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꽃비와 커피의 우중청도(雨中靑島)

피나얀 2007. 2. 27. 18:18

 

출처-2007년 2월 24일(토) 오후 2:43 [오마이뉴스]



ⓒ2007 윤영옥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청도(靑島 칭다오)입니다. 9박 10일의 여행 기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지만 가장 짧은 기억으로 남는 곳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 때문일 것입니다.

청도에 있는 동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만 해도 괜찮던 날씨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면 급격히 나빠져 되돌아 올 수밖에 없기도 했지요.

비 오는 날이면 해변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습니다. 한쪽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그 커피숍은 ‘청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입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주르륵주르륵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창 밖에 보이는 텅 빈 해변의 파도는 스르륵스르륵 꿈결처럼 쓸고 갑니다.

우중청도(雨中靑島), 청도는 제게 유명한 청도 맥주처럼 톡 쏘는 곳이 아니라 커피 향기처럼 아련한 곳입니다.

그날도 길 위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소청도 공원부터 해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름다운 건물이 많다는 팔대관(八大關:빠다관) 풍경구로 향하던 중이었지요.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는 내리고, 너무 오래돼서 성능 떨어진 방수 재킷 하나로 간신히 비를 막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2007 윤영옥
ⓒ2007 윤영옥
▲ 팔대관 풍경구의 예쁜 집들
ⓒ2007 윤영옥
비 내리는 날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저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걷고 있는 길이 비와 꽤 잘 어울렸거든요.

팔대관 풍경구의 분위기는 확실히 중국의 여느 거리와는 달랐습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보도(步道)하며, 비어 있는 곳이 많았지만 정원 딸린 서구식 집들, 정원을 채우고 있는 나무들. 간간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평화로우면서도 약간 쓸쓸해 보입니다.

그리고 꽃나무들. 비를 맞아 꽃잎이 다 떨어진 꽃나무들. 차가운 비를 아프게 맞은 꽃나무들은 꽃잎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둥글게 남은 꽃 자국을 보면서 조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아…. 봄날이 가는구나.

봄과 여름의 길목에서 이 비는 확실한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꽃나무에는 푸른 잎이 돋겠지요. 제가 맞은 비는 닦아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나무들이 맞은 비는 선연한 자국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 꽃 자국은 제 마음속에도 청도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스쳐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지요. 이제는 지나가 버린 길 위의 시간들도 제게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았기를 바랍니다.

ⓒ2007 윤영옥
ⓒ2007 윤영옥



덧붙이는 글
* 아시다시피 중국에서는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의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번체를 사용했습니다. 기사의 지명은 '우리 말 발음(한자:중국어발음)'의 형식으로 표기하였습니다.

* 이 글은 지난 해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제남, 태안, 곡부, 청도를 여행한 발자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