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그리스② 과거를 품은 신화의 도시

피나얀 2006. 11. 9. 21:01

 

출처-[연합르페르 2006-11-09 11:33]




우아하고 우람한 '파르테논' 신전과 번잡하고 시끄러운 아테네의 거리 풍경. 수천 년의 간격을 두긴 했지만 같은 민족이 그려낸, 믿을 수 없을 만큼 모순적인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멋지고 자극적인 볼거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신의 영역인 아크로폴리스로 쏠려 있다. 그러나 파르테논 신전과 도시 아테네는 모두 전쟁과 지성의 여신인 아테나에게 바쳐진 산물이다. 그래서 파르테논과 아테네는 동체(同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둘의 주인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이다.

 

그리스 신화의 첫머리를 들춰보면 '크로노스'라는 신이 나온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인류는 전쟁과 죄악이 전무한 풍요로운 황금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그는 신들의 제왕으로 알려진 제우스뿐만 아니라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의 아버지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후손에게 권위를 빼앗긴다는 신탁을 듣고는 자식을 잡아먹는 요상한 습성을 갖게 된다. 이를 보다 못한 제우스의 어머니가 아기처럼 보자기로 싼 돌을 크로노스가 삼키게 해서 자녀들을 모두 구해낸다. 결국 크로노스는 권좌에서 물러나 이후에는 신화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창조한 그리스 사람들이 훗날 크로노스의 기구한 운명을 따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서양 문학의 효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이고, 서양 철학의 출발점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테네 공항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리스 맥주의 광고 현수막에는 그리스가 수출한 단어가 5만1천807개라고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고, 짐을 나르는 카트에는 '신화가 당신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인쇄돼 있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그리스가 없다면 현재의 서구 문명도 없다'고 주창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그리스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리스 문화를 존중한 로마에게 지중해의 패권을 넘겨준 후로는 크로노스처럼 유럽의 변방으로 전락한 것이다.

 

로마 역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당시에 깔았던 길들이 여전히 튼튼하게 기능하는 것처럼 오늘도 서양 문화의 단단한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로마 제국 시기에도 문화적으로 수도 로마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자부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들으면 무척이나 억울해 할 듯하다.

유럽 같지 않은 유럽의 본향

 

그리스 신화를 읽고 상상력이 풍부해진 이방인이라면 기대감을 안고 아테네에 들어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내 실망해서는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지독한 교통체증과 대기를 뒤덮은 희뿌연 스모그, 유럽 같지 않게 지저분한 길거리가 혼합돼 그저그런 대도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이곳에 머물렀던 역사가 토인비는 '위대한 문명을 일군 그리스인들은 어디로 가고 초라하고 무게에 찌든 농부만 남았는가'라고 한탄했다는데,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생활이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잠시 유보해두길 권한다. 겉모습만 흘깃거리고 나서 아테네를 한물 간 왕년의 스타로 업신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얼굴이 변했다고 해서 연기력이나 가창력까지 쇠퇴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시아에서 로마의 유적은 항상 관광객의 이목을 끌고 칭송을 받지만 아테네에서는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대다수다. 일례로 제우스 신전 바로 옆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은 찾는 이가 없어 처량하기만 하다. 비슷하게 생긴 아치가 터키의 안탈리아에서는 인기 만점이지만 말이다.

 

아테네는 휴양지가 아니지만, 여행할 때 조금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을 필요가 있다. 파르테논 신전을 제외하면 딱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곳도 없고,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여유롭기 때문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평온하고 부담이 없다.

 

사실 아테네 시내에서는 지도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없다. 도로들이 반듯하지 않고 구절양장의 산길처럼 구불구불하다. 택시기사도 혼란스러워 하는 미로 같은 도시에서 황색의 국회의사당이 버티고 있는 신타그마 광장(Syntagma Square)마저 없었다면 이곳이 초행인 사람들은 더욱 난처했을 것이다. '헌법'을 뜻하는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 중앙부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사이에 위치한 플라카(Plaka)는 상점, 레스토랑, 술집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인사동 같은 곳이다. 플라카에는 토요일 오후를 맞이해 길거리로 나들이를 나온 사람이 더욱 많아진 듯했다. 행인 입장에서는 좁은 길을 점령해버린 탁자들이 거추장스러웠지만, 천막 아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안락한 장소일 뿐이었다.

 

 

플라카를 빠져나와 골동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로 향했다. 예전에는 어느 가정집에서 귀중품 취급을 받았을 축음기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도자기, 공장에서 다량으로 찍어낸 것 같은 싸구려 놋쇠용품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다.

 

파리 벼룩시장에 가져가면 훨씬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도 부지기수였다. 인근 시장에서는 그리스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가죽 샌들과 수세미가 지천이었는데, 정작 그리스 사람 중에는 가죽 샌들을 신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다시 아리아드네의 실을 받고 미궁으로 떠난 테세우스처럼 복잡한 소로를 통과해 대망의 아크로폴리스로 발길을 옮겼다. 다른 유럽의 도시들은 건축물의 높이를 교회의 첨탑 아래로 제한하는데 반해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가 기준이다. '높은 도시'라는 뜻의 아크로폴리스는 실제로 150m 내외의 언덕에 불과하다.

 

미끌미끌한 대리석 바닥을 밟고 웅장한 문을 지났다. 주인공인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하늘로 치솟은 그리스 기둥의 위엄이 전해져왔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으로만 숱하게 봐왔던 파르테논 앞에 선 순간, 꿈인가 했다.

 

다만 형체가 온전하지 않아 아쉬울 뿐이었다. 17세기에 터키 군이 쏜 포탄의 파편에 맞아 신전이 손괴됐고, 지붕의 일부는 영국에게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의 보금자리를 파괴한 원인은 싸움과 욕심이었다. 문득 인간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면 먼 훗날에는 상처 입은 파르테논 신전마저도 사라지게 될까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