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문화일보 2006-07-01 13:08]
전국의 초·중·고교 선생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게 는 고등학교 2학년생 딸 하나가 있다. 지금 말하겠다.
“제발 아이들 교육 좀 잘 시켜 주십시오. 국어, 수학, 영어만 신경쓰지 마시고 사회생활, 특히 예의범절 같은 걸 각별히 신경 써 주십시오. 저는 어린 딸 자식 하나 키우는데 도무지 부녀지간 에 말이 통하질 않아 사람 죽겠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대한민국 청소년 교육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 축구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는 예기 치 않았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다름 아닌 딸과의 전쟁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내 딸은 지금 열일곱살이다. 너무너무 예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어느 아비가 자기 딸 예뻐하지 않겠는가. 건성으로 해 보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지금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이다. 세상 만물 중에 당연 압도적으로 예쁜 게 내 딸이다.
어린 아이들, 강아지, 꽃, 강, 별보다도 내 눈에는 내 딸이 더 예쁘다 . 내가 다정하게 말이라도 걸면서 다가가면 “아빠! 나 지금 콘 디숀 안좋삼. 저리 비키삼” 뭐 그렇게 최신식 말투로 투덜대도 예쁘고, 투정을 부려도 예쁘기만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석도 있다. 뭐냐 하면 내가 보기엔 내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눈치가 아 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저쪽이 나의 미학 수준을 못 따라오는 거라고 접어주면서 넘어가곤 한다. 그런데 보름전 전쟁이 터졌 다.
전쟁이 발발한 그날, 나는 밤 10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은지가 제 방에서 울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러 냐, 무슨 일이 생겼냐, 물으니깐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 었다. 불과 두 달 전 쯤에 외국에서 온 아빠 친구가 특별 선물로 사준 최신형 핑크색 휴대전화였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다가 버스에 놓고 내렸다고 했다. 내 딸은 계 속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또 몇 십만 원 들어가게 생겼군’ 하면서, 딸 한테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전화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놓고 응접실로 나왔다.
그런데 몇분이나 지났을까. 내 딸이 누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얼른 딸 방으로 갔다. 딸은 약간 상기된 모습에 흥 분과 긴장이 섞인 말투로 뭐라 말하고 있는데 전화기에 대고 말 하는 태도가 영 내 맘에 안들었다.
그래선 안되는데 추궁이나 취조 식으로 말을 풀어가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나는 온갖 표정과 몸짓을 지어 가 면서 작은 소리로 “야! 그렇게 말하면 안돼. 왜 그런 식으로 말 을 해.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하고 온갖 사인을 다 보냈지 만 내 딸은 막무가내로 계속 자기 할 말만 해 나갔다.
“거기가 어디세요? 댁의 이름은 뭐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댁의 전화번호는 뭐세요?” 짐작컨대 내 딸의 휴대전화를 습득한 저쪽 청년은 굉장히 양순한 청년임에 틀림없었다. 고병헌이라는 이름까지 내 딸이 받아서 써 놓은 걸 보니 그런 짐작이 갔다.
그런 와중에 그쪽 휴대전화 번호가 몇 번이냐고 묻는 내 딸의 돼먹지 않은 질문에 드디어 왜 자기를 휴대전화 훔쳐간 사람 취급하느냐고 되묻는 모양이었다.
내 딸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 그건 제가 지금 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물어본 거죠”한 다음 계속해서 지금 거긴 어디냐고 물었고, 저쪽에서는 발산동이라고 대답했다. 발산동 어디냐고 물었을 때 미즈메디병원 근처라고 대답하는 모양이었다 .
나는 거기까지만 내 딸의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들어가며 알아냈다 . 나는 발산동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미즈메디병원은 최근에 TV에 서 따갑게 들어와서 신기하게 여겨졌다. 내 딸은 몇시에 물건을 찾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 딸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차분한 분위기로 말을 꺼냈다.
“야! 너 아까 휴대전화를 습득해서 너한테 돌려주기로 한 사람 한테 그렇게 윽박지르듯 말하는 건 크게 실례한 것이었어” 했더 니, 내 딸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반론을 제기해 오는 것 이었다.
“아빠! 내가 언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고 그래? 나는 그냥 필요 한 것만 물어본 거였어. 그런데 그게 왜 실례야?” 나는 욱하는 성격이다. 한번 욱하면 앞뒤를 잘 못가린다. 내 목 소리가 커졌다.
“야! 니가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봤잖아.” “그럼 휴대전화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름을 알아둬야죠.” “얀마, 그쪽 전화번호는 왜 물어봤니? 그게 실례 아니고 뭐니? ” “전화번호를 알아야 어딘지 찾아갈 수 있는 것 아녜요?”
“야! 이 시키야, 그럼 저쪽에서 왜 도둑놈 취급했냐고 너한테 말했겠니? 최소한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실례지만 하면서 공손하 게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야. 나 같으면 습득한 휴대전화 를 패대기쳤겠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내쪽에서 선전포고가 들어갔다.
“아빠 말 안들으려면 니 맘대로 살아!” 그로부터 부녀의 15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살벌한 전쟁이었다.
서로 보고 마주쳐도 눈길도 안주고 말도 안하는 것이 우리의 전 쟁 방식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우리집엔 월드컵의 함성과 일하 는 할머니의 말소리만 들려왔다. 전쟁은 무려 15일을 치달았다.
나는 자신있었다. 나는 10년도 버틸 수 있지만 저쪽은 용돈 떨어 지면 항복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항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보름 만에 처음 듣는 내 딸의 목소리였다. 잔뜩 쫄아든 목소리였 다.
“요금 정액제 신청했는데, 아빠 허락 필요하대요.” 나는 와, 내가 이겼다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아주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야! 우리 지금 전쟁중이잖아.” 그런데 언제 쫄았느냐는 듯이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었다.
“아빠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건 거였지, 나는 전쟁한 적 없어.
아까 부탁한 거 취소한다.” 못난 내 딸을 이토록 예쁘게 교육시켜 주신 선생님들께 새삼 고 맙쌈 인사를 드린다.
추신―, 두 주 밀린 용돈은 몰아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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