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사천① 검붉은 낙조에 반해 삼천포로 빠지다

피나얀 2007. 2. 9. 18:17

 

출처-[연합르페르 2007-02-09 09:45]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니었다. 겨울의 차가움을 피해 꽁꽁 얼어 붙은 몸과 마음이 훈훈해질 그런 곳을 찾아 발길이 자연스레 남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한낮에는 싱그럽게 푸른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밤이 되면 삼천포 대교가 환하게 불을 밝혀 뽐냈다. 그리고 삼천포 각산은 남해로 떨어지는 낙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삼천포 서부시장 횟집단지 뒤쪽 ㄷ자 모양의 항구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배의 바닥을 간질이는 바닷물이 차가운 듯 서로의 옆구리를 바짝 붙인 채 파도의 장단에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도록 내리쬐는 날이지만 바닷바람이 부는 항구는 옷깃을 여미게 했다.

 

멀리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새벽녘에 도착했을 고깃배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바다 사나이들과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항구에서는 탐욕의 눈을 부라리며 물고기 사냥에 나선 갈매기들이 어지럽게 종횡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숨겨두었다는 '대방진굴항'을 지나 서쪽에는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실안이 있다. 차 5~6대가 주차할 수 있는 해안도로 옆의 작은 공원에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따끈한 커피나 어묵으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작은 공간을 채운 포장마차들 뒤로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다시 그 뒤로는 햇빛을 반사시킨 바다가 금빛 물결을 출렁이고 있었다. 작은 어선들이 바다를 가르는 황금빛 물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한다. 해질녘이 가까워오며 검게 변한 섬들과 잔잔하게 넘실거리는 황금빛 바다가 평온한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타오를 듯한 붉은 해가 곧 섬 뒤로 모습을 감출 무렵, 각산(398m) 봉화대에 올라섰다. 등산객들의 발길도 잦아든 봉화대에서는 자그마한 삼천포의 전경과 삼천포 대교, 남해의 거대한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삼천포 대교 오른쪽의 바다에는 V자 대형으로 이동하던 기러기 무리들이 그대로 바다에 내려앉은 듯한 죽방렴(竹防簾)이 바다의 풍경을 더욱 이채롭게 만들고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드나드는 바다에 참나무로 말뚝을 박고 대나무 발 그물을 부채꼴로 세워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법이다. 남해의 지족해협과 이곳 삼천포 앞바다에서 볼 수 있는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몸을 거의 다치지 않고 신선도가 높아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태양은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섬 뒤쪽으로 조금씩 사그라져갔다. 밝게 빛나던 푸른 하늘이 파스텔 톤 빛깔로 바뀌고, 태양이 둥그런 모습을 감추며 낙조가 이룬 수평선은 밝은 흰빛과 노랑에서, 밝은 주황빛, 어두운 황토빛, 옅고 짙은 갈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층을 이루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밝은 빛을 발하던 금성이 태양을 따라 섬 너머로 사라져갈 무렵, 갈색의 하늘은 노을빛에 검게 타버린 섬들을 조금씩 갉아먹고 주변에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또렷하던 육지와 섬의 굴곡도 희미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산 아래는 바다와 육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암흑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어둠 가운데서 빛이 도드라져 보이듯 이제 조명을 밝힌 삼천포 대교는 태양이 사라져버린 암흑의 밤바다에서 더욱 밝은 빛으로 다가왔다. 현수교와 아치형 다리는 흰색, 노랑, 빨강, 파랑의 빛깔로 조명을 바꿔가며 밤을 수놓고, 하늘 위에서는 차가운 별들이 겨울바람에 실려 수없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