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어! 법당에 부처님이 없네

피나얀 2006. 4. 29. 19:06

 

 

▲ 농부가 풍년농사를 위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 사람의 마음도 갈고 닦아야 복을 짓고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2006 임윤수
날벼락이나 돈벼락은 있어도 복벼락은 없다

 

 
▲ 백운사엘 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애절한 눈빛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보살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06 임윤수
복(福)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짓고 거두는 삶의 과실이라고 합니다. '날벼락'이나 '돈벼락'이란 말은 있어도 '복벼락'이란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벼락은 재앙이며 환난입니다. 벼락이란 전광석화처럼 일순간에 벌어지는 찰나의 재앙이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복벼락을 맞아 일확천금을 얻고, 복으로 이어졌단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땅 일궈 씨 뿌리고, 잘 가꾼 농부가 좋은 결실을 거두듯, 삶의 과정에서 항시 뿌리고 가꿔야 거둬들일 수 있는 생의 열매가 바로 복입니다. 씨앗을 뿌리더라도 시간이 흘러야 결실을 거둘 수 있듯 복이란 것도 짓기를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거둘 수 있는 숙성된 결실입니다.

황금열매를 맺는 귀한 씨앗도 싹트고 뿌리내릴 수 없는 척박한 땅에 뿌려지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복이란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복이란 사람들이 일구는 심성의 밭에서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는 오묘한 결실입니다.

'선' 심은데 '복' 나고, '악' 심은데 '벌' 난다

인간의 심성은 땅과 흡사합니다. 당장은 척박한 황무지일지라도 끊임없이 갈아주고 가꿔주면 차츰차츰 옥토가 되듯 사람들의 마음도 갈고 닦으면 선심(善心)이 됩니다. 복이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박복하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물지게를 져 나르고 돌을 골라내듯 그렇게 복을 짓다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초처럼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주는 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 관세음보살상 뒤로 약사전이 보이고 그 약사전 뒤로 마음에 병조차도 치료해 준다는 마애약사여래부처님이 보입니다
ⓒ2006 임윤수
착하고 열심히 사는데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으니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한탄하며, 선하게 살며 복 짓는 걸 포기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온갖 못된 짓을 다함에도 버젓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복을 한낱 기회나 재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고 열심히 살지만 박복한 사람은 전생의 업보에 따른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현세동안 좋은 일로 공덕 많이 쌓고 참회하다 보면 전생의 업장이 모두 소멸되니 다음 생엔 분명 그 복이라고 하는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 약사전에는 여느 법당들처럼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통유리 건너 쪽으로 마애약사여래불이 보입니다.
ⓒ2006 임윤수
악하게 살지만 당장은 복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은 전생에 쌓은 공덕을 소진하는 중이니 현세의 그 악업이 내생엔 분명 박복한, 쭉정이 같은 그런 삶의 고통으로 주어질 게 뻔합니다.

팥을 심었는데 콩 싹이 돋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콩이나 팥이나 그 떡잎이 비슷하니 떡잎만을 보고 콩을 심었는데 팥이 돋았다고 착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분명 콩 심은 데는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납니다. 이게 윤회의 진리며 법계의 순리입니다.

사람들이 절을 찾아 복전함(福田函)에 보시금을 넣거나 공양물을 올리는 건 부처님에 대한 예경이기도 하지만 육바라밀의 으뜸이라고 하는 보시를 실천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복을 짓는 씨 뿌림이며 가꾸기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게 복전함에 보시금을 넣는 것만이 보시가 아닙니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물을 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주거나, 휴대전화 한통을 빌려주는 것도 보시가 되니 복을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거창한 일만은 아닙니다.

백마가 나타났었다는 예사롭지 않은 절터 백운사

세속인의 혼잡한 심산만큼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니 저만치 백운사가 보입니다.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문도 없지만 예사 터가 아닌 듯합니다. 굳이 풍수지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절터로는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백마산은 해발 46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조선 인조 27년에 백마가 나타나서 이 산기슭 일대를 돌아다니다 일생을 마쳤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산입니다. 또한 금강과 한강을 가르는 준령으로 백마산을 기준으로 백운사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금강으로, 정상 뒤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강으로 흘러드는 경계의 산이기도 합니다.

