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해남① 땅끝에서 새 희망을 맞는다

피나얀 2006. 12. 28. 22:49

 

출처-[연합르페르 2006-12-28 09:41]




해남은 남도여행길의 끝자락이다. 바다를 건너는 다리 너머로 육지 같은 진도와 완도가 자리 잡고 있지만 한반도와 한몸을 이루는 남쪽의 끝자락은 바로 해남이다. '해남'보다 '땅끝'이란 지명이 여행자의 가슴에 더욱 와 닿는 것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여정이 주는 묘한 느낌 때문일 것 같다.

 

도대체 땅끝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바닷가 작은 땅이 왜 그토록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알고 싶었다. 해가 뜨고 지는 어느 바닷가, 어느 마을이 감흥을 주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곳이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여행자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는지도 몰랐다.

 

해남읍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 왼쪽으로 '고정희 생가'의 이정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곧이어 오른쪽으로 '김남주 생가' 이정표가 나타났다. 동시대에 활동하다 비슷한 시기에 한 명은 등산 중 실족해, 또 한 명은 췌장암으로 빨리 세상을 등졌던 시인 2명이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뿔테 안경 속 맑은 눈을 가졌던 사람 좋아 보이던 김남주 시인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전략)사랑은/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너와 나와 우리가/한 별을 우러러보며'(김남주의 '사랑은')

 

붉은 황토 빛이 선명한 밭을 지나는 한적한 시골길은 한산하기만 하다. 낮은 산들이 멀리 휘돌고, 바다의 흔적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돌연 오른쪽에 갈대숲으로 뒤덮인 공간이 나타났다. 매년 겨울이면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볼 수 있다는 '고천암 철새도래지'이다. 때가 이른 탓인지 오후로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에 고천암 갈대밭에서 철새들의 군무는 볼 수 없었다.

 

고천암호 수면에 뜬 물새 몇 마리가 가끔 자맥질을 할 뿐이었다. 바다를 가로막은 둑을 넘자 은빛 갯벌이 펼쳐져 있고, 둑에서는 아주머니들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앉아 끝이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를 쪼고 있다. 바위에 따닥따닥 붙은 자연산 굴을 캐내는 중이었다. 둑 안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갈매기 무리들이 갯벌 위를 맴돌며 먹이 찾기 경쟁에 골몰하고 있었다.


섬들로 둘러싸인 바닷가 도로를 따라 땅끝으로 향했다. 중간에 잠깐 들른 드라마 '허준' 촬영지 바로 옆으로는 육지와 섬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신비의 바닷길'이 있다. 촬영지 앞에서 뻗어 나간 곧바른 길은 죽도와 중도라는 섬의 중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바닷길 여기저기에서는 어민들이 나와 바지락을 줍느라 손길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갯벌에 허리를 구부린 어민들의 삶은 현실적이겠지만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들의 시야에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길과 갯벌 풍경이 회화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섬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바다가 오른쪽으로 펼쳐지고 이제 고개를 넘으면 땅끝이다. 한반도의 마지막 지점을 직접 대면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인다. 고개를 넘어서자 눈앞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는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도로의 교차로에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란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연인 한 쌍이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그들도 땅끝을 찾아, 땅끝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든 모양이다.

 

식당과 모텔들이 빼곡이 들어선 땅끝의 마을을 지나 땅끝이 내려다보이는 갈두산 사자봉으로 향했다. 사자봉은 노령산맥 줄기가 내리 뻗은 마지막 봉우리이다. 꼭대기로는 지난해 말부터 모노레일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노란색의 화사하고 깜찍한 모노레일은 천천히 비탈을 오른다.

 

모노레일 정면의 커다랗고 맑은 창을 통해 남쪽의 넙도와 노화도, 보길도를 왕복하는 유람선들이 정박한 여객선터미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객선터미널 뒤로 작은 섬들이 사이좋게 중첩되어 있고, 더 멀리로는 커다란 완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땅끝 전망대가 우뚝 솟은 곳으로 향해 가자 작은 섬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망망한 대해가 펼쳐진다. 커다랗고 평온한 바다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섬 사이로 유람선들이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지난다. 파란 바다에 하얀색 물감으로 붓칠을 해놓은 모양이다.

 

북위 134도 17분 21초의 토말에 해가 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붉게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손을 꼭 잡은 연인도 그저 서쪽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멀리 섬 뒤편으로 해가 저물어 가며 남해안을 붉게 물들여간다. 관광객들은 모노레일의 마지막 운행시간에 맞춰 하나둘씩 발길을 돌렸다. 땅끝은 한반도의 끝이 아니라 희망을 안고 가는 새로운 출발점인 듯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Tip_ 땅끝 해넘이해맞이 축제


매년 12월 31일 땅끝 갈두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12월 31일 일몰행사로 해넘이제, 땅끝노래마당, 줄굿, 강강술래, 씻김굿, 달집태우기 등이 마련되고, 해맞이제, 띠뱃놀이, 선상해맞이 등의 일출행사가 1월 1일 아침에 열린다. 땅끝 여객선터미널 옆 형제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