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1-24 09:07]
프랑스 남부는 근대 화가들이 가장 사랑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상파 화가부터 부자연스러운 색채에 천착했던 야수파 작가들까지 무한한 애정을 부여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햇빛이 너무나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햇빛은 예술가들의 잠자고 있는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웠다. 미술에 대한 재능이 없더라도 프랑스 남부에 도착하면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을 밝게 만들어주는 햇살은 식물의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맛있는 음식도 함께 선물했다.
몽펠리에는 조금 특별한 도시다. 파리와 함께 학문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도 주민 4명 중 1명은 25세 미만일 정도로 대학생들이 많다. 저명한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가 다녔던 대학은 800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해냈다. 도시의 역사는 길지만 사고방식은 젊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들은 대개 지나간 과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몽펠리에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 너머에는 로마시대에 물을 수송했던 수도관이 남아 있다. 한 공간 안에서 미래 지향적인 가치와 과거의 소중한 유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실 몽펠리에가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요소 때문이 아니다. 1970년대 말 유급휴가가 늘어나고 여가 문화가 관심을 끌면서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은 인근의 랑그도크 해변과 가까운 명소가 됐다. 여기에 구역 전체를 현대 도시 건축의 실험장으로 만들면서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더해졌다.
광장 주위로 건물이 반원형으로 배치돼 있는 신시가지에 들르면 프랑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는 '사람은 광장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정말로 어디에서나 넓게 펼쳐진 평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은 사무용 공간과 주거용 공간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아서 한곳에서 일하고, 쉬고, 산책하고,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 생애 최고의 석양
몽펠리에가 따뜻하다는 증거는 역 앞 거리의 야자수들이다. 열대 휴양지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나무들이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다. 금세 스위스에서의 차분했던 기운이 빠져나가고 활기가 넘쳐난다. 노천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나 스스럼없이 포옹하는 젊은이에게서 남부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전해졌다.
여름이면 록페스티벌의 무대로 돌변하는 '코메디 광장'에서는 하얀 옷을 걸친 청년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페인트를 서로에게 뿌리고 낙서하면서 깔깔댔다. 달걀처럼 길쭉한 모양의 광장에는 푸른색 전차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회전목마, 노천카페가 거리를 잠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축제는 계속됐다.
이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오 성(Chateau d'O)으로 가는 길바닥에는 몽펠리에를 상징하는 'M' 자가 새겨져 있었고 하늘에는 현수막과 화분이 나풀거렸다. 좁은 골목에는 꽃이나 자그마한 식물을 걸어놔서 더욱 예뻐 보였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예술적으로 만드는 프랑스인의 기질이 몽펠리에서 예외일 리 없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식물원과 기마상을 지나쳐 사람들이 몰려 있는 오 성으로 향했다. 오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육각형 형태의 정자와 흡사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시내는 올망졸망했다. 높은 빌딩이 없어서 평탄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잠시 후 도시로 물을 나르고 있는 수도관을 배경으로 강렬한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서서히 떨어져 갔다. 책을 읽던 여인도, 데이트를 하러 나온 연인도 이 순간만큼은 숨을 죽였다. 지상에 걸쳐 있던 태양은 마지막까지도 온 힘을 다해 빛을 내뿜었다.
자연이 연출하고 자연이 주연한 공연은 언제나 감동을 선물하지만 몽펠리에에서의 해넘이는 더욱 숭고하게 느껴졌다. 결국 태양은 눈앞에 있는 로마 시대의 흔적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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