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직장에선 은퇴, 땅끝에서 출발

피나얀 2006. 6. 7. 18:45

출처-[주간조선 2006-06-07 09:14]

 

 

60대 퇴직자 3명, 국토종단 900km 도보여행 길에 올라

 

60대 은퇴자 3명이 국토를 걸어서 종단하는 여행에 도전했다. 전직 이화여자대학교 교직원인 김형두(63)·김문갑(63)·조관휘(64)씨는 지난 5월 10일 등산화 한 켤레에 의지한 채 마라도를 출발했다.

 

이들은 그 동안 제주도 한라산과 완도, 해남 땅끝마을, 보성, 섬진강, 남원 등을 차례로 거쳤다. 예정된 코스는 마라도에서 휴전선 통일전망대까지 약 900㎞. 매일 30㎞씩 쉬지 않고 걸어도 한 달이 꼬박 걸린다.

 

우리나라의 국도와 지방도는 보행자를 위한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비좁은 갓길을 따라 걸으며 질주하는 자동차와 쉴새 없이 마주쳐야 한다.

 

은퇴자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도전을 시작했을까? 김씨 일행은 30여년간 이화여대 교직원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친분을 다진 사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잇따라 정년퇴직을 했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몸 바쳐 일 하다가 은퇴하니 막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집에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아내를 찾는 것이었고, 제가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이 당황해서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죠.”

 

김형두씨는 퇴직 후에 찾아 온 일상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집 안에 박혀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화창하다”며 산행을 시작했다. 퇴직한 동료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렇게 해서 매주 1회 정기산행을 하는 ‘화백 산우회’가 생겨났다. 화백은 ‘화려한 백수’를 줄인 말이다.

 

회원이 금새 11명으로 불어났다. 마치 출근하는 심정으로 산에 올랐다고 한다. 국토종단 여행은 화백 산우회 회원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작년 말부터 준비했다.

 

인터넷 다음 카페에 개설한 ‘NO老3인방의 도보 국토종주(cafe.daum.net/ nono3men)’ 코너에는 이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여행 사진과 기행문이 거의 매일 올라온다. 화백 산우회 동료와 가족의 ‘응원 댓글’ 열기도 뜨겁다. 경북 문경 새재부터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산우회 동료들이 주말 등을 이용해 이들과 함께 걸을 예정이다.

 

‘NO老3인방’의 여행기 중 일부를 요약해서 소개한다.

 

5월 10일_마라도 | 오전 11시30분에 출항한 배는 망망대해를 달려 30분 만에 마라도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말로만 듣던 마라도.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벼르던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첫발을 내딛는다. 마라도는 면적이 0.3㎢, 해안선 길이 4.2㎞, 인구 90명이다. 제주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11㎞ 해상에 있다.

 

형태는 고구마 모양이며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선착장 계단을 올라가니 널찍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장면집도 있고 교회·절도 있다. 섬 일주 도로를 따라 걷다가 ‘대한민국 최남단비’ 앞에 섰다. 우리 3인방은 냉수 한 컵 떠놓고 간단한 발대식을 가졌다.

 

5월 12일_한라산을 넘어 |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성판악에 내렸다. 한라산 등반은 이번이 네 번째다. 첫 등반은 대학시절 수학여행 때였는데 20명의 점심 도시락을 혼자서 짊어지고 올랐다. 덕분에 지도교수의 눈에 들어 민법을 A학점 받았다. 30대에는 산악회 모임으로 두 차례 올랐고 이번이 네 번째다.

 

백록담 분화구 벽의 하얀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정상에서 용진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아주 급하다. 관음사에 내려오니 오후 4시. 다른 산행팀들은 모두 관광버스에 나눠타고 내려간다. 그러나 도보여행 중인 우리 3인방은 갓길도 없이 위험한 10㎞ 도로를 두 시간 넘게 더 걸어야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발가락에 물집이 한 군데 더 생겼다. 오늘은 산행까지 포함해 11시간 동안 모두 28.3㎞를 걸었다.

 

5월 13일_완도의 택시기사 | 오전 9시 제주항을 출발한 페리에 누워 한숨을 자니 3시간30분 만에 완도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에게 부탁해 택시 한 대로 완도 관광을 나섰다.

