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06-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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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서북방 송산리에 있는 무령왕릉은 유일하게 밝혀진 백제왕릉이다. 부여나 공주에 여러 능이 발견됐지만 무령왕릉을 제외하고는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수많은 왕릉이 도굴됐고, 무덤에서 출토된 기록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 비해 백제연구가 더 어려운 이유다.
무령왕릉은 그래서 중요하다. 무령왕릉에 다녀왔다. 무령왕릉은 지금은 들여다볼 수 없다. 영구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대신 무령왕릉의 모형을 본뜬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은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무덤은 벽돌로 쌓았다. 벽돌벽에는 등잔불을 놓는 자리가 5개나 있다. 가이드는 등잔불이 연소하면서 무덤 속의 산소를 없애 진공상태로 만들어 부장품이 더 오래 보존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앞에는 진묘수(鎭墓獸)란 동물상이 있고 뒤편에는 귀고리, 칼, 허리띠 등 유물이 흩어져있다.
관은 삭고 삭아서 일부만 남았다. 진묘수란 악귀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전국시대부터 발견됐다는 이 동물은 언뜻 보면 돼지같이 보인다. 머리에 달린 뿔은 사슴뿔이라고. 이밖에 왕과 왕비의 왕관을 비롯하여 금팔찌·금귀고리 등 순금제 3㎏의 정교한 금세공품과 도자기·철기 등 총 88종 2,600여점의 부장품이 출토됐다.
이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이란 것이 알려진 것은 글을 새겨놓은 지석 때문. 내용은 간단하다. ‘사마왕과 왕비가 죽어 장사지내다. 지신에게 땅을 돈주고 샀다.’ 사마왕이 바로 무령왕의 이름. 역사책을 들춰보면 무령왕은 백제 25대왕으로 462년부터 523년까지 살았다. 문헌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나왔으나 이번 발굴을 계기로 동생이 아니냐는 이론이 제기됐다고 한다.
그가 재위하던 시대는 삼국이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벌였다. 백제는 공주에 수도를 정하고 고구려와 말갈의 침략에 대비했다. 507년 고구려가 말갈과 합세하여 한성(漢城)을 치러 내려오자 이를 격퇴했고, 512년에는 위천에서 고구려와 싸웠다. 민생 안정에도 노력, 506년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창고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왕을 따랐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무령왕릉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고분의 형태다. 벽돌을 일일이 쌓고 터널형으로 만든 고분은 삼국시대 고분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학술용어로는 횡렬식 적실분묘. 실물크기의 전시관 능에 들어서면 두어사람이 누울 공간과 부장품을 놓을 자리가 있다.
2개의 벽돌을 합치면 하나의 문양이 나오도록 한 것을 보면 꽤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목관의 재질은 일본에서 가져온 금송을 썼다는데 백제가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에서 흙무덤으로 이어오는 과정은 고교 교과서에도 많이 나온다.
무덤에서 발굴된 부장품과 유물은 공주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위해 워크시트를 나눠준다. 진묘수란 무엇인가? 벽돌을 쌓아 만든 터널형태의 무덤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출토된 부장품이 아닌 것은?….
아이들에겐 조금 어렵지만 워크시트를 들고 다닌다면 조금 더 학습효과가 높을 듯하다. 기념품점에서는 왕이나 왕비가 사용했던 금관모양의 책갈피를 파는데 참관 태도가 좋을 경우 선물로 하나 사줘도 좋을 듯하다.
단 한가지, 무령왕릉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백제 왕릉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는데 불과 하루만에 모든 발굴을 후딱 끝냈다는 점이다. 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당시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사라고 해서 발굴을 서둘렀다는데 한국 고고발굴사의 수치로 여기고 있단다.
〉〉 이 길따라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정안IC.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23번국도를 타고 직진. 공주읍내를 지나 부여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공주국립박물관이 보인다. 국립박물관 너머에 무령왕릉이 있다. 공주박물관(041)850-6300, 무령왕릉(041)856-0331
〉〉 고분 상식
■청동기시대 무덤
①지석묘(고인돌):북방식과 남방식이 있다. 북방식은 받침돌이 높고, 남방식은 낮다.
②토광묘(움무덤):직사각형으로 땅을 파서 묻는 무덤
③옹관묘(독무덤):항아리에 시신을 넣고 묻는 무덤
④석관묘(돌넛무덤):돌을 관처럼 짜서 넣는 무덤
■고구려무덤
①돌무지 무덤: 돌을 사각형으로 만든 무덤. 장군총이 대표적. 속에는 흙무덤으로 돼있다. 압록강 지역에 많다. 고구려 원래의 무덤
②흙무덤: 흙을 쌓아 만든 무덤. 관은 석관이나 목관을 썼다. 4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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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무덤
①돌무덤:돌을 쌓아 만들었다. 초기 형태.
②돌방무덤(석실묘):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석실묘가 발달.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③독무덤(옹관묘):남쪽에 많다. 사비시대 이후에도 많이 발견됨.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한 후 유골을 수습한 화장묘도 나옴
④무령왕릉:전축분.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다.
■신라무덤
①돌무덤:묘내에는 석곽묘, 적석목곽분, 석실분으로 나뉨
②신라말에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이 나옴.
■묻는 방법
◇수혈식(竪穴式):땅을 파 묻는다는 뜻
◇횡혈식(橫穴式):무덤 옆에 출입구를 만든 무덤으로 이해하면 빠르다.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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