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북경엔 엄청난 황사 바람이 불었나봅니다. 전날 하루 종일 커튼을 쳐놓고 방안에만 있어서 밖의 사정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밖에 나와 보니 하늘도 공기도 누런데다 길바닥이나 지붕에는 황사가 한 겹을 덮고 있어 시야가 온통 누렇더군요. 지금껏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황사가 심하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 중국의 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요.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가 외출을 '감행'한 이유는, 오늘 같이 향산공원(香山公園)에 놀러가자고 몇주 전부터 학생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에서 '봉고차' 기사와 흥정을 해 80위안에 향산공원까지 가기로 했습니다(중국에는 정식 영업택시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태워다주는 차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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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향산 |
ⓒ2006 윤영옥 |
제가 중국어를 배울 때 중국어 선생님께서 이 향산 이야기를 하시면서, 북경 사람들은 향산을 대단히 높은 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북경이 워낙 평지라서 그렇다면서, 많은 산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보면 다 실망한다고 하셨습니다. 별로 높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산이라고요.
저는 그렇게만 믿고 있었습니다. 별로 높지 않은 평탄한 산일 것이라고. 그래서 같이 가는 다른 일행들에게도 별로 높지 않은 산이니 부담 없이 가면 된다고 호언장담을 했지요. 그러나 차에서 내려 매표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산의 위용(?)이 저와 다른 교수님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설마 저 산이야? 저게 안 높다고? 누가 저 산보고 안 높다 그랬어."
'판단'이 가지는 주관성이란 이렇게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입견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력도요. 물론 그 선생님께서는 낮은 산이라고 느끼셨을 수 있지요. 하지만 '낮은 산'이라고 각인돼 있는 상상 속의 향산을 실제로 보았을 때 제가 느낀 향산은 결코 낮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상의 끝에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만 걸어 내려오기로 하였습니다. 향산공원 입장료는 10위안인데, 케이블카 이용료는 30위안입니다. 상당히 비싼 편이지요. 케이블카는 케이블카라기보다는 스키장의 리프트에 가깝습니다. 둘씩 짝을 이루어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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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 |
ⓒ2006 윤영옥 |
2주 후에 여행갈 계획인 태산(泰山)도 전부 계단으로 되어 있다던데……. 왜 산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콘크리트를 깔아버렸는지 의문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이 근대화, 문명화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계단보다는 흙길을 내려가는 것이 몸에는 더 좋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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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를 타고도 한참을 올라가야 합니다. |
ⓒ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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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건물의 지붕이 온통 황사로 덮여 누렇습니다. |
ⓒ2006 윤영옥 |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 산 정상입니다. 힘겹게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꼭대기에 왔다는 기념으로 정상임을 알리는 바위비석 옆에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가방 속에 싸가지고 온 물과 과자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리프트 타고 올라오는 것도 힘들다고 농담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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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
ⓒ2006 윤영옥 |
'생각보다' 높은 산이어서, 내려가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대신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저는 그냥 일반 공원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으니까요.
사실 중국에 와서 천단공원, 지단공원, 일단공원, 북해공원 등 많은 공원을 구경하다보니 서서히 자연이 그리워졌거든요. 서울에서는 산이 보고 싶으면 어디서든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산을 볼 수 있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지하철 타고 한 시간만 가도 바다를 볼 수 있는데, 북경에서는 주변이 온통 칙칙한 색의 건물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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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산에는 청솔모가 많습니다. |
ⓒ2006 윤영옥 |
향산의 위쪽에서는 별로 봄을 느낄 수가 없었는데,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꽃들이 많이 피어있고, 화원을 가꾸는 손길이 부산합니다. 화려한 색채의 꽃들을 보니, 10위안을 내고 들어와 위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래쪽에서 산책만 해도 그 값은 톡톡히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도 아래쪽에 훨씬 사람이 많고요.
오늘은 공원 입구의 벽운사(碧雲寺)에도 가보지 못했고 향산은 봄보다는 가을의 단풍이 더 아름답다고 하니, 가을이 오면 향산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황사가 북경을 누렇게 뒤덮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봄의 향산도 나쁘지는 않지만 가을의 향산은 더욱 향기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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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꽃밭 |
ⓒ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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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산공원 북문 근처의 호수 |
ⓒ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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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19 11:07]![](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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