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이탈리아① 모든 여행자는 로마로 향한다

피나얀 2007. 2. 1. 01:15

 

출처-[연합르페르 2007-01-31 09:44]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한 날'. 괴테가 로마를 찾은 뒤 표현한 문구다. 출중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사람의 인생을 전환시킬 만한 힘을 가졌다는 것일까. 로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고 주저함이 없이 기록했던 것일까.

 

역사가 오랜 만큼 로마를 대하는 여행자의 감정도 복잡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하기에 '영원의 도시'인 로마만큼 적합한 곳은 없다. 유명한 건축물이 한두 개쯤 남겨져 있다고 해서 '과거'를 들먹이고 운운하는 것은 로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로마의 길, 건물은 물론이고 공기나 하늘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시스템을 구축했던 제국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서기 300년대 중반 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는 마흔에 이르러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하고는 유적에게 압도당한 뒤에 '이만한 것을 만들어낸 사람도 마지막에는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겨우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로마를 여행하는 현대인도 절대로 이러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현재의 기술로 로마인에게 필적할 만한 업적을 이뤄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마를 만든 사람들은 세월 속으로 사라졌고, 돌덩어리와 먼지들만이 남았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나라

 

과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고,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했다. 실로 대단한 자부심이 담긴 말이다.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를 공인했고, 서양 언어의 토대인 라틴어를 사용했으며 로마 가도를 유럽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깔아놓은 나라가 로마였다.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는 고대 로마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책 15권을 완성했다.

 

사실 로마는 지저분하고 불편하다. 길거리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난무하고 벽이란 벽에는 죄다 낙서가 돼 있다. 심지어 지하철에까지 스프레이로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그려놓은 집념이 대단하다.

 

지하철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하철 노선도 2개에 불과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3호선은 공사 도중 유적이 발굴돼 다시 원점에서부터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로마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라고 하기에는 첫인상이 좋지 않은 편이다. 파리에서는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낭만과 여유가 생겨나는 데 비해 로마에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진면목을 알려면 조금은 진득하게 사물을 관찰해야 하는 법이다. 로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 같은 유적 몇 개만 보고 후딱 가버리는 것은 로마 여행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5일은 로마에 투자하라는 가이드북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듯하다. 고대 유적에 하루, 시내 구경에 하루, 쇼핑에 하루를 보내지만 아무래도 충분치 않다. 로마를 하루 보면 다 본 것이고, 1주일이면 조금 본 것이며, 1년이면 본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조금만 시간을 두면 분명히 로마가 편안해지고 포근해진다. 어눌해 보여도 알고 보면 속이 꽉 차 있는 도시가 로마다. 오래 있을수록 정이 들고 이별하기 힘들어지는 곳이다.

 

로마에 있는 광장과 분수는 모두 유명하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트레비 분수,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의 무대인 나보나 광장은 너무나도 익숙한 지명들이다.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했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 계단을 메운 사람들은 영화를 되뇌면서 낭만을 향유하고자 하지만 애석하게도 음식물 섭취 자체가 금지다. 로마의 휴일 제작진은 단지 숙소가 가까운 곳을 물색하다가 스페인 광장에서 명장면을 촬영했다지만, 사연이야 어찌 됐든 로마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하려고 사람들이 앉아 있는 광장 한가운데에는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에서 밀려왔다는 난파선 분수가 자리하고, 그 너머에는 명품 상점으로 가득 찬 콘도티 거리가 있다.


로마의 분수는 모두 1급수이고 인공적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 없어서 마셔도 무방하다. 오히려 수돗물보다 깨끗하다. 혹자는 분수만 봐도 로마를 알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로마의 분수는 아름답다.

 

파리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다면 로마에는 나보나 광장이 있다. 거리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 광장이다. 본래는 로마 황제의 운동 경기장이었지만, 여느 곳처럼 성당과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바뀌었다.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 로마가 가진 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로마 시대의 돌길을 따라 걸어가니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가 시작된 곳이고 로마의 모든 것이 이뤄졌던 진정한 로마다. 복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처로이 남은 기둥과 잔해가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더 이상 환호성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애잔한 감정이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주인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있어서 그러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로마도 결국엔 스러졌다.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욕심과 아픔을 모두 포로 로마노에 묻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