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은하수인들 이보다 더 곱고 아련할까

피나얀 2007. 4. 10. 20:10

 

출처-[오마이뉴스 2007-04-10 07:28]

 

 

▲ 신원사 옛터에 서서 바라본 계룡산의 뒷모습.

 

ⓒ2007 김유자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처럼 벚꽃은 날리고

관음봉을 넘어 연천봉을 거친 다음 신원사로 내려갑니다.
신원사에 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개산제 때 한 번 다녀온 후로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계룡산의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는 동학사 갑사와 더불어 계룡산 3대 사찰로 대접받습니다.

신원사는 651년에 보덕 스님에 의해 창건되다고 전해지는데 그후로 몇 번이나 중건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도 신정사라고 불리웠는데 1866년, 충청도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 사천왕문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2007 김유자
5층 석탑이 버티고 선 샛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절 들머리로 내려갑니다. 신원사 앞은 시골 냄새가 풀풀나는 풍경이 좋은데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해서랍니다. 다행히 절 앞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웅전 영역과 중악단의 영역으로 나뉘는 신원사

사천왕문을 통과해서 절 안으로 발을 들여 놓습니다. 사천왕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범종각이 마중합니다. 속리산 법주사 원통보전처럼 사모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지요.

신원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역과 이와는 다른 성격인 중악단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천왕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중심축의 좌우에는 영원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고 중악단은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 대웅전 마당으로 오르는 층계 아래서 바라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대웅전과 범종각(좌측).
ⓒ2007 김유자

 
▲ 대웅전 문앞에 서서 바라다본 벚꽃 핀 풍경.
ⓒ2007 김유자
대웅전 마당에는 잔디와 깨끗하게 깔린 보도가 있어서 정갈한 느낌을 줍니다. 마당 중앙에는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탑은 1990년 태국과 미얀마에서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가져와 봉안한 사리탑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있는 다포양식인데 처마 끝을 살짝 들어올려 멋을 부렸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아닌 아미타불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기단 위에 서서 앞을 바라다 보니 경내가 온통 벚꽃 천지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은빛 꽃비라도 쏟아져내리고 있는 듯한 눈부신 풍경입니다. 다같은 계룡산 자락인데도 남쪽과 북쪽의 기온차가 빚어낸 차이가 이토록 큰 것일까요? 동학사의 벚꽃은 아직 망울도 그리 커지지 않았는데 이곳의 벚꽃은 벌써 절정을 달리고 있네요.

▲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독성각.
ⓒ2007 김유자

 
▲ 대우전 우측에 자리한 영원전.
ⓒ2007 김유자
독성 탱화와 칠성 탱화가 그려져 있는 독성전을 들렀다가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모든 영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원전으로 갑니다. 영원전은 다른 사찰의 명부전에 해당하는 건물이지요. 대웅전 영역에서 한 단을 내려서면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한 선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중악단

▲ 보물 제1293호 계룡산 중악단.
ⓒ2007 김유자

 
▲ 중악단 지붕 내림마루 위의 잡상들.
ⓒ2007 김유자
대웅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50여m 가량 걸어가면 중악단이 나옵니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랍니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일찍이 신라 때도 5악의 하나로 꼽혀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상악단과 하악단은 벌써 없어지고 현재는 중악단만이 남았습니다.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유일한 유적이지요.

솟을 삼문으로 된 외삼문을 지나서 양쪽 문에 수문장이 그려져 있는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당당한 풍채로 우뚝 서 있는 중악단과 마주하게 됩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하는데 글씨가 아주 장중해 보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팔작 지붕 건물인 중악단은 궁궐 건축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보기에도 화려하고 위엄있게 보입니다. 아직 건립 당시의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주 고풍스러운 느낌이 풍깁니다.

창덕궁이나 경복궁의 지붕처럼 지붕 좌우에는 잡상을 배치했습니다. 궁궐의 안위를 지키는 수호신인 잡상은 궁궐이나 궁궐과 관련있는 건축에만 허용했던 장식입니다. 잡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들이랍니다. 잡상의 개수는 건물의 지위에 따라 그 수가 달라집니다. 중악단 지붕의 잡상은 7개이니 창덕궁 돈화문 지붕의 것과 같은 개수네요.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천장의 화려한 공포에 입을 벌리게 됩니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면 중앙 뒤쪽에 있는 단 위에 모셔진 산신도가 서서히 눈에 들어옵니다. 늙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중앙에는 산신이, 그 왼쪽에는 약간 해학적인 모습을 한 호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담장에 새겨진 무늬

▲ 중악단 담장의 무늬와 내삼문 화방벽의 무늬.
ⓒ2007 김유자
이곳에서 제 눈길을 잡아끄는 것 중 하나는 내삼문의 외벽과 담장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입니다. 내삼문 화방벽의 무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의 화방벽의 윗부분과 같습니다.

담장을 빙 둘러 새겨놓은 무늬는 해남 대흥사 승병장 사당의 담장 바깥면과 형태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저렇게 담을 치장해 놓으니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담장에 준 작은 악센트 하나가 중악단을 더욱 빛나는 건축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저렇게 아름다운 담장으로 마무리 지은 옛 사람이 장인 정신이 감동을 줍니다.

담장에 새겨진 무늬 하나가 제 마음에다 무늬 하나를 그려넣는가 싶더니 좌우 담장 옆에 자리한, 아직 또록또록한 붉은 꽃망울을 자랑하고 있는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다시 한 번 제 마음을 흔들어 결을 만듭니다.

옛터를 홀로 지키고 선 5층석탑

▲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5층석탑.
ⓒ2007 김유자
중악단 아래쪽에는 너른 공터가 있습니다. 이 공터에서 북으로 바라보면 계룡산의 뒤태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여기와서 봐야 비로소 '아하, 계룡산 천왕봉이 저렇게 생겼구나' 알게 됩니다.

공터의 끝에는 5층 석탑이 있는데 두 구조물 사이엔 꽤 너른 공터가 있습니다. 현재의 대웅전 영역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이곳에 금당지를 중심으로 한 원래의 신원사가 있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별다른 조사된 사항은 없지만 5층 석탑의 존재가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대석 위에 이중 기단 위에 서 있는 5층석탑은 4층의 탑신만 있습니다. 원래는 5층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륜은 없어졌습니다. 1층 기단 면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975년 보수 공사 때 1층 몸돌 사리공에서 사리 장엄구와 고려 시대의 동전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꽃은 지고 향기는 사라질지라도

이제 신원사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신원사 경내에 만개한 벚꽃도 며칠 안으로 이곳을 떠날 테지요. 피었다 지는 꽃이 영원을 알까요? 만일 꽃들이 영원이라는 시간의 개념을 안다면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지상에 머물다 가고 싶어할까요? 벚꽃은 제가 못다 이룬 영원이 아쉬워서 이 지상에 나무를 남겨둔 채 사라집니다.

영원은 지겨울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순간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짧은지요? 세상의 꽃은 덧없이 지고 향기는 쉬 사라질지라도 저는 오늘 신원사에 와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바라보았으니 봄날에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지복을 누린 듯 합니다.

천천히 일주문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잘 가라고, 인사성 밝은 벚꽃 몇 잎이 코 끝을 스쳐 저만치 날아갑니다.

덧붙이는 글
4월 7일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

①천안논산간고속도로 탄천IC →697 지방도 →신원사
② 호남고속도로 유성 IC →공주방면 32번 국도 →논산방면 23번 국도→ 697번 지방도→ 신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