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대만 동부④ 이슬을 먹고 자라는 바오종차

피나얀 2007. 2. 23. 19:47

 

출처-[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대만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를 즐겨 마신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食衣住)'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먹는 것을 중시하는 그들은 '차'를 유달리 애호한다.

 

해마다 열리는 차 품평회에서 수위를 차지한 상품은 80만 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언제나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식당이나 가정에서도 손님을 맞이할 때면 생수가 아니라 차를 제공한다.

 

스타벅스나 바리스타 커피 같은 커피전문점이 생겨나고 있지만 차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청나라 황제가 대만에서 생산된 우롱차를 마셨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이니 이들의 차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날 수밖에 없다.

 

차로 이름난 대만에서도 핑린(坪林)은 대다수의 마을 주민이 차에 매달리고 있는 '다향(茶鄕)'이다. 이 지방에서 재배되는 '바오종차(包種茶)'는 이슬을 먹고 자라 부드러우면서도 순한 맛을 낸다. 풍부한 강수량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이 차 농사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핑린이 차의 고장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차의 역사와 문화 등이 전시된 다업박물관(茶業博物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 대한 각종 설명을 지나치다 보면 '차(茶)' 글자가 다양한 서체로 새겨진 목판이 보인다. 세상에는 글씨의 모양새만큼이나 많은 차가 존재하겠지만 본질은 하나로 통일된다.

 

이 글자 안에는 차의 좋은 점이 모두 함축돼 있다. 멀리서 관찰해보면 차는 풀(十十)과 나무(木) 사이에 사람(人)이 끼어 있는 형국이다. 차에서 우러나온 자연의 빛깔을 감상하고, 향내를 맡고, 맛을 음미하는 동안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 육체와 정신에 쌓였던 갈증을 해소하고 속세의 때를 털어버린다.


나무가 무성한 휴양림이나 새파란 초원에 들르지 않아도 차를 마시기만 하면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무위자연(無爲自然)'할 수 있는 셈이다. 좋은 차는 맑은 물과 공기를 머금고 성장한 '자연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대만 사람들은 바오종차나 우롱차처럼 반쯤 발효시킨 차를 좋아한다. 제조 공정의 차이에 따라 종류가 나눠지는데, 바오종차는 꽃 냄새나 나고 담백하지만 우롱차는 맛이 진하고 희미하게 과일 향이 풍긴다. 이 차들은 봄부터 초겨울까지 6번에 걸쳐 수확한다. 그 중에서도 봄에 따는 춘차(春茶)와 마지막에 걷는 동차(冬茶)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

 

다업박물관에서는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와 '공부차(工夫茶)'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서양으로 수출되던 차 가운데 유독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차가 동방미인차이다.

 

차를 잔에 넣고 물을 부으면 찻잎이 펴지는 모양새가 요염하고 매혹적이어서 '동쪽 나라에서 온 고혹적인 자태의 여인'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그랗게 말려 있는 우롱차와는 달리 잎이 늘씬한 동방미인차는 호박색을 띤다. 은은한 꿀맛이 특징인데, 대만에서만 자란다.

 

공부차는 단어의 뜻처럼 차에 대한 공부를 요구하는 차 음용법이다. 단순하게 찻잎을 잔에 부어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물의 온도, 차의 양, 우려내는 시간을 모두 고려해 최상의 맛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일반 차는 펄펄 끓는 물이 좋지만, 바오종차나 우롱차는 85∼90℃의 물로 마셔야 한다는 식이다.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훌륭한 미감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처럼 대만 사람들은 차에 관한 한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차와 마주했을 때 겸허하고 경건한 자세로 찻물을 따르고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또한 찻잔이 빌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기를 들고서 첨잔을 해준다. 그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맛과 향기를 감별하는 것도 대만의 차가 선사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 마시게 될 차는 무수히 많다. 며칠 만에 불초의 이방인이 종류를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맹물에 오묘한 맛을 발현시키는 차의 세계에 몰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차는 다른 음료처럼 테이크아웃해서 가볍게 즐길 수 없는 물건이기에 반드시 한 자리에 앉아 사색하고 명상하며 마셔야 한다. 다예관에 앉아 몇 시간이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여유는 차 문화로 인해 잉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 것처럼 차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독이 될 수 있다. 무조건 차만 마셨다가는 체내의 칼슘이 소실될 우려가 있다. 같은 찻잎으로 몇 차례씩 마씨는 것은 괜찮지만, 양은 하루에 600㏄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용과 절제 역시 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