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문화일보 2007-04-11 16:02]
|
# 봄볕 속에서 맑고 투명한 물길을 따라 오르는 길
햇볕 따스한 봄날에 만나는 맑고 투명한 물색. 봄날 물색의 아름다움은 길에서 멈춰 서서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봄이, 도회지 생활의 바쁜 일상에서 잠깐 멈춰 서 주위를 둘러볼 때야 비로소 찬란하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연초록 싱그러운 신록이 가득한 산길을 따라, 고요한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차갑고도 또 상쾌하다. 계곡 물이 모여든 작은 소(沼)의 맑은 계곡물 아래에는 자그락거리는 둥근 잔돌들과 지난 가을의 낙엽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경북 포항 북구 송라면 중산리의 내연산. 태백산맥 등줄기의 끝에 우뚝 솟아있어 한때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해발 710m의 삼지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는 내연산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여섯 시간 남짓의 고된 등산보다는 트레킹에 제격이다. 산 입구의 오래된 절집 보경사를 지나서 계곡을 끼고 즐비한 폭포를 따라 올랐다가 내려오는 트레킹은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 코스에서 가장 높이 오르는 고도가 해발 160m 안팎이니 숨이 턱에 찰 일도 없다.
올해 내연산의 물색은 특히 아름답다. 이른 봄부터 비가 자주 내린 덕분에 올해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러내던 ‘봄가뭄’이 없었기 때문. 풍부한 수량 탓에 계곡마다 맑은 물이 그득그득하다. 물색은 좋고, 으르렁거리며 쏟아지는 폭포도 한결 우렁차고 힘차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동해안 7번 국도에서 산길 초입인 보경사까지는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보경사 경내를 둘러보고 400여년이 넘었다는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는데, 벌써 20년째 절집 일을 보고 있다는 노보살이 한마디를 보탰다. “참 좋을 때 왔네요. 봄비가 자주 내려서 물도 많고, 물색도 썩 좋답니다.”
# 맑고 투명한 물을 토해내는 웅장한 폭포의 경연장
내연산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폭포는 ‘상생폭포’. 두 갈래로 갈라져 쌍동이처럼 물이 내려와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런 폭포에 용 이야기 하나쯤 없을 리 없다. 먼 옛날 폭포에 살던 용이 승천하다 산중턱 큰 바위에 꼬리를 부딪쳐 갈 지(之)자가 패었다는데, 터무니없지만 실제로도 그런 자국이 있다.
이어 삼보폭포니 보현폭포, 잠롱폭포 등 그만그만한 폭포들이 줄을 잇는다. 이름이 붙지 않은 폭포도 즐비하다. 폭포뿐만 아니다.
계곡을 따라 기화대, 선일대, 비하대, 학소대 등의 이름이 붙은 우뚝 선 바위 벼랑들이 늘어서 있다.
바위벼랑에는 수백 년의 풍상을 견뎌왔을 소나무들이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연산의 12개 폭포 가운데 최고의 경관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관음폭포. 바위벼랑인 학소대를 향해 쌍동이 폭포가 내려오는데, 물이 떨어지는 바위는 마치 해골처럼 사람이 드나들 만큼 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관음굴이라고 불리는 이 굴을 울리는 물소리가 자못 웅장하다. 관음폭포 아래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폭포 소리를 듣다보면 차가운 기운이 발끝을 타고 올라와 정신마저 맑아지는 듯하다.
관음폭포 위쪽의 철다리는 걸음을 옮김에 따라 휘청거리는데, 내려다보면 까마득하다. 철다리를 따라가는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가장 웅장하다는 연산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
철다리를 넘어서면 길은 끊기고 높이 30m가 넘는 폭포가 벼락을 때리듯 내리꽂히고 있다.
으르렁거리는 물보라의 냉기와 폭포의 위용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물보라 이는 폭포 아래쪽 시퍼런 소도 맑고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 해안도로를 따라 영덕으로 가는 길
내연산은 행정구역상 경북 포항에 속하지만, 포항보다는 경북 영덕이 더 가깝다. 내연산에서 영덕의 대표적인 포구인 강구항까지는 불과 15분이면 가 닿는다. 강구항은 영덕대게 잡이로 유명한 포구. 한 해 중 이즈음에 잡히는 영덕대게는 살이 꽉 차 있고, 탱탱한 살에 단맛이 돈다.
강구항에서는 매일 새벽 대게나 홍게의 경매가 이뤄진다. 산더미 같은 대게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이뤄지는 경매는 그 자체로 볼거리다. 경매가 이뤄진 직후 즉석에서 대게를 낙찰받은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흥정을 하기도 한다. 상인들은 대게를 들어서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귀신같이 품질을 가려낸다. 낙찰받자마자 관광객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것들은 대부분 살이 흐물흐물한 ‘물게’일 가능성이 높다. 대게의 품질을 가려낼 자신이 없다면, 그냥 경매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유다.
승용차를 타고 갔다면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잇는 드라이브 코스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영덕에는 두 곳의 해안도로가 있다. 강구항-축산항-대진항까지 이어지는 40여㎞의 해안도로를 둘로 나눠 강구-축산을 ‘강축해안도로’, 축산 - 대진을 ‘대축해안도로’라고 부른다. 해안길 풍경은 총연장 26㎞에 달하는 강축해안도로가 더 낫다. 영덕군에서 펴낸 관광안내지도에 이 도로를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도로’라고 적어 놓았을 정도. 이 길을 달리면 풍경에 마음을 뺏겨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다.
강축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풍력발전단지. 바닷가 언덕 위에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발전단지 앞에는 영덕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한 창포말 등대가 서있는 해맞이 공원이 있다. 공원의 경사면에는 수선화가 활짝 피어있다. 짙푸른 바다와 흰 등대, 그리고 노란 수선화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 구릉을 따라 만발한 연분홍 복사꽃
영덕 봄 풍경의 진수를 꼽자면 단연 복사꽃이다. 울진에서 청송, 안동 방향으로 오십천의 물굽이를 따라가며 이어진 34번 국도변의 복숭아 과수원에는 지금 복사꽃이 한창이다. 이번 주말쯤이면 영덕군 지품면 일대는 온통 연분홍 복사꽃으로 뒤덮이는 절정의 순간을 맞는다. 구불구불 운치있게 뻗은 가지마다 화려한 꽃이 달려 주변이 온통 환하다. 복숭아밭은 바닥에 잡풀들이 진초록으로 올라와 있는 데다 분홍색 꽃이 피니 마치 분홍과 초록의 꽃이불을 깔아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영덕에서 복사꽃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은 지품면 삼화리 일대와 강구-달산 간의 10번 군도변이다. 완만한 구릉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복사꽃밭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영덕 오십천 둘레의 봄꽃에 복사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꽃과 살구나무꽃들도 이제 막 하얗게 피어나고 있고, 며칠 더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면 사과나무 끝에 단단하게 여물어 있는 꽃봉오리도 하나둘씩 터질 기세다. 복사꽃과 배꽃, 살구꽃, 사과꽃이 일제히 꽃을 피워내면 영덕은 동요 ‘고향의 봄’처럼 ‘꽃대궐’을 이룰 테다.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사꽃 필 때, 대게가 춤춘다 (0) | 2007.04.13 |
---|---|
물 좋기로 소문난 곳, 日 구마모토 (0) | 2007.04.13 |
맑고 시린 봄에 두 손을 담그면… (0) | 2007.04.11 |
'청록빛 들판 마음에…' 고창 청보리밭 축제 (0) | 2007.04.11 |
'환상의 콤비' 전북 부안-고창 (0) | 2007.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