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11-02 09:48]
“으…음, 향기가 너무 좋아.”
10분에 한번씩, 이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스읍’ 하고 깊이 들이마시면 머리 끝까지 알싸해지는 나무 냄새. 조금이라도 더 몸 속에 담아가고 싶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여기는 경남 남해에서도 끝자락, 남해군 삼동면의 편백자연휴양림.
나무 냄새를 만들어내는 피톤치드가 소나무보다 3배 많다는 편백나무로 이뤄진 휴양림이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립휴양림 33곳 중 편백나무 휴양림은 이곳이 유일하다.
◇62만평 절반이 편백나무
편백휴양림은 ‘남해 금산 보리암’으로 유명한 금산의 동북쪽 자락에 있다. 전체 62만평(207ha) 중 절반이 편백나무다. 한쪽 사면 전체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삐죽삐죽한 편백나무로 덮여 있다. 딱 그 장면이다. 한 제지업체의 티슈곽에 그려져 있던 ‘우리강산 푸르게’ 광고.
“편백 수령이 40~50년쯤 됩니다. 일제시대에 처음 들여와서 196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조림했지요. 줄톱으로 잡목 베어내고, 지게에 나무 실어서 줄 맞춰 심었어요.”
편백휴양림관리소의 윤덕기 주사(52)는 “토질이 편백에 적합해 대량 조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편백은 일본이 원산지.
침엽수지만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란다. 일제시대에 심은 나무는 매표소 입구 산자락에만 남아있다. 대부분 60년대 조림한 나무들이다. 수령에 비해 나무는 허약해 보인다. 지름 20~25㎝, 높이 15m 정도다. 땅속 1m 아래부터 암반으로 이뤄진 돌산이기 때문이다.
편백, 삼나무, 리기다 소나무가 ‘빅3’. 예전부터 산에 터를 박고 자란 상수리, 골참, 졸참 같은 참나무류도 많다. 한해 중 휴양림이 가장 고운 때는 11월 중순. 울긋불긋하게 물든 활엽수 단풍과 사철 푸른 편백잎이 산자락을 나눠 채운다.
◇편백은 피톤치드 생성 1위
휴양림에 왔으니 산림욕은 필수. 계곡을 따라 숙박시설과 산책로가 놓여 있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1㎞ 길이의 숲 탐방로를 선호한다. 편백 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 산책하는 코스다. 편백은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피톤치드가 많아 산림욕에 좋다. 100g당 피톤치드 발생량이 5.2㎖로 소나무(1.7㎖), 향나무(1.8㎖)보다 3배나 많다.
피톤치드가 피부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알레르기 비염 환자나 아토피 피부병 환자들이 편백 숲을 찾는다. 한두 번 다녀가는 것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편백숲의 짙은 향기는 확실히 다른 숲과는 다르다.
휴양림 뒤편의 전망대도 다녀올 만하다. ‘나무’가 아닌 ‘숲’이 보인다. 울창한 편백숲 사이로 보이는 작은 연못은 내산 저수지. 저수지 옆의 빨간 지붕은 최근 준공한 나비생태관이다. 뒤로 돌아서면 남해 바다다. 산자락 사이로 섬처럼 솟아오른 땅은 섬이 아니라 금포 해변. 날씨가 맑으면 멀리 세존도까지 볼 수 있다.
휴양림 등산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1.4㎞, 30분 정도 걸린다. 300m 정도는 가파른 산길, 나머지는 임도다. 산길을 피하려면 산림문화휴양관 앞에서 임도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2.5㎞. 경사가 거의 없어 어린이와 노약자도 가뿐히 다녀올 수 있다.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길을 넓게 닦아 오솔길을 걷는 맛은 없다.
◇가장 가까운 가게까지 3㎞
이 휴양림엔 매점이 없다. 음료수 자동판매기는 고장. 물론 식당도 없다. 라면이나 생수를 사려면 3㎞ 떨어진 내산마을의 ‘편의점’을 이용해야 한다. 고기라도 구워 먹으려면 8㎞를 달려 동천마을로 나가 사와야 한다. 횟집이 몰려있는 미조항까지는 승용차로 30분 걸린다. 그만큼 첩첩산골이다.
휴양림 숙박시설엔 간단히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식기, 수저, 가스레인지 등 취사설비가 갖춰져 있다. 당일 이용객을 위해 물과 싱크대뿐이지만 취사장도 마련돼 있다. 가스레인지 등은 직접 가져와야 한다. 특별히 제한하는 요리는 없지만, 11월부터 5월까지 산불조심 기간엔 숯불 바비큐를 금지한다.
휴양림의 제 맛을 느끼려면 하룻밤 정도 머무르는 것이 좋다. 편백휴양림은 다른 휴양림에 비해 숙박시설이 많은 편. 8·12평형 통나무집과 원룸 등 37동의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다. 통나무집의 외관은 머릿속으로 상상해온 ‘숲속의 집’ 그대로이지만, 시설은 단출하다.
장판 깔린 마루, TV, 화장실, 부엌 정도다. 2층에 다락방이 있지만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위험해 보인다. 숙박객에겐 매표소에서 “수건이 아니라 걸레입니다”라며 ‘수건’을 나눠준다. 처음엔 수건을 제공했지만, 이용객들이 걸레로 사용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걸레’가 됐단다.
밤, 2층 다락방 창문에 코를 박고 내다봤다. 어둠 속에 눈이 익자 잎이 무성한 편백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지나니 ‘소리’들이 들렸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 새소리, 나뭇잎끼리 부딪치는 소리….
사실 남해 편백림은 전남 장성 편백숲이나 고흥 삼나무숲처럼 감동적이지는 않다. 나무도 우람하지 않고, 길도 예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숲엔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 편백의 초록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나무 냄새가 얼마나 상쾌한지를 알게 한다.
휴양림은 숲이 홀로 고고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쉬게 하고 안아주는 곳임을 가르친다. 먼저 다녀간 이들이 “좋다, 좋다, 좋다”고 한 것은 그런 이유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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