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해남② 둥근 산 아래 마음을 씻어내는 곳

피나얀 2006. 12. 28. 22:50

 

출처-[연합르페르 2006-12-28 09:41]




봉우리 8개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두륜산 중턱에는 대흥사(大興寺)가 자리하고 있다. 규모는 어느 절보다 크지만 이상하게도 대흥사를 감싼 산세처럼 포근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대흥사로 향하는 비탈진 도로 양쪽으로는 느티나무, 참나무, 벚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높이 솟아올라 하늘을 가릴 듯 도로 안쪽으로 잎이 무성한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찰로 향하는 숲길이 좋아 대흥사가 더 좋아졌다는 어느 지인의 말처럼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기 그만이었다. 숨을 깊이 들이키면 마른 나무 냄새가 숲길 옆을 흐르는 개울 냄새와 섞여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개울에 발을 담그기에는 차가워진 날씨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조금 더 비탈길을 오르자 거대해 보이는 일주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주문의 현판에는 '두륜산대둔사(頭崙山大芚寺)'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대흥사의 옛 이름을 아직도 일주문 현판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대둔사라는 명칭은 두륜산의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두륜산의 옛 이름은 크고 둥글다는 뜻의 '한둠'이었다. 순수 한글인 한둠이 한자로 변환되며 대듬, 대둔으로 바뀌었고 사찰 이름 역시 대둔사가 된 것이다. 지금은 각기 옛 이름을 버리고 두륜산과 대흥사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산과 사찰이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일주문과 서산대사의 부도가 있다는 부도탑을 지나 해탈문 앞에 이르자 하늘을 가릴 듯하던 숲길은 끝이 나고 대흥사의 넓은 뜰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백 년은 됐을 법한 커다란 나무들이 뜰을 둘러서 있고, 깔끔한 조경이 인상적인 연못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만들었다는 '무염지(無染池)'라는 이름의 연못이다.

 

연못의 이름은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연못'이라는 뜻이다. 정갈한 나무와 험상궂은 바위, 깨알 같은 수초와 연잎이 조화로운 연못의 모습이 대갓집 정원을 방문한 느낌마저 전해준다.

 

대흥사의 명물인 천불전에 가기 위해 가허루(駕虛褸)를 지났다. 가허루의 문턱이 아래로 늘어져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데 문턱을 오른발로 디디고 들어서면 아들을, 왼발로 들어서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한다. 가허루를 통과하자 아담한 나무들이 들어선 정원 뒤로 천불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꽃잎에 꽃술을 노란색으로 색칠한 꽃살무늬 창살이 부안 내소사의 꽃살무늬 창살을 대하는 듯 소박하면서도 탐스럽다. 천불전 안으로는 수많은 불상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모양과 표정은 꼭 같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왼쪽으로 냇가를 건너 대웅전이 있는 북원에 도착했다. 일자로 길게 쌓은 석축 위로 대웅보전과 명부전, 응진전, 범종각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 응진전 앞에는 작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북원으로 들어서는 길목인 침계루 뒤쪽으로 언덕에 올라앉은 나무들의 구불구불한 모습이 낭만적이다. 어느덧 산사에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