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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진달래가 핀 곳에 생강나무도 피었습니다

피나얀 2007. 3. 23. 22:06

 

출처-2007년 3월 23일(금) 10:26 [오마이뉴스]

 

 

▲ 진달래

 

ⓒ2007 안준철

 

곱다. 참 곱다. 저것을 핏빛 그리움이라고 해야 하나? 붉은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상투적인 표현을 머리에 떠올렸다가 다시 지워버렸습니다. 생명을 다해서 피어나고 있는, 아니 피어나기 직전의 눈부신 아름다움 앞에 어쭙잖은 요설을 늘어놓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몇 살이나 될까? 열여섯? 그보다는 두어 살 많은 열여덟이나 열아홉? 아마도 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봄직도 하겠습니다. 더 이상 자라지 말고 이쯤해서 성장을 멈추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꽃이든 사람이든 시간 앞에서는 평등합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피기 마련이고, 피면 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피어나는 순간은 생명을 다해서 활짝 웃을 일입니다. 후회 없도록 환히, 아주 환히.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그것은 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망울이었습니다. 아직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그 작은 망울들이 처음에는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망설임'이라고 지어줄까 했는데, 고마우신 한 네티즌의 도움으로 그날 내가 본 꽃이 진달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쭉과 진달래는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쉽답니다. 잎이 나기도 전에 가지 끝에 분홍색 꽃을 먼저 터뜨리는 놈이 진달래요, 잎과 함께 꽃을 피우는 녀석이 철쭉이랍니다. 너무 싱겁나요? 정답은 '진달래'. 그러니까 철쭉은 늘 진달래 다음에 핍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철쭉이란 놈이 인사를 하러 올 것입니다.'

▲ 진달래
ⓒ2007 안준철


 
▲ 진달래
ⓒ2007 안준철
'잎이 나기도 전에 분홍색 꽃을 먼저 터뜨리는 놈'은 사랑이 급했나 봅니다. 가만 보니 급할 만도 합니다. 저리도 고운 자태를 어찌 감추고만 있을 수 있을까요? 영락없이 새색시 볼에 찍은 연지입니다. 저 고운 빛이 어디서 왔을까요? 하늘과 땅의 도움을 받아 피어나는 꽃들이지만 저 붉고 고운 빛은 작은 씨앗 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겠지요.

저는 그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작은 씨앗, 혹은 나무의 뿌리나 가지 어딘가에 그런 황홀한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나는 꽃을 보면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가 됩니다. 어린 아이는 단순하지요. 행복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이 값없이 주신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햇살과 물과 바람이면 모든 것이 족한 꽃나무들처럼 말입니다.

▲ 생강나무
ⓒ2007 안준철


 
▲ 생강나무
ⓒ2007 안준철
진달래가 핀 곳에는 생강나무도 함께 피어 있었습니다. 생강나무와 통성명을 나눈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알고 지낸 지가 꽤 오래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생강나무와 눈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서 자주 만난 까닭이기도 하지만 지난 한 주일 내내 제 주변 사람들과 생강나무 이야기를 하며 지낸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강나무 첫 가지를 잘라 냄새를 맡아 보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동백꽃이라고 부른다고,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그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라고 말해주었더니 다들 대단한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마치 자연과 인간을 중매해주는 중매쟁이 노릇이라도 한 듯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답니다.

▲ 노루귀
ⓒ2007 안준철


 
▲ 개불알풀
ⓒ2007 안준철
산이나 들녘, 혹은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 제 눈에는 그리도 예쁘고 아름다운데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렇게 곱고 아름다운 것들을 값없이 주신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지천에 널린 행복을 놓아두고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아 바삐 헤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봄입니다. 아, 봄입니다. 추웠던 겨울의 기억이 있기에 따사로운 햇살만으로도 행복한 봄입니다. 거기에 생명을 다해 피어나고 있는 곱디 고운 꽃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십시오. 너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참 예쁘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