 

▲ 일구월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은 비토를 옥토로 가꾸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대리석으로 된 108 계단을 올라가면 마애약사여래부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2006 임윤수
백운사(白雲寺)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백마산에 자리한 절로 고려 충숙왕 8년인 1321년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창건당시에는 절 이름이 대흥사(大興寺)였는데 조선 영조 때 일부 승려들이 힘자랑을 하다 살인을 하는 일이 벌어져 폐사되었다 복원과 중수가 반복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백운사 곳곳에는 불심을 일구는 불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바위에도 불심이 새겨져 있습니다.
ⓒ2006 임윤수
한 승려의 과욕이 상흔으로 남아 교훈을 준다

요즘의 백운사는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삼독(三毒)의 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한 스님의 무리한 불사가 우매함과 욕심의 상흔으로 흉하게 남아있습니다.

다행스럽게 2005년 초부터 주석하기 시작한 징관(澄觀)스님이 주변을 정비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입구에 있는 5기의 부도에 걸 맞는 좋은 도량으로 다시 그 모습을 갖추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부도 밭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백운사 경내입니다. 백운사 경내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각들과 불보살상 그리고 석물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조화롭게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세워진 5층 석탑과 범종각을 지나면 정면으로 용왕궁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흡사 배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를 대하게 되니, 피안의 세계로 들게 하는 '반야의 용선'이라고 합니다.

용왕궁을 지나고 배바위를 지나면 저 아래서부터 보였던 관세음보살상 앞이 되고 관세음보살상 뒤쪽으로 약사전이 보입니다.

병든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의사부처님, 마애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상을 지나 올라가는 약사전은 누각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들어서게 되는 2층의 약사전엔 불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여느 절들의 적멸보궁처럼 법당 내 어디에도 모셔진 불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불상이 봉안되어있어야 할 정면은 통유리로 되어있고 불단엔 공양물들만 올려져 있을 뿐 당연이 모셔져 있어야 할 약사여래부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두리번거리다 보면 통유리를 통해 산상 쪽에 마애약사여래입불이 보입니다. 약사여래불의 웅장함과 그 호상에 저절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나무약사여래불"을 되뇌게 됩니다. 약사전을 내려와 배바위 앞에서 시작되는 108 돌계단을 올라서면 약사전에서 합장예배를 올렸던 마애약사여래불 앞으로 가게 됩니다.

 

▲ 마애불을 모시라고 일부러 이런 바위가 솟았고, 저런 바위들이 놓여 진 모양입니다. 약사여래불이 조성된 그 바위를 주불바위라고 하면 그 바위 위로는 비바람 막아줄 삿갓형태의 바위가 놓여있고, 좌우로 협시불 바위가 있습니다.
ⓒ2006 임윤수
속세의 108번뇌를 씻으라고 돌계단조차 108계단으로 하였는가봅니다. 몇 번 꺾어지고 굽어지는 108계단은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군데군데 연화무늬가 양각된 치장석이 양옆으로 보호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태고에 산세가 형성되면서 이곳에 마애불을 모시라고 이런 바위가 솟았고, 저런 바위들이 놓여 진 모양입니다. 약사여래불이 조성된 그 바위를 주불바위라고 하면 그 바위 위로는 비바람 막아줄 삿갓형태의 바위가 놓여있고, 좌우로 협시불 바위가 있습니다.

 

 
▲ 약사여래부처님의 왼손에 들고 있는 약병에는 인간들의 육신에 병 분 아니라 마음에 병까지도 보듬어 주는 효험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2006 임윤수
마애불은 1988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그 연대는 미미하나 규모나 섬세함이 남다릅니다. 석질 또한 고품질의 화강암으로 보이니 세세년년 세월을 더해가며 천년만년 불법을 전할 게 분명합니다.

약사여래불은 보통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고, 큰 연화(蓮花)에 올려진 모습으로 조성되며 일명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릅니다. 백운사 마애약사여래불 또한 전형적인 그 모습, 연꽃 받침에 왼손에 약병을 든 그런 모습입니다.

