾹꾹 발자국을 남겨주는 것이야 말로 낙산사를 지켜내는 아름드리 소나무 같은 스님들을 외호하는 신장의 손길이며, 세세천년을 이어나갈 낙산사 복원에 동참하는 보시의 발걸음, 도반이 여정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