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4-05 09:42]
광활한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의 개수만큼, 필리핀에는 다양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빛과 어둠, 동양과 서양, 현대와 전통, 바다와 산처럼 도저히 공존하지 못할 것 같은 가치들이 이곳에 모여 융화돼 있다.
개성 넘치는 수많은 매력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몫이다. 물론 필리핀의 자연과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매력을 꺼내 보일 준비가 돼 있다.
이렇듯 매력적인 나라인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공항까지 마중 나왔던 관광청 직원이 차에 타면서 던진 한 마디는 '마닐라의 교통 정체에 합류한 것을 환영한다'였다. 아무리 교통 체증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금요일 오후, 마닐라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승용차는 기본이고 필리핀을 대표하는 교통수단인 형형색색의 '지프니'와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사이드카를 붙인 트라이시클,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려대는 대형 버스까지 더해져 난장판을 이뤘다. 중앙 분리대를 제외하고는 명확한 차선도 없어서 시내는 무질서의 전형을 보여줬다.
앞차의 꽁무니만 보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양을 보니 한숨과 탄식이 흘러 나왔다. 서울이나 방콕의 정체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닐라는 더욱 심각한 듯했다. 간선도로가 잘 정비되지 않아서 어디론가 움직이려면 1시간은 족히 걸렸다.
해발고도가 워낙 낮아서 지하철 건설은 엄두도 낼 수 없고, '메트로'라 불리는 전철은 고작해야 노선이 3개뿐이니 사람들이 도로로 몰릴 수밖에 없다. 마닐라의 도로 위에서는 만사를 잊고 몸을 뒤로 젖힌 채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길만 혼잡한 것이 아니다. 사실 '마닐라'라는 도시 자체가 어지럽고 혼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오래된 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리돼 있지 않아 어수선한 느낌이다.
한편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빌딩과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군집해 있고, 바로 옆에는 쓰러질 것 같은 가옥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인구 1천600만 명의 도시는 문어발처럼 영역을 점점 확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웬만큼 큰 동남아시아의 도시라면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다.
마닐라가 여타의 도시와 구별되는 점은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마음 졸이지 않는다. 여유 있게 생각하고, 천천히 행동한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유독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고, 언짢아도 웃으려 노력한다. 삶에 찌들어 힘들어 보이는 사람도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준다. 미소 띤 얼굴에 성내거나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 세계 어떤 도시도 소유하지 못한 마닐라만의 매력은 이렇듯 친절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면 길이 막힌다고 해서 조바심이 생기지 않는다. 여행은 행복해지려고 떠나는 것이다. 마닐라에서는 그러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 마닐라의 하루는 밤에 시작된다
아쉽게도 마닐라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지금의 모습은 그 이후 새로이 재건된 것이다.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스페인, 미국과 일본이 오랫동안 필리핀을 통치한 탓인지 마닐라에는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상징물이 없는 듯하다.
한 나라의 수도라면 볼거리가 풍성하기 마련인데, 마닐라는 조금 빈약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마닐라를 잠시 스쳐가는 경유지쯤으로 여긴다. 보라카이나 엘니도, 다바오로 가는 도중에 곁다리로 하루 정도 끼워 넣는 식이다.
그러나 마닐라에 이러한 불명예를 씌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닐라는 실로 '먹고 마시고 놀기 좋은' 곳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낮이 흘러가고 어두운 밤이 오면 도시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들면서 낮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닐라 사람들은 친구와 술 마시던 중 막차가 끊기면 귀가하지 않고 다음날까지 놀 정도로 열정적이다.
단 하루 만이라도 활기에 넘치는 마닐라의 밤을 경험해 본다면 마닐라 여행은 밤에 시작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저녁 먹으면서 술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고, 노래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마닐라에서 열기와 화려함을 만끽하려면 말라테나 마카티 지역으로 가야 한다. 스페인 지배 시절의 흔적인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옆에 위치한 말라테는 서울로 치면 종로나 명동과 흡사한 장소다.
반면에 근래 개발된 마카티는 강남쯤에 해당된다. 대형 쇼핑몰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바가 밀집해 있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두 지역은 사뭇 다르다. 말라테 부근은 서민적이고 친근감이 넘치지만, 마카티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따라서 어느 곳이 더 좋으냐는 취향에 따라 각자 판단할 문제다.
이외에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이스트우드나 레스토랑이 빽빽하게 들어찬 포트 지역도 밤이 되면 더욱 밝아지는 곳이다.
포트 지역의 나이트클럽과 마닐라 만을 따라 조성돼 있는 베이 워크 역시 다르면서도 닮은 구석이 있다. 둘을 묶는 한 가지 단서는 '음악'이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데서 머무르든, 아니면 리듬에 맞춰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든 두 곳 모두 필리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춤과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흥분했다. 이는 베이 워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목청껏 노래 부르는 아마추어 가수가 몇 집 건너 하나씩은 있었다.
다른 종류의 목소리로 시끄러운 곳이 있다. 바로 시장이다. 상인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행인을 잡아끌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농엇과에 속하는 라푸라푸(Lapulapu)를 비롯해 커다란 생선이 많았고 게, 조개, 홍합도 눈에 띄었다.
다루는 품목은 달라도 가게 주인들이 내뱉는 말은 '오세요, 오세요(Come, Come)'라는 단순명료한 단어였다. 시장에서 전해오는 정열은 나이트클럽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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