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아프리카② 붉은 원주민, 힘바를 만나다

피나얀 2006. 12. 27. 21:27

 

출처-[연합르페르 2006-12-27 11:52]




초콜릿 피부에 앙상하게 마른 체구, 여성은 가슴을 드러낸 채 박자 빠른 현란한 춤을 추고, 남성은 기다란 창을 들고 초원을 뛰어야 하는 것이 머리 속에 각인된 아프리카 원주민에 대한 모습이다.

 

그러나 짐바브웨와 보츠와나를 지나며 만난 원주민들은 이전의 선입견 내지 그들에 대한 머릿속 원형을 무참하게 깨버렸다. 서구화된 생활방식과 서구 문명이 점령해버린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로 부각될 수 없었다. 피부 색깔을 뺀다면 그들의 나라를 방문한 관광객들과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힘바족은 달랐다. 나미비아에서도 가장 독특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지만 사진 속의 힘바는 분명 문명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붉게 물들인 머리카락과 허리와 목을 두른 금속제 또는 가죽 장신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외부 문명에 굳건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힘바족을 찾아가는 여정은 호기심을 넘어 묘한 흥분마저 전해주고 있었다.

 

나미비아에서도 가장 독특한 반유목민

 

 

힘바를 찾아가는 여정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현지 여행사에 거금을 내야 하고, 캠프장인 '팔름바크(Palmwag)'에서 북쪽의 '카오코랜드(Kaokoland)'를 향해 270km나 되는 거리를 사륜구동으로 이동해야 한다.

 

운전과 안내를 맡은 고트로드는 힘바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마라 인(나미비아 13개 종족 중 하나)이었다. 아침 8시 힘바족 방문객을 태운 사륜구동이 팔름바크를 벗어나자 이내 넓은 초원이 도로 양쪽에 펼쳐진다.

 

열대 야자수가 높이 솟은 팔름바크의 멀어지는 풍경이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대상을 기다리는 오아시스같다. 기린과 스프링복(영양의 일종), 얼룩말 등이 한가로이 풀을 뜯다 아침의 평화를 깨는 이방인의 돌발적인 출연에 멈칫하다 다시 시선을 돌리곤 한다.

 

예전 달력에서나 보았을 법한 납작하면서도 웅장한 산들이 초원 위를 지나가고 덜컹거리는 사륜구동은 롤러코스터처럼 출렁거리며 힘바족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점심식사와 3차례의 휴식을 취한 후 1시가 넘어서야 힘바족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많은 원주민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갈 것이라는 도착 전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고트로드가 안내한 곳은 평지에 울타리가 쳐 있었고 안쪽으로는 짚을 얹은 4~5채의 움집이 서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족해보이는 곳이었다.

 

2~3년에 한번씩 물을 찾아 이동하는 반유목민이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작은 규모로 살아가고 있을지는 몰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번화한 도심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예상을 훌쩍 벗어나버린 것이었다.

 

한반도의 약 4배 크기에 180만여 명이라는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린 결과인지도 몰랐다. 이후에 힘바의 인구가 1천여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힘바족은 4~5개 가족이 집단을 이뤄 생활하는데 두 개의 마을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동하는 것은 식량 때문이다. 힘바족은 고기와 우유,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데 한 곳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다 용수가 부족해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면 물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밀가루 포대와 맞바꾼 힘바마을 방문

 

밀가루 몇 포대로 부족장 할아버지의 방문허락을 받아내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붉은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붉은 그들이 더 더워보인다. 땋은 머리에는 짐승의 가죽을 얹었고 염소가죽으로 만든 미니스커트로 아래를 가렸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은 부끄러움도 없다. 오히려 검게 그을린 내 얼굴이 화끈거려 그들의 붉음보다 더해졌다. 선악과를 따 먹고 부끄러움을 알아버린 이브의 원죄때문이었을까?

 

움집으로 들어서자 힘바여인이 이를 드러낸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반긴다. 움집에는 가재도구라고 할 것도 없다. 나무상자와 주둥이 좁은 둥근 목재 우유통이 전부였다. 힘바족의 마을에서 50여km 떨어진 곳에서 채취한 붉은 돌을 빻아 우유 지방과 함께 섞어 가루를 만들어 온 몸에 바르는 모습을 시연하고, 겨드랑이에 작은 단지를 갖다 대며 그들만의 천연 허브 향수 사용법도 보여준다. 민속촌을 방문한 느낌이다. 관광객들의 빈번한 방문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움집 안으로 힘바족 여인 3명이 더 들어왔다. 모두 결혼한 상태였는데 이중에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앳돼보이는 여자아이도 섞여 있다. 아기일 때도 결혼할 수 있는 힘바족의 풍습 때문이다. 16세가 되기 전까지 남편은 아내를 부양만 할 뿐 잠자리를 함께 하지는 않는다. 소나 양 등 가축 5마리면 청혼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부유한 힘바족 남성은 아내를 여러 명 둘 수도 있다.

 

"아랫니를 보면 이가 빠져나가 있습니다. 힘바족은 7살이 되면 모두 아래 가운데 앞니 2개를 뽑아냅니다. 통증은 심하지만 힘바족만의 전통적인 믿음입니다." 고트로드의 요청으로 13살된 어린 신부가 입을 벌리고 수줍은 미소를 짓자 아랫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핑크 빛 속살이 드러나 보인다.


문명과의 시차는 갈수록 좁아져

 

여인들은 방문객들 앞에 팔찌, 목걸이, 목각 인형 등 수공품을 늘어놓으며 사라고 한다. 포탄피를 잘라 만든 구리 팔찌에는 힘바의 전통문양인 듯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고, 목각인형은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수공품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복장과 생활방식은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했다.

 

흥정을 마치고 움집을 나오니 마당에서는 따가운 햇살아래 힘바족 어린이들이 뛰어다닌다. 일행을 보더니 백인 여자관광객들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만져보기도 한다. 단단하게 땋은 자신들의 머리카락과 사뭇 다른 느낌인가보다. 이내 여자 관광객들에게 아이들이 삼삼오오 달라붙어 머리를 땋는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바라보니 눈이 커다란 한 여자아이의 시선이 떠날 줄 모른다. 한참동안 동양인과 힘바족 어린아이와의 말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의 모습과 삶이 특별해 보이듯이 그 아이에게도 동양인의 모습이 특이했던 때문일까. 사진기를 들자 아이는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떠날 무렵, 주변을 맴돌던 아이들이 늘어서 힘바족의 노래와 춤을 보여준다. 4명이 옆으로 늘어서 손뼉을 치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모양이 조금은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유치원 어린이들의 재롱잔치처럼 천진난만해보였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인근의 오푸우(Opuwo)라는 마을에서 힘바족 전통복장을 한 여인을 만났다. 좀 더 잘 차려 입은 여인은 바구니에 장신구를 하나 가득 담고 관광객들과 흥정을 시작했다. 힘바족 마을에서 본 것보다 가격이 싸고 문양이 예뻤지만 플라스틱 제품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힘바를 상업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큰 마을에 있는 힘바족은 자신들의 마을과 생활방식을 떠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을 경우 돈마저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힘바족의 삶이 문명과 자본에 침해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힘바족과 현대 문명과의 시차는 갈수록 좁아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