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12-21 10:04]
아그라 성에 유폐된 왕은 말을 잃어갔다. 해가 떠오르기 전 침상에서 늙고 병든 몸을 일으켜 야무나 강의 물안개 사이로 어른거리는 타지마할을 친견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지척임에도 닿지 못하고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무굴제국의 5대 왕으로 등극해 아그라 성, 타지마할, 레드 포트, 자마 마스지드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일구던 때가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자신이 세운 금자탑 중 하나에 갇혀 말년을 보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유폐된 왕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Mummtaz Mahal)을 기려 타지마할을 세운 건축왕 샤 자한(ShahJahan)이었다.
지난 늦가을 아그라는 힌두교 명절 디왈리(Diwali) 축제로 들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처럼 선물을 교환하고 밤새도록 불꽃놀이를 벌였다.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날 오후 호텔을 나와 오토릭샤(Auto Rickshaw)를 타고 타지마할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는 인도의 여느 도시에서처럼 사이클릭샤(자전거 인력거)와 더불어 관광객의 발 노릇을 했다.
타지마할 부근 시장은 온통 꽃장수들로 넘쳐났다. 노란 꽃잎의 매리 골드 플라워(Marry Gold Flower)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무게를 달아 팔았다. 꽃을 긴 줄에 꿰어 상점과 집집마다 입구에 내걸었다. 꽃의 향연에 취해 아그라의 살인적인 대기오염은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북쪽으로 야무나 강이 흐르는, 지상 최대의 호사스러운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선 철저한 몸수색을 거쳐야 했다. 칼과 송곳처럼 날카로운 도구, 물을 제외한 음식 등은 반입 금지였다. 무덤 속 주인공들의 허락 없이 건물 벽면에 방명록을 남기는 몰지각함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어깨에 소총을 멘 군인들이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석에 박힌 보석들을 빼내는 아마추어 도굴꾼도 한 원인이었다. 타지마할은 대리석의 홈을 파내 다이아몬드, 금, 은, 루비, 사파이어 등으로 문양을 아로새긴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상감기법으로 장식됐다.
인도로가는길 정무진 대표의 조언은 귀 얇은 여행자의 발길을 오랫동안 타지마할에 묶어 놓았다. 석양에 이를 때까지 타지마할을 떠나지 못하고 묘당 둘레를 맴돌았다. 하지만 몇 시간을 기다린 정성도 없이, 저무는 태양은 짙은 스모그 뒤로 숨어들었다.
타지마할을 되돌아나가 다시 출입구에 도달했을 무렵엔 이미 흐릿한 달이 떴다. 주차장에는 관광객들을 호텔로 데려가기 위한 수십 대의 릭샤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외국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출몰한다는 잡상인과 구걸자도 한떼였다.
인도인 가이드는 "여행자의 동정과 연민을 구하러 멀리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 몰려든 난민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빈민 가정의 아이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무려 3억3000만 명이 하루 1달러의 빈곤선 아래로 살아가는 땅에서 구걸은 수치가 아닌 삶의 한 방식이었다.
타지마할의 거대한 돔 위로는 매일 새로운 빛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유체계는 타지마할이 지어질 당시에 비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대다수 인도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태어나 죽을 때까지 힌두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굴제국이 수 세기에 걸쳐 시도한 이슬람화는 결국 실패한 셈이었다.
모슬렘 왕들은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이교도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해 개종을 유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하위 카스트 계급에게 평등사상을 각인시키고, 문란할 정도로 개방적이었던 힌두교의 성문화를 억누르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타지마할 이후 무굴제국의 영화로움은 6대 왕 아우랑제브가 계승했다. 샤 자한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형제들과 왕위다툼을 벌여 마지막에 승리를 안았다. 절대권력은 절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아우랑제브는 세 명의 형을 모두 죽이고, 아버지를 아그라 성의 건물 중 하나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가두었다.
무삼만 버즈 아래 밀림수풀에는 사자가 어슬렁대고 악어가 출몰했다. 탈출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름 그대로 '포로의 탑'이었다. 건축왕은 손바닥만한 목욕탕이 딸린 침실에서 8년을 보내고 나서야 아그라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둔 후 대리석 관에 실려 아내가 잠들어 있는 타지마할 묘당 안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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