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사십 계단 층층대에서 경상도아가씨를??

피나얀 2007. 1. 2. 23:00

 

출처-[데일리안 2007-01-02 15:40]



부산의 애환서린 곳을 찾아서

부산에서 6.25전쟁과 관련된 시설이나 지명중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세를 탄 곳은 두 군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전국적인 유명세는 매스미디어에 의한 영향이 크다. 라디오와 TV가 보편화되면서 우리네 서민들은 구수한 ‘트로트’를 늘 접하게 되었다.

“영도다리”와 “40계단”은 이 트로트 덕분에 외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경우이다. 즉, 영도다리는 “굳세어라 금순아”에, 40계단은 “경상도 아가씨”라는 노래에 등장한다. 한때 트로트가 왜색 가요라 하여 지식인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거부반응이 불기도 했지만, 그 구수하고 호소력 있는 리듬의 생명력을 꺾지는 못했다. 엔가 풍이든 어떻든 트로트는 이미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명실상부한 “대중가요”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영도다리야 영도와 남포동을 잇는 다리인데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식(다리를 들어올리는)다리로써 일제 강점기부터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40계단은 영도다리에 비해 유명세가 조금 덜 했는데, 지난 1999년 이명세 감독이 만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스타팅 장면에 등장하면서 젊은 층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 사십 계단 전경 ⓒ 김대갑


이 사십 계단은 부산 중앙동과 동광동 사이에 있는 40개의 층계로 이루어진 계단을 말한다. 실제로 제1단에서 마지막 단까지 정확하게 40개의 디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옛날의 그 계단 모습은 사라지고, 화강석으로 디딤판을 깨끗하게 재단장하여 예스러운 흥취는 다소 사라진 편이다. 그런데 이 계단에는 6.25전쟁 때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의 삶과 애환이 구구 절절이 담겨있다. 오죽하면 대중가요에서 40계단에 앉아 우는 나그네를 노래할 정도였겠는가.

사십 계단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6.25 동란으로 말미암아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 때문이었다. 그 무렵 사십 계단 일대는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곳이었다. 또한 이 40계단 주변에는 시중에 흘러나온 구호물자를 피난민들이 파는 장터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개 이런 구호물자는 부두길 길섶에서 살고 있던 피난민들이 부두에서 훔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 사십 계단의 손풍금쟁이 ⓒ 김대갑


또한 일제강점기 때는 계단 주변에 일본식 꼬치집들이 많았던 곳으로 유명해서 술꾼들이 즐겨 찾았다고 하며, 6.25전쟁 이후로는 암달러상들이 판치고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 6.25전쟁 무렵만 하더라도 이 40계단에서 영도다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영도 다리가 또 어떤 곳인가?

당시 북한이나 서울 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함께 내려오던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면, 그저 막연하게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언제 만나자는 이야기가 없었기에 피난민들은 늘 영도다리 주변을 오고가거나, 다리가 잘 보이는 곳에 안식처를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난민들은 40계단에 앉아서 낮에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랬고, 밤에는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당홍색 불빛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곤 했던 것이다.

◇ 옛 추억의 사십 계단 ⓒ 김대갑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아마도 40계단이 등장하는 스타팅 신과 박중훈과 안성기가 빗속에서 처절하게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일 것이다. 스타팅 신은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을 정도로 촬영이 잘된 부분이다. 또한 이 부분은 영화 전개상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40계단 주변에 이리저리 날리는 가운데,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잔잔히 흐른다. 히트 맨(암살자)들은 검은 세단 안에서 표적이 나타나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홀리데이가 계속 흐르는 가운데, 귀여운 소녀가 40계단을 뛸 듯이 내려온다. 갑자기 저 먼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나기를 피하느라 사람들이 바삐 흩어지는 동안, 마침내 사십 계단에 히트 맨의 표적이 나타난다. 비가 더욱 세차게 흐르는 가운데 히트 맨(안성기)은 지극히 사무적으로 표적을 살해한다. 잠시 후, 임무를 마친 히트 맨을 태운 세단이 소리 없이 사십 계단을 빠져나간다. 일시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첫 장면은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이 명 장면에 의해 사십 계단이 일약 전국적인 유명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 사십 계단 가는 길 ⓒ 김대갑


두 번째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깡패 형사 박중훈과 냉혹한 킬러 안성기가 빗속에서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특히 서로의 얼굴을 크로스하여 난타하는 장면은 ‘매트릭스’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벤치마킹했을 정도로 촬영이 아주 잘 된 부분이다. 이 장면은 ‘매트릭스 2’에서 네오와 스미스요원의 대결장면에 그대로 삽입되기도 했다.

그 영화이후 이곳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는데, 급기야는 지난 2003년2월 사십 계단 문화관이 만들어져 옛 시절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사십계단 기념관은 40계단 마지막 단에서 오른쪽으로 15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1~2층은 동광동 동사무소이며 나머지 층은 문화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뻥튀기 아저씨와의 추억 ⓒ 김대갑


40계단에는 이제 옛 시절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1993년 8월에 계단을 완전 정비하면서 오래 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동광동과 영주동 산동네에서 부두나 국제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이곳에 서린 민초들의 애환은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다. 그리고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이산가족의 슬픔 또한 계단 곳곳에 절절이 남아 있다.

오늘도 사십 계단의 중간에 앉아 있는 청동 나그네는 피난 중에 헤어진 형제를 그리워하며 손풍금을 켜고 있다. 손풍금의 리듬에 맞추어 부르는 나그네의 노래가 왜 이리도 구슬플까. 어서 빨리 통일의 그 날이 와서 이 서러운 나그네의 마음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도 40계단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은 옻빛을 띠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