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일본 아키타① 단풍과 온천이 빚은 화음

피나얀 2006. 11. 4. 00:27

 

출처-[연합르페르 2006-11-02 10:12]




푸른 빛깔 고운 가을 하늘 아래의 아키타(秋田)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곱디고운 풍경 속에 몸뚱이를 내던지면 푸근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는 바람 한줄기, 구름 한 움큼도 낭만적인 한순간을 위해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들어선 순간 가을 낭만의 문이 활짝 열렸다.

 

단풍여행은 나이 지긋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고루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을 단풍이 제아무리 곱다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철을 맞아 산과 들을 돌아다녀도 고집스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 뜻하지 않은 가을 더위와 가뭄으로 인해 한국의 가을은 말라가고 있었다.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일본을 찾아가며 '뭐 다를 게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던 것은 단풍에 대한 개인적인 무관심과 일본 단풍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일본 북도호쿠 지방의 산들은 예상했던 대로 짙은 푸르름에 갇혀 있었다. 단풍이 든 듯한 빛바랜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했지만 그저 잠깐 지나는 풍경에 불과했다. 푸른 숲 사이에 말라죽은 나무인 것 같기도 했다.

 

 

아키타(秋田) 공항은 현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단풍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하치만타이(八幡平)로 가기 위해서는 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도로에는 띄엄띄엄 자동차가 지나고 도로 주변의 풍경은 한국의 농촌처럼 한가롭기만 했다.

 

하치만타이를 향해가며 푸르던 산 빛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막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푸른 소나무와 삼나무 사이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옅은 갈색으로 변색한 너도밤나무가 고개를 내밀곤 하더니 어느덧 주변은 깊은 가을을 느끼게 하는 색깔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 동안 꿈이라도 꾼 듯 뒤바뀐 풍경이 어리둥절하게 다가왔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오누마(大沼)의 단풍

 

하치만타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해발 800m의 오누마 연못에서 차를 멈췄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아침나절의 졸린 기운 때문에 나타난 착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몇 번이고 비벼보았지만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누렇게 변한 갈대밭 뒤로 정지된 듯한 연못이 있고, 그 뒤로는 작고 평평한 산들이 지나고 있다. 평지와 연못과 낮은 산이 이루고 있는 풍경은 곱게 색칠한 미술관 속 그림이라도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갈대밭 사이에 나무로 만든 좁은 산책길을 따라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앞서 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갈대들 뒤로 자꾸만 사라졌다 나타나곤 한다. 갈대가 우거진 오솔길은 또 다른 예쁜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산책길은 옅은 갈색과 진한 갈색의 평평한 들판으로 이어지더니 오른쪽으로 굽이돌며 연못 쪽으로 향했다.

 

 

기다란 갈대에 가려져 있던 연못이 오른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 있는 수면은 곱게 물든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풍경이 수면에 들어와 시시각각 다른 풍경화를 그려냈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작은 파문을 일으키자 수면에 그려진 풍경화도 일렁인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이 지나며 동화 같은 가을 풍경에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산책로는 연못 둘레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죽어버린 나무줄기 뒤로 연못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그곳에서는 현기증마저 일 정도로 모든 것이 멈춰선 듯했다. 시간도 풍경도, 사람들도 미동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었다.

 

갈대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이 현실 속의 풍경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연못에 뜬 작은 배 한 척을 상상 속에 그렸다 다시 지워버렸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는 풍경 속 뱃놀이가 너무 이기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 속, 풍경화 속 세상을 뒤에 두고 떠나는 발길이 무거웠다. 사진기와 눈과 마음에 그곳을 담아두기 위해 뒷걸음질로 오누마를 벗어나야 했다. 버스에 오르는 일행 모두의 표정에 미소와 상쾌함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