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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이것이 동안 신드롬의 실체다

피나얀 2007. 2. 8. 17:27

 

출처-[매거진t 2007-02-08 14:30]



김현진, 동안 광풍의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다

“동안, 동안” 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언젠가는 멈출 유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단순한 유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경향이고 하나의 조류가 되어버린 것이 지금이었다. 작년 하반기쯤 ‘동안 선발대회’라는 것이 생길 때까지만 해도 그냥 보기에 재미있는 행사였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동안을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각축을 겨룬 그 행사에는 아들의 큰누나 뻘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젊디젊어 보이는 주부가 나와 사람들의 탄성을 사며 결국 1위를 거두었고, 그 출전자는 여세를 몰아 자신의 동안 관리 비법을 모은 책을 출간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의 입에 “동안, 동안” 하는 이야기가 오르내리기도 하고, ‘동안 스타’ 혹은 ‘노안 스타’의 비교물이나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이 동안인지 노안인지가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동안의 선풍적 인기는 그칠 줄을 모르고 뜨거워지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동안이 되는 비법이나 함께 동안이 되는 노력을 하자는 까페도 눈이 돌아갈 만큼 많다.

‘자연미인’보다 까다로운 ‘동안’의 조건

이들은 얼굴만 타고난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잘 타고났다.

심지어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어떻게 하면 동안이 될 수 있는지 방송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동안의 조건도 매우 구체적이다. 일단 이마는 동그스름하고 도톰하고 매끈해야 한다. 그리고 눈은 아기들의 눈처럼, 컬러 써클 렌즈를 한 것처럼 크고 검은 눈동자여야 하는데 흔히 삼백안이라고 하는 흰자가 눈에 두드러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꼭 눈동자가 눈을 꽉 채울 만큼 커야 한다.

 

그 눈 밑에는 역시 아기처럼 볼록하게 나온 이른바 ‘애교살’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절대 피곤한 것처럼 눈 밑이 푹 꺼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절대로 광대뼈가 튀어나와서는 안 되고 통통하고 도톰한 뺨을 가져야 한다. 혈색도 발그스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턱도 억세 보여서는 안 되고 발달이 안 된 것처럼 짧고 귀여워야 한다. 당연히 이 모든 조건 중에는 뽀얗고 모공이 없는 피부를 가져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런 젠장, 차라리 문근영처럼 생겨라! 그러면 당신은 동안이다! 하는 편이 낫겠다, 치사한 것들!

살벌한 시대는 어리광을 부르고

‘동안클럽’ 이라는 코너명에 귀가 솔깃해진다.
<변신! 동안 만들기>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글

사실 젊어 보인다는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노인분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인사도 예나 지금이나 “참 젊어 보이시네요”라는 말 아니던가. 하지만 젊은 것만으로는 안 되는 시대가 왔다. 젊은 것은 기본 조건이요, 옵션이 어릴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동안 공화국의 시대가 된 것인가? 뜬금없는 소리지만, 난 이게 다들 살기 힘들어서 이런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냐고? 이 동안 신드롬은, 바로 어리광의 발로이다. 다들 살기 힘들다고 난리가 난 시대가 와서 이렇게 다들 한 치라도 어려 보이고 싶어서 난리가 난 것이다.

 

어려서 좋은 일은 바로 책임질 일이 적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어른은 없다. 그러므로 몇 백만 실업자 시대가 어떻고 저떻고 엄포를 놓는 이 시대에, 누구도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른은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나는 이렇게 동안이잖아요, 저는 아직 어려요… 이 동안 신드롬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시대의 절규다.

 

어른이 되기 두려운 시대의 절규다. 저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마세요. 아직 어리니까 저 좀 돌봐주세요… 저 아직 그렇게까지 어른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이렇게 어려 보이잖아요. 이렇게 애기같이 생겼잖아요 = 저 아직 애기예요, 라고 주장하는 이 처절한 절규가 기본적으로 대학 졸업 기간이 6년 걸리는 0080시대의 어른이 되기 싫은 절규가 동안 신드롬의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는 돈 있는 사람은 늙을 일 없다는 걸 암암리에 모두 알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다.

치열한 노동은 노화를 부른다

동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유다.

작금의 시대는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이 그 언제보다 비웃음 당하는 시대다. 아파트값으로 돈 번 이야기가 신화처럼 전해지는 시대, 전두환은 경멸스러워도 십대에 벌써 몇 십억짜리 건물이 있는 전두환 손녀는 부러운 시대, 정치적으로 이명박과 노선은 달라도 이명박에게 입양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시대, 실제적으로 동안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눈 밑의 애교살은 무슨, 열심히 밤새서 일하면서, 아등바등 사회적 쟁투에서,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이 악물고 싸우면서 눈 밑이 푹 꺼지지 않을 수 있는 재주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악전고투하면서 광대뼈가 푹 꺼지지 않고 도톰하고 통통한 볼을 유지할 수 있는 재주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자고 이를 꽉 악물면서 어떻게 발달하지 않은 짧은 턱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동안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한 주부도 관리할 시간과 돈이 없이 식당에서 하루 종일 쭈그리고 일하면서도 과연 그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인지는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그 정체 없는 젊음만을 찬양한다. 40대인데도 20대같이 보이는 몸짱 아줌마의 근성을 우리는 찬양하지만, 정작 그녀가 몸을 가꿀 여유와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은근슬쩍 가려진다. 왜냐면 우리는 그런 것을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고, 그녀들과 같은 편, 그녀들과 같은 계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나이 든 얼굴이 부끄럽습니까

있는 사람들은 늙을 일이 없다. 굳이 성형수술이 아니더라도 얼굴에 대는 약간의 약품이나 주사를 감당할 용기, 그리고 그 비용을 감당할 만한 여유, 그 비용을 알아볼 만한 관심만 있다면 늙을 일은 없다. 우리 모두 말은 하지 않고 쉬쉬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실 동안을 정말로 부러워하는 것은 동안 그 자체가 아니라 동안을 추구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그 여력인 것이다.

 

점점 앞으로 사회는 극단화가 진행될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더욱 동안이 될 것이고, 하염없이 어려 보이는 얼굴로 천진하게 웃을 것이며 돈 없는 사람들은 더욱 늙을 것이다.

 

제 손으로 고생해서 돈 버는 것을 비웃는 사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동경하는 2007년의 대한민국, 이것이 동안 신드롬의 실체다. 일한 만큼 고생해서 늙은 것을 이렇게까지 창피해해야 하는 시대, 그리고 이 망할 놈의 동안 신드롬을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