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11-17 12:18]
인구 350만 명의 대도시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셔츠를 갈아입지 않았다면 셋 중 하나다. 추저분하거나, 여벌의 옷이 없거나, 옷깃이 때를 타지 않았거나…. 멜버른에서는 3번째 이유가 들어맞는다. 도심 면적의 절반이 녹지대여서 한 셔츠를 며칠간 입어도 깨끗하다.
멜버른 여행은 사계절 푸른 공원을 거닐며 여유롭게 시작하는 게 좋다. '정원의 도시'라는 별호답게 도심 곳곳에 광활한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즐비한 피츠로이 공원(Fitzroy Gardens)과 트레저리 가든(Treasury Gardens)은 도심 동편에 서로 맞닿아 있는데, 축구장 10개가 들어서도 공간이 남을 정도다.
산책로를 따라 싱그럽고 화려한 빛깔의 이국적인 꽃이 피고 연못에는 수련과 물고기가 노닌다. 잔디밭에서 풋볼을 즐기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호주 대륙을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의 오두막(Cook's Cottage), 80여 년에 걸쳐 지어진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도 품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공원에서 워밍업을 마쳤다면 이제 본격적인 시티투어에 나설 차례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플린더스 역(Flinders Station)을 멜버른 여행의 기점으로 삼는다. 1910년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황금색 건물로 고풍스러운 운치가 흐른다. 도심을 운행하는 전차와 시 외곽으로 나가는 기차가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거나 경유한다. 야라 강(Yarra River)과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이 맞닿아 있어 늘 인파로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친다.
플린더스 역에서 시티 서클 전차(City Circle Tram)에 올랐다. 시티 서클은 외관이 붉은색으로 장식된 무료 전차로 10분 간격으로 운행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도심 테두리를 덜컹거리며 약 30분에 걸쳐 일주했다.
시티 서클 이외의 다른 전차는 모두 유료였다. 노선에 따라 제각기 숫자가 적혀 있었다. 요금은 전차에 올라 티켓 발매기에 동전을 넣는 방식이었다. 간혹 검표원이 승객의 표를 확인하는 경우가 있어 무임승차를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전차는 호주의 다른 지역에선 교통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된 지 오래다. 그런 애물단지가 멜버른에선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가이드 왈(曰), 멜버른 시민들은 복잡한 도로체계와 교통체증을 감수하는 대신에 호주 유일의 문화유산이자 관광명물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전기로 운행하기에 매연도 없다.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는 게 세상이치다.
전차처럼 멜버른의 오래된 유물들도 앤티크 대접을 받았다. 옛 건축물도 마찬가지였다. 플린더스 역처럼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9세기에 빅토리아풍으로 지어진 후 무역회사나 클럽 등으로 사용되던 많은 건물들이 지금은 관공서와 호텔 등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리스신전을 옮겨놓은 듯 육중한 기둥과 조각상이 돋보이는 관청과 객실 천장 높이가 5m에 달하는 부티크 호텔이 시내 곳곳에 자리했다. 건축물은 보존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온기가 계속 흘러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전차는 쇼핑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대형 백화점과 아케이드가 위치한 버크 스트리트(Bourke St.), 명품 브랜드숍이 모여 있는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 등 쇼핑 명소마다 정차했다. 특히 도심 북쪽에 위치한, 멜버른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은 한번쯤 방문할 만했다.
19세기 중반 건축양식을 감상하고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기에 좋았다. 서울의 남대문시장처럼 탱크와 비행기만 빼놓고 다 있을 정도로 상품이 다양했다. 물론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카우보이 모자, 양털을 깎을 때 나오는 라놀린 성분의 화장품 등 농축산 관련 제품을 제외하면 대개 수입품이었다. 산림보호를 위해 이쑤시개도 수입하는 나라이다 보니 공산품은 중국산이 대부분이었다.
전차를 이용해 도심을 둘러봤다면 이제 야라 강 크루즈에 오를 차례다. 야라강은 서울의 한강처럼 멜버른을 남북으로 가르며 흘렀다. 플린더스 역 뒤편에 크루즈선박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류 투어와 아래로 내려가는 하류투어로 나뉘었다.
크루즈 이후 코스는 야라 강변으로 해질 무렵 산책하기에 좋았다. 카페와 레스토랑, 바와 펍이 밤늦게까지 노천과 테라스에 테이블을 설치해 야경을 감상하며 차와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남반구 최대 규모로 알려진 크라운카지노(Crown Casino) 앞에선 매일 밤 불의 향연이 펼쳐졌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정시에 10여 개의 대형 기둥이 밤하늘로 수십m 높이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
남다른 자긍심이 숨 쉬는 도시
멜버른은 상류계층의 유럽 이민자 중심으로 조성된 계획도시다. 전통의 가치와 질서가 중시된다. 시드니가 유형자와 하층민의 애환이 서린 곳이라면, 멜버른은 처음부터 경제적 기반을 갖춘 계층이 모여 살았다.
더구나 19세기 중반 금광이 발견되면서 그야말로 배부르고 등 따스한 도시가 되었다. 그 같은 내력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시드니가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기회의 땅으로 불법체류자가 넘쳐나는 반면, 멜버른은 수대 째 살아온 토박이들이 대부분이다. 대개 검소하고 보수적이며 애향심이 강하다.
19세기 초 도시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건축물도 현재까지 대부분 보존되고 있다. 전차와 쌍두마차가 시내 중심가를 달리며 빅토리아시대의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렇다고 해서 옛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멜버른 사람들은 전통을 고수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온고지신 없이 과거에만 집착했다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멜버른은 호주의 패션, 스포츠, 예술을 이끌고 가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도시답게 사우스 야라(South Yarra) 지역에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부티크 숍이 즐비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패션감각 또한 뉴욕이나 밀라노 못지 않다.
애버리진 아티스트들과 호주발레단 등 호주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와 단체 역시 멜버른을 활동의 본거지로 삼고 있다. 호주에서 극장과 콘서트홀이 가장 많은 도시가 바로 멜버른이다. 멜버른 아트 페스티벌(MIAF), 멜버른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미술관과 공연장으로 바뀐다.
스포츠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멜버른컵 경마대회, 호주 풋볼, F1 자동차경주가 열릴 때마다 도시 전체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해진다. 스포츠는 멜버른에 '이벤트의 도시'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신대륙에 제2의 유럽을 건설하고자 했던 이민자들의 꿈은 결국 멜버른을 통해 구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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