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한국 배낭 여행객들은 문서 위조범들?

피나얀 2006. 10. 24. 22:42

 

출처-[오마이뉴스 2006-10-24 09:49]



▲ 페트라의 파노라믹 뷰. 구석구석을 살펴보려면, 건장한 젊은이의 빠른 걸음으로도 꼬박 이삼일을 할애해야 한다.
ⓒ2006 오소희
페트라의 호텔에서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20대로 보이는 딸은 휴가 중이었는데, 엄마를 가이드하며 여행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당연히, 페트라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오늘 페트라에 다녀오셨나요?"

나의 질문에 딸이 대답한다.

"오늘은 잠깐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지 않았어요. 내일 아침 일찍 가보려고요. 벌써 가보셨나요?"
"예. 저는 2일(two-day) 입장권을 샀거든요. 1일(One-day) 입장권이 10.5 JD인데 2JD만 더 주면 살 수 있어요." (1JD = 약 1500원)

뜻밖에도, 그녀는 조금 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국제 학생증을 안 만드셨군요? 우리는 이집트에서 다 만들어 왔어요. 저는 학생증을, 엄마는 교사(敎師)증을. 미리 만들어오셨다면, 그 가격에서 50% 이상 할인받을 수 있으셨을 텐데…."

나는 말문이 막혀 1~2초간 그녀 얼굴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 학생증 같은 건 필요 없었어요. 페트라를 둘러보면서, 그 돈이 아깝단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학생도 아니니까요."

신분증 위조를 당연하게 생각한 한국인 모녀

선하고 지적인 얼굴을 지닌 모녀가 돈을 주고 신분증을 만들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유독 한국 배낭여행자들은 학생증이나 교사 자격증 등의 신분증 위조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목적은 비용 절감. 별다른 증빙 서류 없이도 약간의 커미션만 지불하면 쉽게 가짜 신분증을 받을 수 있는데, 이로써 각종 문화재 입장요금이나 교통수단을 이용할 시 파격적인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국내에서 이런 짓을 한다면 아마도 합당한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다. 굳이 처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분증을 위조하는 여행자들 대부분이 국내에서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만 쉽게 생각할 뿐이다. 외국에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들킬 염려가 없는 '이방인'이라는 신분에 대해.

그리고 또 그들은 편리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 정도의 공문서 위조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며, 몇몇 관광수익에 눈이 벌건 나라에서 외국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요금 제도를 비웃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혹은, 그들은 아예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행위가 관광업의 블랙마켓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그들은 그저 얼마를 들여 얼마를 이득 보는가 하는 단순한 덧셈과 뺄셈 끝에 쉬운 결정을 내리는 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들은 비밀스럽게 신분증을 위조하지 않는다.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공공연히 여행관련 매체를 통해 떠벌리고, 얼마나 이득을 보았는가에 대해 비교하고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만들지 않는 사람은 준비성이 부족하거나 지극히 비경제적인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 동기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내가 의아하게 집중하는 것은 그들의 떳떳함이다. '차익을 남겼으므로 어쨌든 잘한 일이다'는 식의 획일적 물신(物神) 주의에서 오는 떳떳함.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최우선으로 배양하는 떳떳함이라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른 아침의 트페져리는 또다른 아름다움

▲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페트라
ⓒ2006 오소희
페트라는 새벽 6시면 문을 연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면, 이미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햇살이 뜨거워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이른 아침 선선한 공기 속에서 페트라를 둘러보고 정오에는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게다가 오전 9시 무렵이면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도착하기 때문에 에즈 시크의 고요함을 맛보려면 그 이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불러 뒤돌아보니, 다나에서 함께 하이킹을 했던 폴이었다. 아이는 몹시 반가워하며 폴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도 싼 호텔을 찾다가, 페트라에서 수 킬로 떨어진 시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어제는 호텔 근처의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혔어요. 특히 그중 한 할아버지가 나를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 몇 시간이나 애를 쓰셨지요."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른 아침의 트레져리는 엊저녁에 본 것과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침 햇살에 깨끗하게 씻긴 위대한 건축물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언제 어느 순간이나 보는 이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트레져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몰려드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의 햇살이 장밋빛 사암을 가장 빛나게 하며 이때 트레져리가 가장 포토제닉해진다고 한다.

트레져리 앞에서, 어제 한 약속대로 테이세르가 당나귀를 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잔뜩 설렌 얼굴로 냉큼 당나귀에 올라탔다. 나는 테이세르에게 되도록 느리게 움직일 것을 부탁했다.

그는 온종일 땡볕 속에 산을 오르내려야 할 것이라면서 내게 아이와 함께 탈 것을 권했지만 사양했다. 아이를 따로 떼어놓고 내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는 것은 놓칠 수 없는 행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행운은, 한평생 무거운 짐을 질 운명으로 태어난, 그러나 오늘 20㎏g이 채 안 되는 중빈 하나만을 달랑 얹은 이 나귀에게도 행운임에 틀림없었다. 때마침 우리 곁으로 지나가는 가련한 당나귀를 보니, 배를 얹을 안장이 따로 하나 더 필요할 만큼 비만한 백인 여성을 태운 채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택시 타세요! 에어컨도 있습니다"

▲ 아침 일찍 페트라에서 장사를 시작하려는 베두인 여인이 좌판 주변을 쓸고 있다.
ⓒ2006 오소희
그런데 뒤에서 당나귀를 따라가노라니, 오, 이런, 썩 원하지 않던, 그러나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당나귀의 핑크빛 항문이 쑤욱 튀어나오면서 둥그런 배설물을 똑 떨어뜨리더니, 다시 감쪽같이 쏘옥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다. 무거운 승객을 싣고 계단식 절벽을 끙끙대며 오르다보니, 당나귀들은 곧잘 방귀를 뀌곤 한다.

당나귀를 가진 베두인 청년들은 호객 행위를 할 때마다, 이 방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유머를 즐겨 사용한다.

"택시! 택시 타세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도 있습니다!"

좁은 바위 계단에서 승객을 실은 당나귀 두 마리가 마주치면, 이들은 또 이런 농담도 주고받는다.

"자네 택시는 몇 기통인가?"
"그야 물론 6기통이지. 자네는?"
"6보단 많겠지. 7이나 8기통쯤?"

아마도 내게는 새로운 이 유머가 그들에게는 매일 반복하는 일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또다른 당나귀와 마주치면, 질리지도 않고 똑같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눈다. 그리고 "와하~!" 큰 소리로 웃는다.

이것은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듯, 웃음을 대접하려는 베두인들의 성의이다. 또한, 오랜 세월 사막에서 길들여진 그들만의 '시간 때우기'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같은 농담을 두 번 이상 한다면 썰렁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속도와 새로움을 좇는 우리에게 '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열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낙타를 타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이동을 하곤 했던 베두인들에게 '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온종일 이동해도 똑같은 모래벌판만이 펼쳐지는 삶. 그나마 심한 모래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 옆에서 함께 낙타를 타고 가는 동료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지라도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는 소박한 축복이 되었다. 그러므로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이들에게 '견뎌내기'의 한 훈련이었고, '강인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2005년 10월에서 11월, 아들과 함께 아랍 3개국을 여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