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발리② 늘 무언가 꿈꾸는 자를 위한 해변

피나얀 2007. 7. 3. 19:59

 

출처-연합르페르 2007-07-03 10:04

 


우리는 가슴 속에 망상을 품고 살아간다. 피곤하고 힘들거나 혼자서는 감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 닥치면, 몽상에 대한 갈망은 점차 증폭된다. 그와 동시에 내일이 두려워지고 멀리 떠나고픈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현실로부터 헤어나 열대의 해변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허황된 꿈, 그곳에는 따가운 햇살과 눈부신 바다와 시원한 맥주가 있다. '존재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떨쳐버리기 위해서' 발리의 쿠타 비치에 이르렀다.
 
사실 해변은 해변일 뿐이다. 그저 바다와 뭍이 만나 기다란 선을 이루는 곳일 따름이다. 불행하게도 돌아다니는 것에 관심이 없는 자에게는 그렇다. 이는 등산을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에게 백두산과 한라산이 하늘 높이 솟은 똑같은 봉우리인 것과 같다.
 
그나마 산은 올라가서 정상을 밟고 하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여행이 완성되지만, 목적지가 바다일 경우에는 고운 모래사장에 앉아있기만 해도 여행이다.
 
산행에 비하면 채비를 갖춰야 할 것도 거의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된다. 만약 여행에 난이도를 매길 수 있다면, 바다로의 여행은 산으로의 여행보다 쉽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산보다 바다를 선호하는 편이다. 허니문 장소로 동남아시아를 선택한 신혼부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다와 가까운지 여부다. 바닷물이 맑은지, 탁한지는 차후의 문제다. 아무리 리조트 시설이 훌륭해도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도무지 인기가 없다. 휴식을 취하기에는 산이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바다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객실마다 수영장이 딸려 있는 풀 빌라 리조트도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철썩이는 파도에는 사랑과 낭만이 배어 있는 모양이다.

비단 신혼여행이 아니더라도, 바닷가는 휴양에 어울린다. 사람들은 엉켜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자 할 때면 산으로 들어가 며칠씩 칩거하곤 한다. 고민과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서 세상과 잠시 이별하고 싶을 때 깊은 산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다.
 
반면 바다에서는, 특히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열대의 해변에서는 사고를 멀리 내던지게 된다. 시끌시끌하고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기분은 고양되고 근심은 사라진다. 발리의 해변 역시 그러하다.
 
발리에서 평판이 좋은 해변은 대부분 남쪽에 몰려 있다. 발리의 수도인 덴파사르(Denpasar)의 아래쪽은 모래시계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쿠타(Kuta), 짐바란(Jimbaran), 사누르(Sanur), 누사두아(Nusa Dua)가 좌우에 퍼져 있다.
 
 
◆ 쿠타, 서퍼들의 천국
 
고요하고 평온한 우붓에서 쿠타의 해변에 도착한 순간, 흠칫 놀랐다. 발리에서 이보다 사람이 많은 곳은 없을 듯싶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쿠타는 사실 타히티나 몰디브처럼 바닥이 비칠 정도로 바닷물이 깨끗하거나, 보라카이의 화이트 비치처럼 모래가 곱고 폭신하지 않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듯한 쿠타 비치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파도'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해변으로 거침없이 몰아치는 파도로 인해 수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판자를 타고 파도를 넘나드는 운동인 서핑은 쿠타를 완전히 점거한 듯했다. 발리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던 것은 호주와 유럽 출신의 서퍼들이 쿠타를 서핑의 최적지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쿠타에서는 여전히 형형색색의 보드가 조형물처럼 꽂혀 있었고, 서퍼들이 너른 해변을 무대로 삼아 활개를 치고 있었다. 수차례 넘어지고 쓰러져도 서퍼들의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서퍼들의 성지로 각인되면서, 쿠타는 자연스레 밝고 활동적인 여행지가 됐다. 해변 뒤쪽으로는 맥도날드, 던킨 도넛,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 가게와 편의점, 미국 레스토랑 체인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여행객이 바다와 상가를 점유했다면, 해변 뒤편의 그늘은 발리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간의의자와 탁자를 갖다놓고 음료수를 팔거나, 호객행위를 했다. 놀기 좋은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채 본연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쿠타를 빠져나오면 흥겨움이 가시고 다시 차분해진다. 사누르와 누사두아는 고급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공항 근방의 짐바란 역시 소박한 어촌 같은 곳이다. 짐바란에는 해산물 바비큐를 판매하는 노천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었다. 낮에는 강렬한 햇볕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지만, 해가 저물 무렵부터 성황을 이뤘다.
 
태양이 빨강부터 파랑까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만든 뒤 바다 아래로 퇴장하자 본격적인 정찬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연인들의 다정한 몸짓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