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이런! 소금강이 강이 아니네...

피나얀 2006. 7. 7. 16:26

 

출처-[오마이뉴스 2006-07-05 09:35]

 

6월의 시작과 함께 우리 국토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듯, 내 나라 내 땅의 숨결을 가까이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소란한 사람 마을을 잠시 벗어나 자연에게 사는 법도 배우고요. 이 글은 사람살이에 적응 못하고 또 홀로 떠나는 여식을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어머니를 위해 길 위에서 쓰는 편지입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사람 도리, 자식 도리하며 사는 평범한 딸이 되고 싶습니다.

월드컵 한국·토고전이 있던 날 새벽, 떠날 채비를 하는 제게 "축구 응원 안 하고 가냐, 이제 또 어디로 가느냐"며 아쉬움을 표하던 황토방 사장님들께 "그간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입맛이 없어 사발면으로 대충 끼니를 떼울 때, 찬 하라면서 김치를 가져다준 슈퍼 아주머니께도, '언니'라 부르며 살갑게 대해주던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 삼일 인정이 가득한 곳에 머물렀더니, 혼자 여행에서 헛헛해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져 발걸음도 가벼워졌습니다.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벗에게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부탁했더니, 어제(6월 12일) 강릉우체국에 배달되어 여정을 기록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오늘은 주문진 해수욕장에서 버스를 타고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이정표에서 본 '소금강'을 첫 번째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설악산을 넘어온 터라, 이제 잔잔한 강을 보며 평탄한 길을 걸어야지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가랑비가 내렸지만 새벽 공기가 상쾌해 차를 타지 않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슬슬 지칠 무렵, 마침 심심해서 소금강에 가신다는 아저씨 두 분을 만났습니다. 이 분들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던 저와 아주머니는 함께 차도 얻어 타고, 소금강에 도착해선 아저씨들이 입장권까지 사주시는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소금강'이 강이 아니네

▲ 금강산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작은 금강산 즉, '소금강'으로 부르게 되었다.
ⓒ2006 이명주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소금강은 강이 아니라, 오대산 다섯 봉우리에서 동편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의 산이었습니다. 원래는 '청학산'이라 불렸는데, 율곡 이이 선생이 이곳에 와서 수도정진하면서 그 경관이 마치 금강산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작은 금강산 즉, '소금강'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강을 기대하고 왔다가 덩그러니 산 한가운데 서 있는 제가 기가 막혀 웃음이 났습니다. 온 길을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오죽 아름다웠으면 '소금강'이라 했나 싶어 은근히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발 1563m의 오대산 비로봉이 탐이 났지만, 이번엔 굳이 정상까지가 아니라 '오르고 싶은 만큼만 올라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소금강 가는 길은 오대산국립공원에서 지정한 자연학습 탐방로이기도 해서 소금강 내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자연환경을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혼자 산길을 걷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호기심이 생겨 그 내용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덕분에 나비와 나방을 구별하는 법, 숲의 생성과정, 이끼서식의 특징, 소금강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 공부하며 산길을 걸으니 주변의 풍경이 한 뼘 더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본격적인 '작은 금강산' 구경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소금강'이라 이름 붙인 이이 선생의 심경이 짐작되었습니다. 숲을 들어서자마자 우거진 녹음 사이로 기암과 계곡, 담이 어우러져 참으로 풍요롭고도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책을 넘기듯 한 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매번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절경이 펼쳐집니다. 혼자 오르는 산길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작은 금강산, 소금강

협곡 사이로 흐르는 수 미터의 계곡물은 바닥이 훤히 비칠 만큼 맑고, 그 속엔 1급수에만 사는 피라미 떼와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 위를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가니 검푸른 계곡 옆으로 일부러 판판하게 깎은 양,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널찍한 식당암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칠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연화담.
ⓒ2006 이명주
식당암을 지나 산길 계단을 걸어 또 다른 모퉁이를 돌아가니, 네 방향의 물줄기가 한 곳에 모여 흐르는 십자소가 나타났습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하늘에서 내려온 칠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연화담이 보였습니다. 그 오른쪽으로는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화장을 하고 하늘로 갈 채비를 했다는 화장대가 우뚝 서 있었으며, 다시 길을 오르니 비구니 몇 분이 거처하고 있는 아담하고 고즈넉한 금강사란 절이 나왔습니다.

