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10-0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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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 솟아오르는 솔잎 송편, 밤 소가 터져 생긋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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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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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 인형을 만든다며 기뻐하는 애기 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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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송편 속에 고향 냄새를 담아냅니다. 쌀 익반죽(곡식 가루에 끓는 물을
끼얹어가며 하는 반죽)을 굴리고 돌려 햇콩과 밤·깨·팥소들을 넣고 입을 맞춰놓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고향의 포근한 정들이 가까이 다가와 명절
이야기를 나누자 합니다.
이번 추석엔 송편 모양을 어떻게 만들까, 소는 뭘 넣을까 행복한 고민을 합니다.
예부터
송편을 곱게 빚으면 예쁜 딸을, 막 빚으면 미운 딸을 낳는다 했습니다. 소도 콩이나 밤을 많이 사용하면 아들을, 팥이나 깨를 좋아하면 딸을
낳는다 했으나 다 명절 때 한 번 크게 웃어보자는 얘기입니다.
어떤 송편들을 만들고 있나 식구들 구경을 합니다. 크고 작고 예쁜이
못난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달 모양을 닮은 애기 송편이 가장 귀엽습니다. 송편마다 가족들의 얼굴과 냄새가 피어나 주방 가득합니다. 함께 웃고
떠들며 고향을 만들어가는 풍경에 추석증후군이 어디 있을까 싶게 푸근하기만 합니다.
송편 찌는 솔잎 쑥 냄새에 침이
꼴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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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을 담아내는 솔바우 여인들의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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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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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편에 넣을 밤소 색깔이 곱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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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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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뭐니 해도 쑥색과 솔잎 향기가 피어올라야 고풍스런 멋이 솟아납니다. 이른 봄에 쑥을
뜯어다 살짝 데쳐 냉동실에 보관했다 쌀가루와 함께 빻아내면 그림처럼 쑥색 물이 들어옵니다.
추석이 가까워오면 생 솔잎을 따러
산꼭대기로 갑니다. 내 할아버님은 닭과 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산속 것이라야 송편 맛이 제대로 묻어난다며 청청한 솔잎을 따오곤 하였습니다.
싱싱한 솔잎에선 향과 색깔 말고도 폴리테논 성분으로 오장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콜레스토롤을 낮춰 항암 예방에도 효험이 크다고
합니다. 솔잎이 새삼 다르게 올려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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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잎, 싱싱도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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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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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울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빚어낸 송편이 달라붙지 않게 솔잎을 깔아 앉히고 또 깔고
켜켜히 송편을 쩌 냅니다. 김이 솟을 때마다 솔잎 쑥 냄새가 코끝을 맴돌아 침이 꼴깍합니다.
냉수에 헹궈 솔잎을 떼어내고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참기름을 바르고 나면 반달만큼이나 소쿠리 가득 환하게 되비쳐옵니다.
어렸을 땐 참기름 바를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어 떡시루에 달라붙어 서로 먹겠다고 떼를 쓰다보면 어느새 한 켜가 동이 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또 조상님보다 먼저 먹어 버릇없이 군다"며
야단치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돌아나갑니다.
고생하는 내 며느리에겐 빳빳한 배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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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빚어낸 쑥색 솔잎 송편, 귀여워 어찌 먹을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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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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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가위, 햇곡식을 조상들께 바치며 풍성한 먹을거리를 내려주신 자연에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올 여름 억수장마와 찜통더위로 고생 만만찮았건만, 고향의 가을은 어느 해 못지않게 풍성하고 넉넉합니다.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깎아 조상을 모실 수 있다는 게 여간한 행운이 아닙니다.
장손며느리가 내 집에 들어와 이젠 제법 명절 솜씨가 그럴
듯합니다. 직장생활에 어린 것을 두 명이나 키우려니 힘들고 짜증스럽기도 하련만 음식장만을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대견합니다. 행여나 추석
명절증후군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좀 앞서기도 합니다.
현명한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작은 정성 하나 준비했습니다. 고생하는
장손 며느리에겐 빳빳한 배추색깔로 빵빵 찬 봉투를 앞치마에 몰래 넣어주며 등 한번 두드려 줬을 때 명절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가위란 이름은 아무리 불러도 기분이 흐뭇합니다. 오늘 저녁엔 휘영청 떠오르는 둥근 달을 맞아 쌀 동동주잔을
거후르며 흘러간 옛 노래라도 한곡 읊조려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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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편 익반죽 굴리는 며느리의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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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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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저기 우측 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새로운 고향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기자소개 : 윤희경 기자는 북한강 상류에서
솔바우농원을 경영하며 글을 쓰는 농부입니다. 올 4월에 에세이집 '북한강 이야기'를 펴낸 바 있습니다. 카페 주소는 cafe.daum.net/bookhanka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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