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2007년 2월 1일(목) 9:35 [경향신문]
당신. 사랑에 허기지고, 일에 지친 당신. 어느날 당신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인생이 정말 이것뿐일까.’ 당신은 소진되어 가고 있었고, 비에 젖은 창호지처럼 늘어져 보낸 날들의 끝이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중얼거리며 당신을 지켜보던 나, 마침내 지도 한 장을 건넨다.
당신은 그 이름이 낯선지 망설이는 눈빛이다. 당신의 흔들림을 짐짓 모른 체하며 등을 떠민다. 낡은 배낭을 메고 출국장에 들어서는 당신의 뒷모습이 아직 불안하다. 괜찮아, 돌아오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야.
방향타도 없이 떠밀려 온 속도전에서 벗어나 느리게 숨쉬고 싶을 때, 짧지만 짜릿한 일탈을 꿈꿀 때, 길 위의 자유 그 불온한 냄새가 그리워질 때,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가. 공간의 이동이 삶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당신, 몰래 품어온 이름이 있는가.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고픈 당신을 위해 준비된 길. 흔들리는 당신의 등을 떠밀어 보내주고 싶은 그 길의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땀 흘렸고, 파올로 코엘료의 삶을 바꾼 길. 그리고 당신과 나, 이름 없는 이들의 눈물과 땀을 지켜본 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고, 다시 작은 마을을 지나 나무와 숲이 우거진 산을 넘으면 마침내는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그토록 질투하는 스페인의 태양이 지긋지긋해질 무렵이면 “햇볕을 위해 기도하되, 비옷 준비를 잊지 마라”는 땅이 이어져 가는 비가 흩뿌리기도 한다.
◇경비와 기간=
길의 길이는 약 800㎞. 다 걸을 계획이라면 한 달이 필요하다. 하루에 필요한 비용은 2만원을 잡으면 된다(숙박비 3유로, 아침 3유로, 점심 8유로, 저녁 3유로. 순례자 전용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자고,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다). 항공료를 포함한 총 경비는 150만원 전후를 예상하면 된다.
모든 여행의 제1원칙, 배낭은 깃털처럼 가벼워야 한다. 배낭의 무게가 곧 당신 삶의 무게다. 당신의 삶은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넣어 떠날 수 있을 만큼 간결한가. 배낭을 보면 당신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포기하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니 낯선 이에게 배낭을 열어 보이는 건 당신의 가슴을 여는 것과 같다. 배낭을 꾸리는 원칙은 간단하다.
뺄까말까 망설여지는 것을 모두 뺀 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으로 짐을 꾸린 후, 다시 그 짐의 절반을 덜어낸다. 체중감량이 아닌 삶의 무게의 감량 능력, 신나는 인생을 위한 당신의 무기이다. 갈아입을 옷 한 벌과 방수점퍼, 가벼운 침낭, 손전등과 세면도구, 필기도구면 충분하다. 한 가지 더, 좋은 배낭과 워킹화에 대한 투자를 잊지 말자.
천년의 역사를 가진 길인 만큼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가장 인기 있는 길 ‘카미노 프란세스’가 무난하다. 보통 프랑스-스페인 국경지역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건너오는 800㎞의 구간이다.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가 몇 ㎞마다 있어 하루에 걸을 거리를 조절하기에 가장 편하다. 알베르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순례자용 여권 크레덴시알을 만들어야 한다. 생장피드포르나 대도시의 산티아고 협회 혹은 성당에서 1~2유로를 내고 발급받는다.
당신이 올빼미형 인간이라면 이 길에서는 변해야 한다. 순례자의 하루는 새벽 5시 기상으로 시작된다. 여름의 경우 보통 5시에서 6시 사이에 눈을 떠 6시에서 7시 사이에 걷기 시작한다. 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시간인 오후 1시를 전후해 걷기를 마친다. 일사병으로 길 위에서 장렬히 순교하지 않으려면 시간조절이 필수다. 순례자는 스페인의 마을이 잠들어 있을 때 길을 나서서 스페인의 마을이 낮의 더위와 침묵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
'♡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촌 문화 기행① 도심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0) | 2007.02.02 |
---|---|
단돈 800원에 스트레스가 확∼ (0) | 2007.02.02 |
순도 100%의 고독을 느끼고 싶을때 (0) | 2007.02.01 |
필경사와 한보철강 (0) | 2007.02.01 |
갈대숲 사이로 바람도 쉬어가는 곳 (0) | 2007.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