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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억~밥, 탱글탱글 주머억~밥.” “이거 주먹밥이에요?” “네. 어서 먹으세요.” “긴급사태, 불 났어요. 삐뽀삐뽀.”
장난감이 없다는 어린이집. 소문을 듣고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 일곱살반 아이들 10여명이 어린이집 마당 조그만 ‘흙산’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중이었다.
불 났다고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 낑낑거리며 나르는 아이, 흙과 물을 섞어 주먹밥, 볶음밥, 고구마를 만드는 아이, 댐공사를 하는 아이들…. 2명의 교사는 가끔씩 위험한 일만 제지하며 뒷짐지고 있을 뿐이다. 마당 곳곳엔 찌그러지고 부서진 국자와 꽃잎이 담긴 그릇들이 널려있다.
소꿉도구들은 모두 집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이다. 아이들은 흙더미에 엉덩방아를 찧고 얼굴도 흙투성이가 된 채 열심히도 놀고 있다. 즐거운 함성이 졸고 있는 오후 햇살을 깨운다.
생태유아교육을 지향하는 이곳이 장난감을 대폭 없앤 건 재작년 이맘때. 한 방송사의 제의로 몇주동안 장난감을 치워보자는 프로젝트를 하면서부터다. 나일론 덩어리 부직포,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좋지 않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그럼 뭘 갖고 놀지?” 하는 생각에 장난감을 없애기는 쉽지 않았던 터였다.
장난감들이 사라지고 실내용 미끄럼틀도 없어진 교실. 처음엔 이상하다고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로 집을 만들고 기차를 만들어 놀기 시작했다. 부산대 안의 산길을 산책하면서도 솔방울이나 각종 나무토막 등 놀잇감을 주워오고 주변을 더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왜 궁하면 통한다잖아요. 놀잇감이 없어진 아이들은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나무토막 하나로도, 보자기 하나로도 무궁무진한 놀이를 만들어냅니다. 놀이규칙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 ‘놀이천재들’ 앞에서 선생님이 뭘 가르치겠어요?”
교실에 가 보니 직조틀, 자수틀, 대바늘, 각종 실들과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종이인형, 부모님이 만든 몸통에 아이들이 염색해 옷을 입힌 인형 등 온통 낯선 장난감투성이다. 또 신문지, 한지를 붙여 색칠만을 남겨둔 소꿉도구들, 낚시 놀잇감을 만들려고 직접 그린 물고기 그림을 코팅해 자석을 붙여 놓은 것들도 눈에 띈다.
얼마 전엔 쑥즙으로 염색하기, 쑥팩 만들기 등 쑥 프로젝트가 한창이었단다. 스스로 놀이주제를 정하고 몰두하는 아이들. 하정연 원감(45)은 어떤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잘 관찰하고 토론해 결론을 도출하면 이것이 훌륭한 논문이고 학문하는 자세가 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집에서도 장난감을 덜 찾게 된 아이들. 부모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 기죽을까봐 경쟁하듯 장난감을 사주던 부모들이었는데, 집에 안간다고, 더 놀겠다며 흙산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보며 진정한 놀잇감이 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인형옷 입히고 노는데 우리 애는 바느질하고 있더라는 경험담을 나누며 깔깔거릴 여유도 생겼다.
위험한 것을 피하기 위해 실내에서만 놀게 하고, 장난감을 쥐어주는 대신 위험하면 조금 위험한 대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노는 가운데 더 큰 배움을 얻는다는 어린이집의 취지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됐다.
많은 놀이들 중에서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바깥놀이다.
“처음엔 미끄럼이나 타겠지 생각하며 흙을 쌓아줬는데, 흙을 본 아이들은 먹이에 굶주린 사자 같더라고요. 파고, 뒤집어 엎고, 무너뜨리고….” 이렇게 놀아대니 매년 2월말과 8월말에 다시 쌓아주는 흙산은 한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반이 깎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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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자연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한 아이들은 여름이면 매미 허물벗는 것을 보는
것 외엔 아무 관심이 없고, 가을이면 낙엽 이불도 덮고 비닐에 낙엽을 넣어 방석을 만들고, 낙엽눈사람도 만들며 노느라 정신없다.
“도둑고양이 발견! 발견!” 한창 흙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한 아이의 말에 우르르 몰려간다.
이렇게 큰 아이들. 각기 다른 학교의 초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처음엔 산만한 듯 보여도 주도적이고 리더십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로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졸업생들과 일반 유치원 출신 아이들을 비교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와 부모들에게 체크리스트를 나눠줘 조사해 보니 이곳 출신 아이들이 잘 달리고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며,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리고 창의성이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공부를 따로 가르치진 않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다른 유치원 출신 아이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수업을 좋아해 교과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하정연 원감은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다며 장난감을 사 안기는 것은 돈을 들이면서 아이를 망치는 것”이라며 “비싼 장난감보다 좋은 놀잇감은 자연”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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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2006-05-01 16:06]'♡피나얀™♡【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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