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7-01-18 09:54]
울릉도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다. 섬이 넓고 바다가 깊은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이다. 울릉도 등대의 초입에는 태하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래서인지 울릉등대를 태하등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태하에서 내려 마을을 서성거리는데 우리 옛 사람들의 마음지킴이인 신당이 보였다. 성하신당이다. 신당에는 동남동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조선 태종 때 이 섬에서 굶어 죽은 아이이다. 지금은 이 섬의 신이 되어 바다를 지킨다. 태종은 울릉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처를 옮기게 하는 공도정책을 실시했다. 이 섬이 왜구들의 침략 거점이 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과 같은 행정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에서 울릉도는 어쩌면 다른 나라처럼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즉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섬 주민들을 싣고 올 임무를 맡은 안무사 김민수 일행이 태하에 도착했다. 오랜 항해에 지친 안무사는 잠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울릉도의 바다신이 나타나 말했다.
“섬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지 말고,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남겨두고 가거라.”
해괴한 꿈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로서 김민수는 잠시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신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섬의 모든 주민을 배에 태웠다. 하지만 출항을 하려고 할 때마다 비바람이 불어와 배는 바다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변덕 심한 바다 날씨려니 하고, 며칠을 기다렸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꿈속에 나타난 해신의 말이 떠올랐다.
김민수는 마을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골라 자신이 묵었던 거처에 곰방대를 놓아두고 왔으니 가지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이들이 마을로 올라간 사이에 배를 띄우자 바람이 멎었다. 심부름을 하고 오던 아이들은 자신을 버리고 가는 어른들의 배를 보았다. 소리치면서 배를 불렀지만 바다로 나간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울릉도에는 어린 아이를 해신에게 제물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섬에 두고온 아이들 생각에 김민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울면서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결국 김민수는 다시 섬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찾아 보았다. 마을의 구석진 곳에 작은 백골이 서로를 꼭 안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죽어 백골이 되어 있었다. 곁에는 곰방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슴이 미어진 김민수는 그곳에 아이들의 영혼이라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지었다.
지금도 매년 어업 풍년 제사를 지내고, 선박의 진수식을 성하신당에서 지낸다. 성하신당에는 굵은 몸통의 해송이 신들의 집을 지키고 있었다. 걸어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바다이고, 그 바다로 나가는 울릉도의 모든 배들은 여기서 출발한다. 신당의 동남동녀에게 배를 띄워도 되겠느냐는 허락을 받는 것이다. 동남동녀 상은 단순하고 선명한 민화풍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처상이나 도자기같은 예술적인 조형미보다는 단순한 존재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단순성에 신성이 배어 있었다.
성하신당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울릉등대로 올랐다. 울릉등대는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동에 있다. 1958년 4월11일 점등되었다. 등질은 백색이고 25초 1섬광이다. 등탑에 올라 등롱의 위치에서 불빛처럼 바다를 보았다. 문득, 성하신당의 동남동녀가 떠올랐다. 울릉등대의 불빛은 그 이야기를 품고 바다로 뻗어나갔다. 세상의 고통은 견디면 희망이 된다. 견디지 못한다면 빛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한산한 오전이었다. 등대로 들어가니 아침 식사를 마친 등대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도동 등대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독도 생각을 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등대원들의 안부는 항상 궁금한 것이다. 독도 근무 경험이 있는 등대원이 이야기했다.
“독도의 겨울은 위험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파도가 거칠어지면, 바다의 염분과 난기류가 수직상승하면서 순간적으로 난간에 기대어 있는 사람을 잡아 끌어내립니다. 아주 위험하지요. 바람이 빙글빙글 돌아오면서 아주 순간적으로 사고가 나는 거예요.”
그곳에는 독도경비대원들의 비석이 있다고 했다. 국토의 끝에서 독도를 지키다가 순직한 것이다. 바람이 불었다. 문득 등탑의 난간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에 내려오는 길에 성하신당에서 기도를 드렸다. 내가 타고 가는 배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많은 섬을 다녔지만 한번도 신당에서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나의 오만인지도 모른다. 신당은 바다에 대한 인간의 오만을 다스려주었다.
다시 어린 신들의 단순하게 그려진 눈빛을 보았다. 어젯밤 보았던 울릉등대의 불빛이 겹쳐졌다. 환하고 청명한 날씨는 모든 것이 빛난다. 하지만 밤이 되고, 신상의 문이 닫히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빛이다. 어둠 속의 빛이다.
울릉도에서 나왔다. 섬을 빠져나와 육지에 발을 디디면 섬과 육지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은 바다에 떠있는 곳이고, 육지는 바다와 접하고 있는 것이다. 묵호에 있는 묵호등대 앞에 섰다. 묵호등대는 1963년 6월8일 점등되었다. 등탑의 높이는 12m로 백색 원형 콘크리트조로 만들어졌다. 등대는 묵호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울릉도에서 많이 걸은 탓에 몸은 피곤하고 잠을 설쳐 마음이 흩어진 머리카락처럼 혼란스러웠다.
배가 고프다. 등대 바로 옆 ‘종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배가 부르자 마음이 편해진다. 식당 카운터에는 소설가 심상대의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가 보였다. 식당주인과 몇 마디를 나누면서 심상대씨와 아는 사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웃으면서 식당에서 나와 등대를 올려다보았다. 저녁 어스름이다.
바다의 저녁은 푸르디푸르렀다. 바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이 세상을 물들이고 나서 드디어 어둠이 내려왔다. 등대의 불빛이 나온다. 어디선가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트럼펫의 음율은 먼 바다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성수기를 지난 바닷가는 고요했고, 등대 옆의 가로등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골목길에서 혼자 빛나고 있었다.
거의 매일, 등대원은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트럼펫을 분다고 했다. 등대에 점등을 하고 불빛과 같이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 등대원의 마음의 음성일까 싶었다. 음악소리는 멀리 바다로 나아갔다. 저 음악의 바다의 어디쯤에서 아스라해질 것인가? 묵호등대에 서서 울릉도를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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