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파숙지 아사삭 씹히는 맛... 이게 바로 봄맛!

피나얀 2007. 3. 23. 20:50

 

출처-[오마이뉴스 2007-03-23 18:21]

 

 

▲ 갖은 양념을 하여 조물조물 무친 파숙지. 봄에 딱 어울리는 나물이다.

 

ⓒ2007 전갑남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오늘따라 마음만 급할 뿐 글이 잘 안 써진다. 뭐가 꼬인 듯 답답하다. 문맥이 맞지도 않고 자꾸 엉키는 기분이다. 쓰고 지우고. 머리가 텅 빈 느낌이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럴 때는 머리를 식히는 수밖에. 마당으로 나왔다. 마니산 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훈훈하다. 싱그러운 봄바람이다. 긴 호흡을 해본다. 신선한 공기가 달게 느껴진다.

집 앞 논둑길을 찬찬히 걸어본다. 쑥이 올라오고 있다. 여리디 여린 애쑥이다. 지금 캐는 쑥은 봄나물로 최고이다. '애쑥국에 산골 처자 살찐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된장 풀어 쑥국을 끓여 먹으면 봄 내음과 구수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봄에 올라온 쪽파가 싱싱하다

아내는 봄에 쑥 캐는 것을 좋아한다. 도회지 친구들을 불러들여 목 좋은 곳에서 쑥을 캔다. 쑥국도 끓이고, 쑥개떡을 해서 나눠 먹는다. 또 데쳐 냉동실에 보관하여 두고두고 먹기도 한다.

아내가 먼발치서 손짓을 한다. 옆구리에는 나물 바구니가 들려 있다. 해가 넘어가는 데 쑥이라도 캐려나?

"당신, 뭐하려고?"
"쪽파 뽑아 무치게요."
"파숙지?"
"당신은 알기도 잘 아네!"


내가 자라던 전라도에서는 쪽파를 데쳐 무친 나물을 '파숙지'라 했다. 새봄에 먹는 음식으로 색다른 맛이 났다. 예전 먹었던 맛이 살아날까? 봄나물로 냉이, 달래, 쑥, 머위와 같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새봄에 올라온 쪽파도 야생으로 자라는 나물 이상이다. 양념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파김치나 나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 날이 따스해지자 올라온 파이다. 싱싱한 모습에서 봄이 느껴진다.
ⓒ2007 전갑남
아내 손에 이끌려 밭으로 갔다. 이른 봄 우리 밭에도 먹을 게 있다. 밭 가장자리에 심은 대파, 쪽파와 부추가 그것이다. 부추 이파리는 아직 어리지만, 대파와 쪽파는 봄을 맞아 푸르고 키도 제법 자랐다.

"아직은 자잘하네. 좀 커야 할 것 같은데."
"이래봬도 꽤 큰 거예요."


며칠 봄 가뭄에 실하지는 않다. 아내가 쪽파를 쑥 뽑아본다. 뿌리가 드러나자 생각보다 크다. 몸도 통통하다. 대여섯 뿌리를 뽑았는데도 한 움큼이다. 저녁 한 끼로 충분할 것 같다.

"나중 파김치 담그면 좋겠어?"
"좀 기다려 봐요."


한 열흘 정도면 키가 더 클 것이다. 씨로 쓸 것만 놔두고 죄다 뽑아 파김치를 담그면 좋을 것 같다. 파김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익혀서 신맛이 날 때 밥에 걸쳐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쪽파는 무한한 생명력의 작물

한겨울에 쪽파는 사그라져 볼품없이 검불로 변한다. 수염뿌리로 깊게 뿌리를 내려 꽁꽁 언 땅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낸다. 따스한 봄기운을 받아 파란 고개를 내미는 이치가 참 신기하다. 어찌 보면 쪽파는 텃밭에서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한번 기운을 차린 쪽파는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쑥쑥 자란다. 제 몸의 검불을 헤치고 올라오면서 싱싱함을 뽐낸다.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새 기운이 느껴진다.

쪽파는 가꾸기가 쉽지 않다. 뿌리를 갈아먹는 벌레에서부터 잎끝이 지저분해지는 병까지 병치레가 좀 심하다. 그래서 농약을 치며 관리를 잘해야 한다. 상품가치가 있게 가꾸려면 보통 정성을 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가을 쪽파를 꽤 심었다. 집에서 가꿔먹는 것이라 약 치는 것을 게을리했다. 시들시들 잘 자라지 못해 시장에서 사다 양념을 했다. 겨우내 내버려두다시피 한 쪽파가 파란 싹이 올라와 파릇파릇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니 아주 반갑다.

아사삭 씹히는 소리는 파숙지를 먹는 또 다른 맛

"여보, 파강회는 안 되겠지?"
"오징어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파숙지만 할게요?"
"다음엔 솜씨 한번 내볼 거지?"
"여부가 있겠어요."


예전 어머니는 파강회를 가끔 해주셨다. 끓는 물에 데친 쪽파를 적당한 길이로 접은 뒤 끄트머리로 오징어와 같은 해물을 둘둘 말아 만들었다. 이를 양념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달큼한 맛이 그만이었다.

쪽파로 파강회를 해먹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게 파숙지이다.

▲ 파를 뽑아 다듬은 뒤 깨끗이 씻는다. 끓은 물에 살짝 데쳐 갖은 양념을 하여 무친다. 간은 간장을 사용하면 좋다.
ⓒ2007 전갑남
아내가 파 밑동을 칼로 싹둑 잘라낸다. 쪽파 다듬는 일은 만만찮다. 가느다란 것을 일일이 다듬으려면 일삼아서 해야 한다. 재래시장 같은 데 가면 할머니들은 깨끗이 다듬어서 판다. 할머니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값이 무척 싸다는 생각이 든다.

다듬어놓은 파를 깨끗이 씻어내자 싱싱함이 더하다. 이제 끓는 물에 데쳐 조물조물 무치면 맛있는 파숙지가 될 것이다.

아내가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물이 팔팔 끓어오른다.

"여보, 이제 어떻게 해? 빨리 해야지!"

아내를 불러내자 부랴부랴 일을 시작한다. 숨이 너무 죽으면 맛이 없다며 살짝 데친다. 데친 것을 찬물에 잠깐 헹궈낸다. 색깔이 선명하다.

이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깨소금, 들기름을 넣고 무친다. 파숙지에는 마늘을 넣지 않아야 매운맛이 덜하다며 빠뜨린다. 자기가 먼저 간을 본 뒤 양념 묻은 손으로 한입 건네준다.

"아사삭 톡 터지는 맛이 아주 좋아! 진짜 맛있다."
"내 솜씨가 좋은 게 아니라, 재료가 좋은 거예요!"


어떤 요리든 좋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싱싱한 쪽파에다 양념재료가 우리가 재배한 것들이라 더하는 것 같다. 고춧가루도 손수 거둔 것이고, 고추장, 간장도 집에서 담근 것들이다. 들기름도 집에서 기른 들깨로 짰다. 거기에다 아내의 정성까지 들어갔으니 맛있을 수밖에.

뜨거운 밥에 무생채와 파숙지를 넣고 밥을 비며 먹었다. 금세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봄에 느낄 수 있는 입맛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저녁을 물리고 다시 컴퓨터 앉았다. 차분히 자판을 두드려 본다. 오늘은 원고가 완성되려나?

 

▲ 각종 나물과 파숙지를 넣어 뜨거운 밥에 비며먹는 맛도 그만이다.

 

ⓒ2007 전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