전국방방곡곡에 산재한 많은 마애불들이 대개는 미륵불이거나 아미타불입니다, 간혹 관세음보살상도 있지만 약사여래입불상은 흔치않으니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더더구나 이 정도의 규모라면 그 크기 면에서도 국내 마애불 중 손꼽을 수 있는 숫자에 들듯합니다.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다고 하는 약사여래부처님은 일찍이 보살행을 행하였고, 12 대원(大願)을 세워 그것을 완성하였으니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겪고 있는 온갖 고통과 소원을 들어준다는 부처님입니다.

고통과 괴롬의 바다라고도 하는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이 감내해야 하는 심신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안을 주며 치료를 해준다고 합니다. 속세의 중생들에게 부과되는 고통은 몸을 병들게 하는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갈등과 번민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도 있습니다.

사지가 뒤틀어지고 오장육부에 병마가 드는 것도 병이지만, 잃음에서 오는 상실감, 이루지 못함에서 오는 박탈감, 자만심에서 오는 교만함 등도 마음을 상하게 하니 이 또한 병입니다.

 

▲ 바위틈으로 비추는 약사여래불상이 마치 어둠을 밝히는 광명처럼 보입니다.
ⓒ2006 임윤수
백운사에 조성되어 있는 바위부처님이 바로 이렇도록 큰 원을 세우신 약사여래부처님입니다. 심신의 고통과 욕망의 갈등, 세속의 번뇌에서 비롯된 오욕의 풍랑에 휩싸여 고통 받고 시름하고 있을 모든 중생들에게 희망과 안락함을 가져다 줄 그런 부처님입니다.

옛날, 전설에 등장하는 그런 스님과 석공들이 살아가던 시대, 역사책에서나 배우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던 마애부처님이 현대사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새삼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안동제비원 마애불이나 파주 용미리 마애불에서처럼 애틋한 전설은 들을 수 없었지만 바위부처님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배로움은 더함도 덜함도 없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찾아 뚜벅뚜벅 찾아가렵니다

 

 

▲ 백운사로 올라왔던 구불구불한 뒤안길 저만치 보이고, 그 뒤안길 끝에는 마음 씻으라는 듯 저수지까지 매달려 있습니다.
ⓒ2006 임윤수

배바위, 반야의 용선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발아래 속세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고개를 드니 느티나무가지 사이로 하늘이 드리웠고, 고개를 돌리니 산상의 마애약사여래부처님이 약사전 뒤에서 지긋한 눈빛으로 관조하고 계십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천상의 소리인 듯 알듯 말듯한 환청으로 들려옵니다.

사바세계, 생로병사의 괴롬바다에서 고통의 풍랑을 막아주고 근심걱정 덜어 줄 지혜와 건강이 달릴 그런 복씨를 심어 주리니 복 짓고 복 받으라 합니다.

속세의 구불구불한 번뇌만큼이나 이리 굽고 저리 굽은 산길을 벗어나니 약사여래불 모셔진 백마산 정산이 저 만치 높게 보입니다. 구름은 흘러가고 바람은 불어옵니다.

그 오고감에도 깨달음이 실렸으니 백운사 가는 길은 복을 짓기 위한 밭갈이 걸음인 듯합니다. 며칠 남지 않은 석가탄신일에 밝혀질 자비의 등불하나 밝히러 뚜벅뚜벅 백운사를 찾아 가렵니다.


덧붙이는 글
백운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 → 510번지방도(증평) → 6Km(연탄 4거리) → 34번국도 → 화성교차로(IC로부터 10Km) → 도안3거리 → 괴산방향(34번국도) → 사리면소재지(IC로부터 18Km) → 음성방향(36번국도) → (구)백마초등학교 (이정표 IC로부터 21Km)) → 우회전(소매저수지) → 백운사
367-821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 (043)836-8813

석가탄신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조용한 산사를 찾아 자비의 등불하나 밝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필자가 쓴 책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에 실린 글에 사진을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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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29 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