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12-27 11:52]
델타는 벼가 자라는 넓은 뜰인 줄 알았다. 강이 흐르며 만든 삼각형의 땅인 줄로만 알았다. 오카방고 델타를 가보지 않았다면 내 머릿속의 델타는 영원히 농촌을 인상짓는 넓은 농지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오카방고 델타는 앙골라 중앙에서 발원한 오카방고 강이 나미비아 북동쪽 카프리비 스트립(Caprivi Strip)을 거쳐 보츠와나 북서쪽으로 유입되며 쏟아낸 연간 185억㎥의 강물이 형성한 습지이다. 이곳의 건조한 날씨와 칼라하리 사막에 의해 강물은 증발되고 흡수되며 수로와 섬을 만들어냈다.
초원의 습지, 야생동물과 새들의 낙원 오카방고 델타로 진입하는 관문은 보츠와나 북부의 '마운(Maun)'이다. 간밤에 비가 내려 텐트를 적셔대더니 아침 하늘빛은 푸르름 한조각 보여주지 않는다. 델타로 향하는 사륜구동 트럭에는 기다란 벤치 2개가 등을 맞대어 설치되어 있다.
트럭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델타의 바람이 머리카락과 뺨을 핥으며 몸 속으로 스멀스멀 파고든다. 허리 높이만큼 자란 풀들은 빼곡이 들을 채우고 진녹색의 관목들이 듬성듬성 초원을 장식하고 있다.
도로가에는 이쑤시개만한 가시가 달린 아카시아 나무들이 트럭을 훑고 지나며 다리에 생채기를 남겨놓곤 한다. 도로 가까운 곳의 움집을 지날 때면 주민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손을 흔들고 개구쟁이 아이들은 따라오겠다는듯 트럭을 따라 달리며 환호성을 질러댄다.
흐리던 하늘이 돌연 비를 토해내더니 푸른 들을 적신다. 여름을 지나버린 델타의 비바람은 한기를 몰아와 꽁꽁 뒤집어 쓴 우의 속까지 파고들었다. 사륜구동으로 2시간 30분을 이동한 후 수로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자 기다랗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순박해 보이는 원주민들이 미소로 일행을 반긴다. 몰아치던 비바람은 언제 그랬냐는듯 그치고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살이 델타를 밝혔다.
그물망처럼 이어진 델타의 수로는 깊이 1m 내외, 폭 1~3m로 카누처럼 날렵한 배가 아니면 지날 수 없다. 원주민들이 기다란 장대로 수로 바닥을 밀어 이동하는 모코로(mokoro)에 올랐다. 서서 중심을 잡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인 듯했다. 조심조심 엉덩이를 마른 풀이 깔린 바닥에 바짝 붙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바나의 왕은 과연 어디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우의를 걸치고 아름드리 나무 아래 캠프장을 나와 초원으로 나섰다. 해질녘에 움직이는 야생동물들을 관찰하러 가는 길이다. 키만큼 자란 풀과 커다란 나무가 무리를 지은 작은 숲이 띄엄띄엄 초원을 채우고 있다. 태양도 사라진 초원에서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안내자가 없다면 야생동물들의 특별한 저녁식사감이 되기는 십상일 듯했다. 초원 어딘가에 사자도 있다고 하니 너무도 넓고 적막한 초원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원주민 할아버지를 따라 5분을 채 걷지 않아 멀리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임팔라 무리가 나타났다. 가녀린 몸집의 임팔라는 불안한 듯 일행을 흘끔거리며 풀을 뜯는다. 더 가까이 보고싶어 20여m를 다가서자 임팔라 무리는 빠른 발놀림으로 초원을 득달같이 내달았다.
임팔라가 떠나고 오른편으로 위협적일 정도로 우람해보이는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사자, 버팔로, 표범, 코뿔소와 함께 빅파이브(Big 5)로 불릴 정도로 사냥꾼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야생동물이지만 코끼리는 외부인의 출현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배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임팔라를 한 입 베어물고 초원을 호령하는 사자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나타나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도 몰랐다. 초원에서 아무런 무기도 없이 사자를 맞닥뜨린다면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리는 낭패를 경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가이드를 따라간 일행들이 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우기가 아직 끝나지 않아 풀이 웃자란 탓에 사자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이후에 들을 수 있었다.
델타, 아프리카의 평온한 휴식처
밤 새 비는 내리고 아침을 맞은 델타는 아직도 먹구름 아래 짓눌려 있다. 아침 일찍 초원 산책(Bush Walking)을 마치고 오후가 되자 델타는 환한 햇살 아래 다시 연초록빛의 제 빛깔을 되찾았다. 모코로를 타고 수로 사이를 10여 분 나아가자 폭 5m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모코로를 정박해두고 일행은 델타에서의 짧은 소풍을 즐겼다. 부유물 때문에 뿌옇게 흐려져 바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물뱀이라도 나타날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옷을 벗고 들어간 물 속은 평온하기만 했다. 양질의 온천수에 몸을 담근듯 몸이 가뿐해지고 피부는 뽀송뽀송하다.
델타에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비를 흩뿌리고 지나갔던 야성적인 검은 대륙의 구름은 붉게 물들어 간다. 대화가 잦아들고 모두 노을진 서쪽 하늘로 시선을 모아 저마다의 감상에 젖어든다. 맞은편 동쪽 하늘에선 또 다른 먹장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저녁에는 인디애나 존스 '비밀의 사원'에 나오듯 불을 피워 놓고 노래를 부르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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