▲ 아늑하고 고즈넉한 금강사.
ⓒ2006 이명주
절 마당 평상에 앉아 물소리, 숲 향기를 음미하며 화려한 소금강 풍취에 젖어든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 금강산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구룡폭포.
ⓒ2006 이명주
다시 크고 작은 계곡과 구불구불하나 험하지 않은 산길을 돌아가니 금강산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구룡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보는 방향에서는 세 폭포만이 보였지만, 반대편 봉우리로 오르면 아홉 개의 폭포가 이어져 땅 아래로 내려꽂히는 절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담근 발이 금세 얼얼해질 만큼 차가운 계곡물.
ⓒ2006 이명주
시원한 폭포수를 구경하며 빈 생수통에 물을 받아 마시고는 근처에 사람이 뜸한 계곡에서 신발을 벗고 홀로 쉬었습니다. 물 아래 쌓인 동글동글한 자갈과 낙엽이 마치 손으로 잡힐 듯 보이고, 담근 발이 금세 얼얼해질 만큼 계곡 물이 차가웠습니다. 물집이 잡혀 산을 오르는 내내 알알하던 발이 진정될 때쯤 짐을 챙겨 일어섰습니다.

구룡폭포 위로는 거인의 옆얼굴을 닮은 귀면암, 촛불 형상의 촛대석, 암봉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낮이면 해 같고 밤이면 달 같은 일월봉, 거문고 타는 모습의 탄금대 등 이름 그대로 자연 속 만물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마음먹은 것처럼 오르고 싶은 만큼 올랐다 싶어 구룡폭포를 반환점 삼아 하산했습니다.

시를 음미하며 오지마을 '대기리'로

한 시간 후에 오는 강릉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매표소 근처 계곡에서 시집을 읽었습니다. 여행을 오기 전에도 여러 번 읽은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시집이었습니다. 적적할 때마다 꺼내 보며, 읽고 또 읽을 수록 시의 맛이 깊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마음을 대신해 전했던 시 한편을 다시 읽어봅니다.

단 하나의 삶

- 메리 올리버

어느 날 당신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시작했다.
주위의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충고를 외쳐댔지만
집 식구들은 불안해 하고
과거의 손길이 발목을 붙잡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거센 바람이 불어와 당신의 결심을 흔들고
마음은 한없이 외로웠지만,
시간이 이미 많이 늦고
황량한 밤, 길 위에는
쓰러진 나뭇가지와 돌들로 가득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어둔 구름들 사이로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동안
언제나 당신을 일깨워 준 목소리.
당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무엇인지
당신이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삶이 무엇인지를.


한 시간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벌써 두 시간째 다음 행선지인 오지마을 '대기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터미널 입구에 설치해둔 전국지도를 보다가 고랭지 채소밭 대기리란 오지마을을 보고 금세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해발 1천미터 훌쩍 위에 있는 마을로 전국에 씨감자와 배추를 공급하는 고랭지 채소밭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 오지마을 대기리로 가는 버스 안에서.
ⓒ2006 이명주
금방도 그렇고, 여행 다니는 내내 버스를 타면 공통적인 모습을 목격합니다. 첫 번째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있는 저를 다들 한 번씩 쳐다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버스에 탄 사람들이 초면인데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어제 장에서 산 물건에 대해서, 아픈 몸에 잘 듣는다는 약에 대해서, 방금 다녀왔다는 잔칫집에 대해서, 누구 한 명이 말을 꺼내면 앞뒤로 앉은 사람들이 말을 거듭니다. 책을 보는 척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정겨워서 웃음이 나옵니다.

운전기사는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들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정류장이 아니라도 미리 알고 있는 듯 내릴 곳에 차를 멈춥니다. 사람 사는 정이 느껴져서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물빛이 어찌나 맑던지 그 수심을 예측할 길이 없었건만…. 제 고장난 사진기로는 도저히 담을 길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