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숲속을 걷다

피나얀 2006. 7. 12. 00:34

 

출처-[오마이뉴스 2006-07-11 18:56]

 

 

ⓒ2006 김민수
자연의 품에 안기기 힘든 상황일 때에는 화창한 날씨가 마음을 싱숭생숭 흔들어 놓고, 어렵사리 자연의 품에 안기려고 다가간 날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자연이 심통을 부린다.

나는 홀로 걷는 것이 편안하다.

간혹 동행이 있으면 가족이 아닌 바에는 부담되기도 하지만 숲 속에 홀로 있다는 어떤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이 없으니 동행이 있어도 그다지 불편한 것은 아니다.

 

ⓒ2006 김민수
검은 먹구름이 물러가고 햇살이 쨍하니 비춘다. 해가 쨍쨍하고 비가 내리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하던데. 오늘이 호랑이 잔칫날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진흙탕길로 지게를 지고 밭으로 나가는 노인의 뒤를 따라 걷다 숲으로 들어간다.

풋고추를 따려는 것일까? 지게 위에 놓인 상자를 유심히 보다가 '태기산'이라는 명칭을 발견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태기산 자락인가 보다. 태기산이라면 삼한시대의 진한의 마지막왕인 태기왕과 관련이 있는 산이 아닌가?

내가 서있는 곳이 태기산 자락이었구나. 제대로 된 산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촉촉한 숲에 들어서자 숲속의 요정이라 불리는 버섯들의 기지개가 한창이다. 건들기만 하면 툭 부러지니 여리기만 할 줄 알았는데 잔뜩 짐을 지고도 넉넉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니 새싹의 힘이 느껴진다.

고목과 낙엽, 아주 오래된 것들, 흙으로 돌아가는 것들의 기운을 온 몸에 모시고 올라오는 버섯을 보면서 '윤회(輪廻)'를 생각한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길, 결국은 홀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가?

우거진 숲, 이파리마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빗방울들을 작은 흔들림에도 '후드득!' 내려버린다.

신발과 옷과 온 몸이 숲처럼 촉촉하게 젖었다. 촉촉한 숲은 시원하고 내 몸은 후끈거린다. 없는 길을 만들며 가는 산행, 혹시라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꽃을 만날까하는 기대, 가장 멋진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야생화를 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2006 김민수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몇 배나 힘든 걸음걸이, 장맛비에 흠뻑 젖은 숲, 무성한 풀들은 걷기에 편안하지가 않다.

인기척을 많이 내면서 다녔다. 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무심결에 꼬리를 밟는 날이면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기에 미리 인기척을 알아챈 뱀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인기척을 많이 내면서 다녔다.

스님들이 커다란 지팡이를 '쿵!쿵!' 내리치며 걷는 것도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 들었다. 그런데 한 발을 내 딛으려는 순간 낙엽들 사이에서 썩은 나뭇가지와는 다른 그 무엇을 순간 보았다. 살모사였다.

얼른 발걸음을 뒤로하고는 해칠 의사가 없다, 기념사진이나 하나 찍자 어르고는 돌아섰다. 태연한 척 했지만 가슴이 콩닥거리고, 걸음걸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젠 내려가야겠다. 숲에서 벗어나야겠다.

 

ⓒ2006 김민수
그러나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와 있어 쉽사리 숲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산등성이를 찾아올라 누군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을까 했지만 이미 내가 걸어왔던 길은 길이 아니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을 헤치며 아래로, 아래로 향한 지 1시간여, 드디어 길이 보인다. 얼마나 고맙던지.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이제야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들어온 산딸기로 목마름을 달래고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2006 김민수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맛이 구수한 '개암열매'다. 여름이 가기 전에 단단하게 익는다.

아주 오랜 시간 자연과 호흡하며 자신을 익혀가는 열매들, 그들을 몸에 모시고 그들이 호흡했던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2006 김민수
토란밭에 섰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토란잎이 예쁘다. 아주 커다란 토란잎을 하나 따서 머리에 쓴다. 시원하다.

장마철 비가 내리면 삼태기를 들고 냇가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비를 만나면 너도나도 토란밭으로 달려가 토란잎을 꺾어 머리에 썼다. 그 덕분에 토란물이 들은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다녀야 했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네 개구쟁이들 옷마다 풀물이 들지 않은 옷이 없었으니 으레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지냈다. 아련한 유년의 추억이다.

그를 만나 숲에서 길을 잃었지만 자연이 여전히 넉넉하게 살아있음을 보니 도시생활을 하며 메말랐던 마음이 넉넉해진다.

자연, 그들이 있어 나는 새 힘을 얻는다.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