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펌] 센강이 좌우를 가르듯 패션은 학과를 가른다

피나얀 2005. 11. 13. 18:17

 


 

 

[한겨레]

베이지색 허름한 점퍼에 유행 안타는 청바지, 몇 년 전 한창 인기를 끌던 ㄹ사 가방을 덜렁 메고 안경을 푹 눌러낀 채 걸어가는 한 학생. 그를 본 다른 학생들이 쑥덕댄다. “쟤, 왜 이렇게 ‘공대’스럽니~”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정장으로 빼 입은 학생을 보면, “야, 호텔경영 애들이다.” 방금 미용실에서 나온 듯한 세팅 머리에 단아한 치마를 두른 채, 올 가을 최고 유행인 벨벳 자켓을 걸쳤다. 또각또각 구두소리 사이로 또 들리는 한마디, “여대생인거 완전 티난다.”

 

패션의 (대학)사회학쯤 되려나. 외모나 옷차림이 강북, 강남을 갈랐듯이 학생의 첫인상은 학년, 학과 심지어 대학까지 말해준다. 물론 억울한 피해자가 있게 마련이다. 한껏 멋부려봤댔자 안쓰러울 만큼 꾀재재한 인문대 여학생도 있게 마련이고, 진심으로 패션에 초월한, 여대생도 있는 거 아니겠나.

한 눈썰미 하는 광고홍보학과의 서현영(남서울대 4년)씨. ‘세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패션은 학과를 가른다는 걸 일찍이 눈치챘으니, 하는 말이 이렇다. “얌전한 선생님 옷차림이면 십의 여덟은 아동복지과다.

트레이닝복이면 스포츠경영이 대부분이고, 애니메이션과 같은 경우엔 머리색이 빨주노초파남보를 능가한다.

” 동덕여대 김성민(방송연예 1년)씨는 “우리 과 교수님들이 ‘너넨 청바지가 교복이니?’ 하실 정도로 청바지가 대세 ”라며 “연예인 지망생들이 많아 긴 생머리에 맵시 나게 청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는다”고 말한다.

 

물론 요즘 대학생들이 명사 몇개나 수식어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오산이다. 1학년 때부터 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소위 ‘운동권’이라 불려온 박사랑(이화여대 국어국문학 3년)씨의 패션 컨셉은 ‘둘둘말기’라고.

“보통 ‘보헤미안’이나 ‘유러피언 룩’이라고 하는데 보라, 검정, 갈색과 같은 짙은 색상의 옷을 ‘둘둘’ 말고 다니는 스타일이죠”라고 박씨는 설명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눈으로 묘사하자면 ‘웬 치렁치렁 늘어뜨려 정신 사나운’ 패션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 세계엔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학생, 펑퍼짐한 바지에 자기보다 갑절은 더 커보이는 티셔츠로 맞춰진 힙합룩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날 치마조차도 금기시됐던 운동권이 이럴진대, 유행과 개성의 첨병이라 할 요즘 일반 대학생들이 매일 밤 저렴하다는 인터넷 쇼핑몰을 휘젓고 다니거나, 연예인 옷 스타일을 관찰하려고 드라마를 ‘관찰’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전통과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투박하게, 대량복제됐던 ‘과복’(과 이름 등이 새겨진 단체복)이 철저히 자신들을 좀더 세련되게 홍보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첨단 패션에 맞춰 디자인될 때는 개인적 감성과 집단주의적 감성이 어떻게 매끄럽게 접목되는지를 보는 것 같다.

 

패션이야말로 일차적 욕망이자 발언이 아닐까 한다. 욕망과 발언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개성적이고 세련되어지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로서 자유로워지고 뚜렷해지기도 한다.

만우절 때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가는 대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한 여대에서는 아예 연례 행사로 교복 클럽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옷차림으로 ‘공대스럽다’는 말을 들었다면, 물론 세련되거나 개성적이지 못하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개성 만능 사회에서 외려 더 개성스럽게 당신의 발언은 누구보다 뚜렷하고 진정 자유롭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김승연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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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2005-11-10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