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7-02-01 10:21]
‘합천’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해인사!” 또? “…전두환?” 맞다.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 이름을 전 전대통령의 호로 바꾸겠다고 해 입질에 오른 곳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거기가…경남 맞죠?”
경남이 맞긴 한데, 딱 그 정도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30분 걸리지만 경남 합천군까지 마음의 거리는 10시간쯤 되는 것 같다. 사실 좀처럼 갈 일도 없다. 그런 합천에 사진기를 멘 이들이 모여드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밤새 달려 도착한단다. 가 봤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주춧돌과 석등만이 쓸쓸한 옛 절의 흔적이 있었고, 그대로 재현해 놓은 1940년대 경성이 있었다. 해인사는 합천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저평가된 여행지, 합천을 다녀왔다.
▲오도산 정상 ‘비행기 일출’
정말, 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는 일출이었다. 하늘과 산을 나눈 구름띠가 조금씩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의 별빛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푸르러졌고, 산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며 깨어났다. 수십개의 봉우리가 발 아래 떠 있다. 오도산 정상은 1134m. 가야산(1430m)이나 덕유산(1254m)만큼은 못해도 이 일대에선 가장 높다. 비행기에서 굽어보는 듯하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이 풍경, 첩첩의 산들이다. 서쪽으로는 덕유산, 기백산, 백운산 같은 1200~1300m급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성벽을 이뤘고, 북쪽으로는 가야산, 남쪽은 황매산이 둘러쌌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손수건만한 호수는 합천호다. 일교차가 큰 날엔 봉우리 켜켜이 구름이 든다. 무엇보다도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어 접근하기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 풍경을 본다는 것이 미안해지긴 하지만.
도로가 놓인 것은 1982년. 한국통신이 오도산 정상에 중계소를 세우면서 닦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첩첩산중의 깊은 산이었다. 1962년 우리나라의 마지막 야생표범이 잡힌 곳도 바로 오도산이다. 지금의 정상은 중계소로 막혀 있다. 중계소 내엔 ‘나라의 필요에 따라 내 고장 오도산 정상이 훼손돼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새겨놓은 기념비가 있다. 중계소는 현재 무인으로 운영된다.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은 정상 직전 ‘전망대’. 탁 트여 있는 데다 필름 껍데기가 굴러다녀 딱 보면 감이 온다. 일출은 ‘전망대’ 20m쯤 전에 나오는 해맞이 기념비 주변이 더 좋다.
▲전설 같은 폐사지, 영암사지
“사람들 말로는 해인사보다 컸다고 하대요. 지금도 땅 파면 무늬 새겨진 기와가 나온다니까. 저~기 부처골까지가 다 절땅이었나 봅디다.”
영암사지 지킴이 김기봉씨(56)가 양쪽 팔을 활짝 펼쳐보였다. 회랑과 금당터에 박혀 있는 주춧돌만 봐도 절의 규모가 짐작된다. 영암사라는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한 문헌에 지명과 이름이 등장하면서 마을의 구전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언제 지어졌는지, 언제 없어졌는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다만 석탑의 양식과 문헌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 후기까지 존재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절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란히 놓여 있는 석탑과 석등 사이에 서서 무릎을 굽혔더니 황매산 자락 모산재의 바위들이 병풍이 됐다. 석등으로 오르는 계단은 전체가 하나의 돌이다. 금당터 기단에는 사방으로 사자가 새겨져 있다. 어떤 것은 사자같고, 또 어떤 것은 꼬리를 흔드는 삽살개같다.
서역까지 가서 불법을 배워온 스님들이 알려줬을 것이다. 사자란 짐승은 삽살개와 닮았다고. 주춧돌에 새겨진 신장 조각, 석등 기단부의 고양이 조각, 석탑 앞 사람 모양의 조각, 돌마다 새겨진 연꽃무늬, 구름무늬…. 땅에 코를 박고 구석구석 눈길 줄 곳이 많다. 쌍사자석등과 서금당터의 돌거북돌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고즈넉한 폐사지에 어울리지 않게 민가 두 채가 절터에 뿌리를 내렸다. 한 채는 옛 절과 같은 이름의 조계종 사찰 영암사, 다른 한 채는 민가다. 여기 살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절터 이야기도 해주는 김씨는 “일흔 먹은 노인들이 장정 때 지었으니 50년쯤 된 집”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천석꾼이 자신의 땅을 학교 부지로 내놓으면서 그 땅의 집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민가 주춧돌, 절 진입로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돌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1940년 경성, 합천영상테마파크
깜빡 속았다. 서울역 정문에 눈을 갖다댔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아 참, 여기 세트장이었지. 서울역 오른쪽은 경성중앙방송국. 지금은 롯데호텔과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선 반도호텔과 미스코시 백화점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KBS 드라마 ‘서울 1945’ 촬영장. 1930~40년대 경성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식민지 시대를 테마로 한 이색 세트장이다. 기와집, 초가집이 대부분이어서 ‘민속촌’을 떠올리게 하는 여느 세트장과 다르다. 일본식 2층집이 가득 세워진 적산가옥 골목길, 코티 화장품, 별다방, 작명소, 러시아어 간판이 걸린 카페…. 구석구석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불타버린 전쟁터 세트장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곳. 평양 시가지를 옮겨 놓았다. 전쟁터 세트장은 지나치게 황폐해져서 특별히 볼거리는 없다. SBS 드라마 ‘패션 70’, 영화 ‘바람의 파이터’ 등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합천 가는 길
일단 지도부터 챙겨야 한다. 국도에, 지방도로에, 번호 없는 도로까지 호수와 산허리를 감고 달린다. 해인사를 빼면 이정표도 많지 않다. 숙소와 식사는 해인사 주변이나 합천읍에서 해결할 것.
영암사지는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에 있다. 오도산에서는 일단 묘산면을 지나가는 26번 국도를 탄다. 봉산3거리에서 봉산방향 59번 국도로 갈아탄 뒤 합천 호반을 달린다. 수원3거리에서 우회전, 황매산 국립공원 이정표를 따라 1089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대병3거리에서 황매산 방향으로 직진. 고개를 하나 넘으면 오른쪽으로 영암사지·황매산군립공원 이정표가 나온다.
외길을 따라 5㎞ 정도 달리면 영암사지 입구다. 절 앞까지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지만 주차공간은 좁다. 입장료는 없다. ‘바람흔적미술관’(055-933-4476)이 영암사지에서 가깝다. 야외에 세워진 양철 바람개비 20여개로 유명하지만 규모는 생각보다 작다. 전통찻집을 겸한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댐 근처에 있다. 영암사지에서 다시 1089번 도로로 나와 대병3거리에서 합천댐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합천댐, 합천호관광농원을 지나 합천읍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왼편으로 영상테마파크가 보인다. 입장료 성인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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