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여자 셋이서 떠난 청송 나들이

피나얀 2007. 1. 23. 20:38

 

출처-[오마이뉴스 2007-01-22 18:49]



▲ 웅장한 주왕산 제3폭포의 윗부분.
ⓒ2007 김연옥

지난 20일 나는 가깝게 지내는 여자 둘과 함께 경상북도 청송 나들이를 했다. 굳이 청송으로 간 이유는 우리 일행 가운데 남편의 직장 관계로 그곳에서 8년 동안 살았던 콩이 엄마의 입김 때문이다.

콩이 엄마는 2년 전 여름에 우연히 알게 된 유기견 콩이로 인해 나와 더욱 가까워진 사이로 이따금 청송에 한번 놀러 가자고 운을 떼곤 했다. 오전 10시에 마산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오후 1시 20분께 주왕산 국립공원(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눈에 띄는 음식점에 들어가 순두부찌개로 허기를 채웠다. 반찬으로 배추전이 나와 처음 맛보았는데, 경북 지역에서는 제삿날이나 명절 때면 배추전을 상에 곧잘 올린다는 직장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마침 콩이 엄마의 고향이 대구라 배추전을 맛있게 부쳐 먹는 이야기를 들으며 느긋한 점심을 하다 보니 벌써 2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대전사(大典寺) 쪽으로 걸어갔다.

기암절벽의 고요를 깨는 폭포의 하얀 풍경에 폭 빠지다

▲ 대전사 보광전 뒤로 웅장한 기암이 우뚝 솟아 있다.
ⓒ2007 김연옥

상의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대전사에 들어서자 보광전(경북유형문화재 제202호) 뒤로 위엄이 서려 있어 경이로운 느낌마저 들게 하는 기암(旗岩)이 우뚝 솟아 있었다. 주왕산(720m)은 산세가 웅장하고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아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기암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디 산의 형상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렀던 주왕산(周王山)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자신을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크게 패하여 깊고 험준한 주왕산까지 쫓겨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 주왕의 넋을 달래 주기 위해 지었다는 주왕암의 가학루.
ⓒ2007 김연옥

이에 주왕을 없애 달라는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들인 신라 왕이 마일성 장군을 보내 그 무리를 해치우게 했다. 결국 네 명의 아우와 합세한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주왕은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그 후 그 산의 이름을 주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주왕이 최후를 맞이한 주왕굴 앞에서.
ⓒ2007 김연옥

우리는 주왕의 넋을 달래 주기 위해서 지었다는 주왕암의 가학루를 지나 주왕굴을 향했다. 기다란 철계단을 따라 계속 가면 주왕이 최후를 맞이한 주왕굴에 이르게 되는데 생각보다 굴 안은 좁은 공간이었다.

▲ 떡을 찌는 시루를 닮은 시루봉. 다른 방향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2007 김연옥

우리는 주왕암에서 나와 주왕산 제1폭포를 향해 걸었다. 거대한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는 그 길은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한 시루봉, 청학과 백학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학소대 등을 지나게 된다.

▲ 제1폭포 주변의 거대한 기암절벽.
ⓒ2007 김연옥

▲ 한겨울에도 경쾌한 물소리로 흘러내리던 주왕산 제1폭포.
ⓒ2007 김연옥

나는 추운 한겨울에도 맑은 물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하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경쾌하면서도 힘찬 소리로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와 그 아래에 고인 옥빛 물웅덩이를 바라보면 누구든 제1폭포를 선녀폭포라고 부르는 이유를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주위의 기암절벽이 풍기는, 숨 막히는 듯한 고요함 또한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자연은 왜 위대한가.
왜냐하면
그건 우리를 죽여주니까.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리며
하여간 우리를
죽여주니까.

- 정현종의 '자연에 대하여'


▲ 2단 폭포인 주왕산 제2폭포.
ⓒ2007 김연옥

▲ 제3폭포의 아랫부분.
ⓒ2007 김연옥

우리는 예쁜 2단 폭포로 물줄기 따라 투명하게 얼어붙은 제2폭포를 들렀다가 웅장한 제3폭포에도 올라갔다. 나는 제3폭포의 빼어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고만 싶었다.

얼어붙은 주산지에서 일상의 우울을 벗어 던지다

청송에 와서 주산지(청송군 부동면 이전리)를 보지 않을 순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주산지로 달려간 시간이 벌써 오후 5시 30분께. 그 밑동을 깊은 물 속에 담그고 수면 위로는 흔들리듯 가지를 뻗고 있는 왕버들들의 그림 같은 풍경은 그저 신비할 따름이었다.

▲ 얼어붙은 주산지의 왕버들.
ⓒ2007 김연옥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 착공하여 경종 때(1721년)에 완공된 농업용 저수지였다. 길이는 100m이고 너비가 50m로 마치 산중의 호수 같은 고요한 못이다.

수령 1백 년을 훨씬 넘은 왕버들들이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물 위로 신비스러운 몸짓을 하며 말없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일상의 우울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는 듯했다.

어느새 주산지에도 저녁 어스름이 깔렸다. 기분 좋은 저녁 빛이다. 이번 나들이로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친구가 있어 좋고, 또 돌아갈 수 있는 포근한 집이 있어 행복한 저녁이었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 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 박찬의 '사람'


그런데 사람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어쩌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날을 세우지 않는 무던한 사람, 얄팍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담백한 사람, 까탈을 부리지 않는 소박한 사람이 그리운 건지도 모른다.

그날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우리 셋은 피곤한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너무 재미있어 까르르 웃어대는 소녀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