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7-02-15 09:21]
날씨는 우울했다. 겨울은 때가 오기도 전에 이미 퇴각해버린 듯했고 봄은 아직 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어 계절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계절의 틈바구니로 하늘은 젖은 빨래처럼 낮게 드리워 날씨는 우울할 뿐만 아니라 음습하기까지 했다.
한 4, 50분 걸었으려나, 마당바위 못 미쳐 작은 봉우리에 멈춰 서서 숨을 돌렸다. 사당-연주대 코스 중 가장 볕 바르고 아늑하고 전망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남모르게 거대한 남근바위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여 이쪽을 지날 때는 자주 이곳에서 쉬는 터였다.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사당에서 출발하여 관악산 연주대를 향하여 훠이훠이 올라가다 보면 마당바위 조금 못 미쳐서 자그만 봉우리에, 혼자 누워 있는 아니 서(?)있는 이 거인을 만날 수 있다.
마당바위를 지나서 연주대, 연주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늘근백수'들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한바탕 입씨름을 벌렸다. 벼랑을 타고 연주대로 넘어가자는 축과 옆길로 안전하게 연주암으로 빠지자는 의견이 언제나처럼 팽팽히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각자 좋은 데로 가서 연주암에서 만나기로 결정하였다. 3명은 연주암 3명은 연주대였다. 원 늙은이들이란….
관악문을 빠져나갈 즈음 하늘은 더욱 낮아지더니 때늦은 매화의 낙화처럼 한 잎씩 눈을 날리게 했다. 굵은 송이로 편편이 날리는 눈에서는 매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비어 있는 관악산에서의 계절에 그것은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다고 떼쓰는 아이의 작은 주먹처럼 앙증맞고 가여웠다. 그러나 그뿐 그것들은 지상에 닿자마자 덧없이 스러졌다.
흔적도 없이 낙화가 스러진 바위를 줄에 의지하며 기어올랐다. 벼랑은 가팔랐으나 못 오를 만큼 험하지는 않았고 눈 몇 줄금 뿌렸으나 바위를 젖게 하지는 못하였다. 벼랑을 올라채니 연주대가 바로 거기였다. 산새 몇 마리 바위에 걸터앉아 먹이를 던져줄 사람을 기다릴 뿐 연주대 또한 적적하였다. 시계는 낮 1시 10분. 사당을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다.
연주암으로 내려와 '늘근백수'들을 다시 만나 간식을 하고는 터덜터덜 과천으로 향하는 지겨운 돌계단을 밟으며 하산했다. 과천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작은 밥집을 찾아 들어가 빈속에 소주를 쏟아부으니 실비는 내 가슴속에서도 덩달아 내렸다. 늙어 일터에서 튕겨나온 우리들의 인생에도 이제 계절은 비어 있었다. 겨울은 때가 오기도 전에 이미 퇴각해버린 듯했고 봄은 아직 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계절이 비어 있는 관악산은 쓸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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