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바다는커녕 지금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피나얀 2006. 4. 22. 19:15

 

지난 토요일 우리 가족은 여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서해안 여행에 나섰습니다. 동해안으로 갈까 했지만, 요즘엔 오히려 서해안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전부터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그리 소문 나지 않은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가족들이 조용히 놀고 조개도 잡을 수 있는 곳을 찾으니 대천과 보령 쪽 서해 바다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 쪽을 다녀온 사람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은 후, 프린트를 해서 먹을거리도 동생네와 나눠 준비를 했습니다.

ⓒ2006 양귀엽
오후 아이들이 학원을 다녀오고, 여의도 쪽에 사는 동생집으로 향하는데 벚꽃축제로 올림픽 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오후 6시 서해안 고속도로에 올라섰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는 차들이 만원이었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대천항에 도착한 후 단골집에서 광어회를 뜨고, 모시 조개에 가리비, 소라까지 샀습니다. 집에서 큰 냄비와 초장, 상추 등을 준비했기에 이젠 숙소를 정해서 삶아 먹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아낸 홀뫼 해수욕장을 다천항의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까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아이들은 배 고프다며 아우성을 하고 운전을 했던 남편 또한 "아무 펜션이라도 들어가서 자자"고 했지만, 그래도 저의 목적은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목적이었기에 일행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계획했던 목적지를 찾아갔습니다.

일단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민박집 한 곳에 전화를 하니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는데, 대충 설명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다른 한 곳은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한 곳에 전화를 했더니 할아버지가 동네 이름을 가르쳐 주셨는데 네비게이션은 그 동네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의 온갖 구박을 들으면서 무창포 해수욕장 근처까지 가서 차를 세운후 홀뫼 해수욕장을 물으니 "지금 어두워서 거기 찾아가기 힘들텐데요"라면서 가는길을 대충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난감했습니다. 온 사방은 칠흑같이 깜깜하고 뱃속에서는 시냇물 내려가는 소리가 나고, 일단은 그 가게 주인이 일러준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2006 양귀엽
그런데 그 길은 산속 시골길처럼 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십분 이상을 달릴 때 남편은 드디어 화를 냈습니다.

"아무곳에서나 자자니까 이게 뭐야? 바다는커녕 지금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민가의 불빛 한 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길에서 웬 1톤 화물차가 나왔습니다.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뻐서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독산리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예~ 이 길로 죽 들어가신 후 우회전 해서 또 다시 좌회전을 하세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농로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민가는 거의 보이지 않고 십분쯤 들어가니 두어 채 집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오는 간판은 오는 내내 전화를 몇 번이나 넣었던 그 집이었습니다. 가게에 불을 켜 두고, 주인과 손님이라고는 먼 거리에서 온 50대 부부가 전부였습니다.

먼저 방을 예약 했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떡과 육회를 주인집에 갖다 드렸습니다. 뒷날 계획을 짜려고 "아줌마! 내일 언제쯤 물이 빠질까요?" 하고 물으니 "지금 물이 빠졌는데요. 지금 바로 바다에 나가야 되니까 빨리 나오세요" 여장을 풀고 광어회 몇 점과 서울에서 가져간 떡과 육회로 뱃속을 달랜 후 전부 바다로 나갔습니다.

인터넷에서 장화를 대여해 준다는 글귀를 보고 갔지만, 그 집에 장화는 이미 다른 부부가 예약을 해 놔서 우리 일행은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챙겨온 헌 양말을 신고 칠흑같은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 시간이 토요일 밤 10시경이니 바람은 동지섣달 칼바람처럼 살을 도려낼듯 추웠습니다.

다행인 것은 바다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물은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빠졌기에 학교 운동장을 달리듯 내 달렸습니다. 2인 1조로 조개를 잡기 시작 했습니다. 한 사람은 플래시를 비추고 또 한 사람은 조개를 캐고…. 조카는 남편에게 플래시를 비추고, 딸은 바구니에 조개를 담아 들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몇 마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십 분쯤 지나고 바다 멀리 들어가니 조개(떡조개)들이 밖으로 혀(입수관과 출수관)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조개의 혀를 발견과 동시에 호미를 잡은 손을 재빨리 놀려 조개가 땅 속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잡아내야 했습니다.

ⓒ2006 양귀엽

한 시간쯤 지나니 손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잡았습니다. 밤 12시 쯤 파도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일찍 철수 했습니다. 두 팀이 잡은 조개는 들통 가득히 15킬로그램 정도 잡았습니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와 대충 씻은 후 가리비 삶은 국물에 라면을 끓여서 먹은 후 잠을 청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꼭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듯 전부 끙끙 앓았습니다. 하지만, 아침 10시면 또 물이 빠지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아침밥을 지었습니다.

김치를 푹 익힌 후 저녁에 먹다 남은 회와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찌개는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 밤에 흙과 소금물에 젖어 수돗가에 버려둔 양말을 다시 주워 신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일요일 아침 서해 바다는 바람이 거셌습니다. 일단은 맛조개를 잡으려고 가져간 맛소금을 전부 나눠줬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우리 일행 말고도 20~30여명의 관광객들이 조개를 캐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맛조개의 구멍을 찾는데 실패하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몇 마리의 맛조개를 캔 뒤 추운 날씨때문에 아쉬운 철수를 해야 했습니다.

숙소에 아이들을 두고 여동생과 들에 쑥을 캐러 나섰습니다. 가져간 칼이 한 개 밖에 없어서 주인집에 칼을 빌리러 갔더니 인심좋은 아저씨가 "여기 뒤에 가면 시금치 밭이 있는데 우리것이니까 캐 가세요" 해서 쑥도 캐고 시금치도 캐 점심까지 먹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다음에는 일정을 여유있게 잡아서 꼭 한 번 더 찾아가고 싶은 곳이 홀뫼해수욕장입니다. 대천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홀뫼해수욕장 한번 찾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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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17 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