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숨·쉴·틈 ‘간이역’

피나얀 2006. 6. 27. 18:51

출처-[경향신문 2006-06-27 15:27]

 

 


속도, 속도, 속도…. 빨리, 어제보다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도 뚫고 물도 막았다. ‘정지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문명의 발전과정을 ‘속도’ 측면에서 일갈한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글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좋다. 빛보다 빠른 정보통신의 혁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은 ‘속도와의 영구적 전쟁’, 그 자체다.

 

그런데 속도가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이 아직 아슬아슬하게 존재하고 있다. 간이역은 시속 300㎞로 달리는 KTX나 새마을호, 무궁화호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띄엄띄엄 느릿느릿 오는 석량짜리 통근열차가 데려다줘야 갈 수 있는 곳. 간이역에 가면 우리는 속도도, 그리고 시간도 잊게 된다. 그곳은 ‘속도와 시간의 아름답고도 애처로운 블랙홀’이다.

 

거기에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이 되살아나고, 숨가쁘게 달려온 현재마저도 잊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지나가다 우연히 간이역을 만난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일 테고, 일부러 짬을 내어 간이역에 들렀다면 당신은 세상살이의 자맥질에 지쳐 큰 숨 한번 몰아쉴 틈이 필요했을 터이다.

 

늙수그레한 역무원이 라면을 끓이다 말고 사람 좋게 웃으며 “어디까지 가세요?” 물으며 표를 끊어주는 간이역. 그곳에는 “라면에 좀 넣어묵거라”하면서 장에서 사온 계란 몇개와 팔다 남은 파 몇뿌리를 기어코 놓고 가는 동네 할머니의 정이 살갑게 살아있다.

 

어쩌면 오래된 선로 곁에는 잡초와 들꽃 몇송이도 피어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역무원이 끓인 김 나는 라면 한 젓가락 얻어 먹을 수도 있고, 더 운이 좋으면 역무원도 없는 고즈넉한 간이역에 들어가 선로 위에 팔을 벌리고 서서 뒤뚱뒤뚱 걸어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알루미늄 새시 대신 ‘뼁끼칠’한 나무창틀이 삐그덕거리고, 칠이 벗겨진 간이벤치가 작은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곳. 어쩌면 곽재구의 시에서처럼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는 풍경도 만날 수 있으리라.

 

혼자서면 어떠랴. 혹 마음에 맞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좋다. 하루 두번 느릿느릿 도착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덜컹거려 보자. ‘은하철도 999’의 그것처럼 텅 빈 객차에 몸을 싣고 가속도의 시대와는 반대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자. 내 삶의 간이역으로.

 

600개가 넘는 전국의 역 가운데서 간이역은 200여개에 달한다. 1925년 지어진 서울역사보다 더 오래된 간이역들도 있다. 하지만 그 예쁘고도 애처로운 간이역들은 아메바처럼 무섭게 번식하는 ‘속도의 파시즘’에 하나둘씩 스러져 가고 있다. 지난 23일자 신문 사회면의 한구석에는 이들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가 또 올라왔다.

 

‘간이역, 추억 속으로…건교부, 11개역 폐지’(경향신문 6월23일자). 철도공사 담당자는 한곳당 매년 평균 4억원씩 들어가는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이용객이 줄어드는 간이역은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지난해 11월에는 간이역사 두 곳이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1910~20년대에 지어진 군산 임피역사와 익산 춘포역사다. 이 두 곳은 간이역을 사랑하는 한 동호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폐쇄 위기를 넘기고 문화재가 되었다.

 

이 속도와의 거친 전쟁터 속에서도 ‘의병’들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간이역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육혈포를 쏘듯 셔터를 눌러가며 곧 멸종의 위기 앞에 놓인 애처로운 종족들을 기록하고 이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혹시라도 어느 간이역에서 떠나려는 열차와 선로를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 그들을 만날지 모른다. 누군가가 예기치 못한 인생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간이역’이라는 출구를 찾아가 또다른 길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만으로 행복해 할 것이다. 우리들이 비록 그들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