 

3인방 : 어디서부터 구경 해야죠?

택시기사 : 쩌어기 꼭대기 거시기부터 봐야지라잉.

3인방: 저 소나무 정말 멋지네요?

운전기사 : 저게 거시기 한데 있어 부렀으면 엄청 머시기 할 거신데잉.

3인방 : 수목원이 꽤 넓네요.

운전기사 : 지금도 계속 거시기 하고 있응게, 앞으로 엄청 머시기 할끼요잉.

3인방 : 저기 있는 황토 가마는 뭐 하는 건가요?

운전기사 : 거시기 맹기는데라잉.

3인방 : 도자기?

 

알고 보니 숯 굽는 가마였다. 택시기사의 전라도 사투리에 우린 두 손 들었다. 아니 모두 여섯 손 들고 말았다.

 

5월 14일_땅끝에 서다 |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는 PC방이 없었다. 해경 땅끝파출소에 있는 PC로 밤 12시까지 여행기를 쓰고 민박집에 돌아오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잠을 설쳤다. 이튿날 땅끝탑으로 향했다. 땅끝탑에서 통일전망대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아침 햇살 찬란한 77번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바다 경치가 계속 따라온다. 까만 염소 가족이 풀을 뜯다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늘 밭에서는 한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여행 중 후배들로부터 계속 격려전화가 온다. 너무 고맙다.

 

5월 15일_다이어트 | 아침 식사를 해주는 곳이 없었다. 슈퍼에서 비스킷 치즈 두유 양갱 캔커피를 사서 면사무소 앞 등나무 아래에서 아침 대신 먹었다. 55번 도로를 따라 20분쯤 전진해 해남군과 작별하고 강진군으로 접어들었다. 백화리를 지나 부춘마을(효도마을)에서 잠시 휴식했다.

 

갑 화백(김문갑씨의 별명)은 허리 사이즈가 임신 8개월에서 7개월로 줄었다며 좋아한다. 어제까지는 바다를 보며 걸었는데 오늘부터는 산만 보인다. 달마산 주작산 덕룡산…. 도암 석문계곡을 지나며 절경에 감탄한다. 강진 입성을 앞두고 학림에서 어느 민가 처마 밑 평상에 잠시 누워 15분 정도 토끼잠을 잤다. 양말까지 벗고 발이 시원하다 보니 잠에 스르르 빠져든다.

 

5월 16일_보리밭 | 콩나물 해장국을 아침으로 먹고 7시 정각에 강진을 출발했다. 2번 국도와 나란히 가는 이 지방도로는 차량이 드문 한적한 길이라서 걷는 기분이 난다. 들판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논에서는 농부가 써레질에 분주하다. 날씨가 약간 더워 물을 자주 마시게 된다. 1시간 걷고 10분 휴식하는 것이 우리 체력에는 적당했다.

 

선거운동원이 차를 세우고 다가와 명함을 건넨다. “우린 서울사람인데요” 했더니 웃으면서 성공을 빈다는 덕담을 해준다. 호계터널이 앞에 나타났다. 저 터널을 통과하면 장흥이 가깝겠지. 터널 안에서는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차량들이 질주한다. 터널 통과 10분이 어찌나 길던지. 오늘은 34.3㎞를 걸었다.

 

5월 17일_섬진강 물길 따라 |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물소리만 들렸다. 간혹 비포장 길도 나타나서 반갑기까지 하다. ‘뺑덕어멈 고개’를 넘는다. 곡성은 심청이 태어난 고장이라는데, 그 옛날 앞 못 보는 심 봉사도 섬진강 물소리만 들으며 걸었겠지….

 

자전거 타고 논에 일 나가는 아낙네에게 수지면 가는 길을 물었다. “쭈욱~ 가쇼잉!” 여자 목소리에 박력이 넘친다. “수지면까지 아직 멀었어요?” “아휴~, 아주 잊어버리고 가쇼잉!” 서로가 쳐다보며 웃었다. 오전 11시30분 전라북도 경계에 진입한다. 잘 있거라, 전라남도. 거북이 걸음이지만 점점 북상한다고 생각하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