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이탈리아③ 너무 아름다워 슬픈 도시, 베네치아

피나얀 2007. 2. 1. 01:20

 

출처-[연합르페르 2007-01-31 09:44]




수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물의 도시'는 아름답다. 하지만 무심코 들른 여행객은 베네치아가 간직하고 있는 크나 큰 슬픔을 알지 못한다. 모든 사랑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는 것처럼, 모든 역사에는 영고와 성쇠가 있다. 번창을 누리며 화려했던 날들을 수면 아래 묻어두고 물은 조용히 흘러간다. 뜨거웠던 연애 시절을 가슴에 품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해질녘 수상버스에서 베네치아를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그네의 감흥일 테지만, 지중해를 호령했던 강국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뒤뚱뒤뚱 나아가는 곤돌라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혹은 유리 공예품이나 가면을 사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연인들을 마주칠 때면 슬그머니 부러움과 행복감이 생기지만 찰나에 불과할 뿐이다.

 

베네치아를 일상생활의 무대로 삼고 있는 이들에겐 미안하게도 베네치아에 있으면, 산 마르코 광장 앞에 서면, 서리지탄(黍離之嘆)의 비통함과 애석함이 무수히 교차한다.

 

이 도시는 애초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할 즈음, 이민족에 쫓기던 피난민들이 갈대만이 무성하던 늪지대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뿌리를 박고 정착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땅을 개간했고 운하를 만들었으며 건물을 지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불모지를 개척해나간 강인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했던 만큼, 집착했던 만큼 함께했던 연인과의 이별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것처럼 베네치아가 융성했던 시기의 정점과 현재의 상황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 중 가장 강대했고 십자군 원정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던 나라이자 한때는 희귀한 진상품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었던 나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배경이기도 한 베네치아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점령당해 '국가'에서 일개 '도시'로 전락한다. 그리고는 줄곧 쇠퇴의 길을 걷는다. 지금은 그저 이탈리아 북부의 유명한 관광지일 따름이다.

 

이방인들은 운하가 미로처럼 퍼져 있는 베네치아를 보면서 신기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건물들은 찰랑거리는 물결 위에 절묘하게 떠 있고 버스나 택시는 도로 대신 수로를 이용한다는 발상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몰디브나 타히티의 리조트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가 땅이 아닌 바다에 토대를 세우고 가옥을 짓겠냐마는 이곳은 1500년간 자기네 방식대로 기능해왔다.


도시의 시스템이 유별나다 보니 더욱 예쁘고 이국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날씨 맑은 파리보다 우중충한 베니스가 낫다'거나 '아무리 극찬해도 모자람이 없는 도시'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이면에는 왠지 베네치아에서는 거주하기 힘들 것 같다는 사고방식도 존재한다. 삶의 방식을 상당 부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으로 둘러보는 것은 좋지만 생활하라면 모두 포기하고 도망갈 태세다. 게다가 도시 자체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니 더욱 두려워진다. 실제로 비가 많이 오면 광장에는 물이 들어찬다.

 

하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이 간판을 내리기 10여 년 전인 1786년에 괴테는 말했다. "베네치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다가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느려 수천 년이 걸릴 것이고, 그 동안 베네치아 사람들은 운하를 현명하게 관리할 것이다"라고. 그러니 여행자들이여, 편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베네치아를 대하기 바란다.

 

◆도로는 물, 버스는 배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역에 내리면 초록빛 운하와 성당이 마중을 한다. 사실 운하는 우유처럼 희뿌옇고 더러워서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는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심은 낮은데 배들이 자주 들락날락해서 혼탁해 보이는 것이다.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리알토 다리로 향했다. 대운하의 폭이 가장 좁은 지점에 거대하게 걸쳐져 있는 이 다리는 80개의 섬을 연결하는 400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다. 리알토 다리를 디자인한 사람은 무명의 건축가였는데, 그가 공모전에서 희대의 천재인 미켈란젤로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아치 공법을 이용해 폭을 넓혔기 때문이었다.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또 다른 명물이다. 시끄러운 목소리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곤돌라의 사공은 누구나 선망하는 인기 직종이다. 영어도 잘해야 하고 얼굴도 잘 생겨야 하는데다 수입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영수증을 발급할 필요도 없고 까다로운 세무조사도 없으니 최고의 자영업인 셈이다.

 

꼬불꼬불한 길이 물과 뒤섞인 '미궁'으로 나올 때는 들어갈 때와 똑같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지도는 효용성이 지극히 떨어지고 감각을 믿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베네치아 여기저기에는 수많은 성당들이 있다. 실상을 모르는, 하루나 이틀만 머무르고 훌쩍 떠나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당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번성했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져온 보물은 모두 그곳에 있다. 유럽의 문호들이 이 도시를 예찬했던 진정한 이유다. 베네치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유리 세공의 섬 ‘무라노’를 돌아보고 다시 목적지인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수상버스에 올라탔다. 정류장을 모두 들르는 완행버스이기 때문에 광장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저문 뒤였다.

 

이탈리아에서 본 어떠한 광장보다 웅장한 이곳에는 찬란했던 베네치아의 건물들이 버티고 있다. 대성당과 도서관, 총독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은 빛바랜 사진처럼 쓸쓸하게 보였다. 이제는 베네치아 사람보다 이국에서 온 관광객이 더 많은 광장에는 주홍빛 조명이 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