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세월도 비껴 간 변산반도의 '곰소 염전'

피나얀 2006. 10. 24. 22:46

 

출처-[오마이뉴스 2006-01-11 17:56]  



"지금은 살이 붙었어, 근디 겨울에 여그까지 뭣하러 온겨. 힘? 아이고 힘이야 무자게 들제. 시상에서 가장 힘든 게 여그 일이여. 그랴도, 눈이 많이 옹께, 그림이 좋네, 허허허. 춥고, 눈 와불면 아무도 없어. 아~ 지금이야, 적적하지만 (일)시작하믄 예전만 못 혀도 일꾼들이 북적거려, 겨울엔 쉬어야제. 그래야 일을 항께."

▲ 지금은 쇠락한 곰소염전의 소금창고와 염부들의 마을 전경입니다.
ⓒ2006 서재후
일이 고되고, 살기 팍팍해질 때는 막걸리 한잔 걸치고, 노래 한 가락 뽑아 젖히면 다 잊어버린다는 김씨 아저씨. 그는 소금창고 옆에 생활집을 마련하고 30년 가까이 힘든 염전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겨울바람에 검붉게 달아오른 그의 억센 손은 연신 앞마당의 눈을 퍼내며 추운 겨울에도 쉴 틈이 없습니다. 겨울이라 쉬엄쉬엄 해도 될 터인데 말입니다. 그의 얼굴의 깊은 주름처럼 부지런함이 몸에 굳었나 봅니다. 염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몸을 놀리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는 그것이 몸 풀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흐린 곰소항 앞바다에 배가 하늘을 나는듯 둥실 떠 있습니다.
ⓒ2006 서재후
서해안 고속도로 줄포IC에서 빠져나와 곰소항 가는 길 초입에는 온갖 젓갈상회 입간판들이 즐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젓갈시장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젓갈이 유명한 것은 곰소항에서 들어오는 온갖 종류의 해산물들과 포구 뒤편 잘 발달된 천일염전에서 소금이 무한정 쏟아져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곰소 염전은 간수를 적게 사용해 소금의 쓴맛이 없어, 젓갈의 맛도 일품이라 합니다.

▲ 지금 곰소염전은 흰눈을 덮고 휴식중 입니다.
ⓒ2006 서재후
지금 곰소 염전은 지난여름 화려하게 피었을 하얀 소금꽃 대신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더욱 적막강산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멈춰있는 액자 속의 그림처럼 미동도 없습니다. 소금창고가 일렬로 늘어선 앞길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발자국 위로 세찬 바람만 할 일없이 오갈 뿐입니다. 가끔씩 머리에 짐을 이고 하얀 눈밭을 걷는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뒤를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쫓아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가 앞으로 더 가야할 길을 봅니다.

▲ 화려했던 시절 염부들이 살았을듯한 지금은 쇠락한 풍경입니다.
ⓒ2006 서재후

염부들의 생활상 느껴지는 창고와 폐가

시커멓게 우뚝 서있는 창고들과 이름 모를 염부가 살았을, 대문도 없는 폐가는 씁쓸한 기분을 넘어 스산한 기운마저 느껴집니다.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쇠락한 풍경이 비틀거리며 서있습니다.

▲ 염부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수 있는 문구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고된 염전일을 견뎌 내었을 것입니다.
ⓒ2006 서재후
소금창고들 중간쯤에 벽돌로 막아놓은 염전사무실 입구를 보니 뻔질나게 드나들던 염부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사무실 문을 열면 정면에 '상경하애(上敬下愛)'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염부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글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고된 염전일을 견뎌 내었을 것입니다.

▲ 우리가 쓰는 생활도구는 눈 씻고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최첨단 디지털시대를 넘나드는 요즘 오래 된 아날로그의 모습은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2006 서재후
안으로 들어가면 족히 20~30년은 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용도는 모르겠지만 검고 길쭉한 책상과 낡고 삐걱거리는 의자가 주인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요즘의 우리가 쓰는 생활도구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최첨단 디지털시대를 넘나드는 요즘 오래된 아날로그의 모습은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세월이 이곳만은 비껴간 모양입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적적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저 헛헛하게 웃으며 답하시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는 물음에 두 손을 휘휘 내저으시던 김씨 아저씨의 굵게 주름진 얼굴은 쉬 잊혀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내소사로 향하는 길 내내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 한사람에게라도 소금같이 꼭 필요한 존재일까'라고 말이죠.

▲ 내소사 대웅전의 꽃무늬 창살입니다. 불제자들의 무궁정진하는 모습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 계절 쉬지 않고 내내 꽃이 만발 합니다.
ⓒ2006 서재후

꽃무늬 창살이 아름다운 내소사

국립공원 변산반도 내에 있는 내소사는 전나무숲길과 꽃무늬 창살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겨울에 가보기는 처음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가본 곳이기도 합니다. 내소사입구의 전나무숲에 들어서면 하얗게 덮여 있는 눈 사이로 깨끗하고 맑은 전나무향이 코끝에서 진동합니다. 이 숲을 지나 일주문과 천왕문, 봉래루를 차례로 지나면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꽃살문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목수의 정성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합니다.

▲ 내소사 경내 담장에 사람들의 소망으로 빚은 눈사람이 소박하게 앉아 있습니다.
ⓒ2006 서재후
내소사에는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재미가 있습니다. 경내를 오른쪽으로 돌면 내소사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암자로 오르는 조그마한 오솔길이 보입니다.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참으로 예쁜 오솔길은 청련암과 내소사를 이어줍니다.

▲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참으로 예쁜 오솔길은 청련암과 내소사를 이어줍니다.
ⓒ2006 서재후
이곳에 큰 눈이 내려 청련암으로 가는 길이 녹록치 않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적어도 등산화는 산다, 산다 마음을 먹었지만 이놈의 게으름은 해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겨울등산 장비 없이 부실한 두 다리와 튼실한 나무작대기 하나 부여잡고 눈 덮인 산길을 올랐습니다. 약 40분 정도 오르니 겹겹이 끼어 입은 외투 속으로 땀이 흘러내립니다. 이렇게 힘들게 오른 청련암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전망 하나로 세상을 다 얻은 듯합니다.

▲ 청련암의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는 지금 출타중일까요? 올겨울 눈보라에 날려간 모양입니다.
ⓒ2006 서재후
내소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곰소만까지 내다보입니다. 사람과 부대끼며 힘들거나 상처받아 쉬고 싶을 땐 이곳을 찾으면 좋습니다. 내소사 전나무숲에서 지친 몸과 마음 추스르고, 청련암에서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어 가곤 합니다. 올 겨울방학 아이들과 함께 이곳 변산반도 내소사로 올해 첫 여행을 떠나도 좋을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가는 길은 쉽습니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줄포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격포 방향 30번 국도를 타면 곰소항이 보입니다. 곰소 염전과 같이 둘러보시고 격포 방향으로 차를 몰면 내소사 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제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허접한 사진들을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