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그들을 따라가는 동안 짧은 멀미가 날 만큼 꾸불꾸불한 고갯길이 계속됐다. 간혹 등장하는 건물들은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빛이 바랬고 무미건조하며 단조로웠다.
목적지인 핑시(平溪)의 스펀(十分)까지는 차로 들어갈 수 없었다. 등불축제를 찾아오는 차량이 많아 교통관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힘겹게 만원버스에 올라서자 운전수는 덜컹거리는 길을 재촉했다. 더 이상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던 버스는 여러 번 멈춰서 승객을 태웠다.
대만 각지에서 열리는 등불축제는 1년 동안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행사다. 어스름이 깔리면서 북적이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의 손에는 얇은 종이로 제작된 원통형 등불이 들려 있었다. 등불은 전쟁에 나서는 군인의 총과 같이 원소절의 핑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높이가 허리만큼 올라오는 등불에는 각가지 사연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지켜달라'는 일상적인 주문은 물론이고 거창하게 '세계평화'를 소망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핑시 등불축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모자를 닮은 탓에 '공명등(孔明燈)'이라고도 불리는 등불은 본래 한족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전하던 도구였다.
과거 이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은 이민족의 침입을 거부하기 위해 적군의 목을 베던 습성이 있었다. 원주민의 눈으로 보면 눈엣가시였던 한족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습격을 받고서도 목숨을 부지했을 경우에는 일종의 신호로서 등을 하늘로 띄웠다. 등불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편지였던 셈이다.
대만의 부총통과 타이베이 현의 지사가 올 정도로 유명해진 핑시의 등불축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개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에서까지 고관대작의 명령을 들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등을 하늘로 올려 보내느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바빴다.
등불은 열기구와 같은 원리로 하늘을 날았는데, 기름으로 적신 작은 종이에 불을 붙이고 땅에서 서서히 팽창시키면 공기가 어느 정도 찼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하늘로 들어 올리면서 손을 놓으면 등불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빠르게 비상하던 등불은 일정한 고도에 이르면 속도를 줄이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반딧불이인지 유난히 밝은 별인지 분간할 수 없던 등불은 점차 멀어지더니 잠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자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의 숫자는 지상에 모여든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아졌다. 간절한 소원이 적힌 등불은 밤을 밝히고,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었다.
축제의 백미는 수십 개의 등불을 동시에 날리는 장면이다. 카운트다운을 하며 관람객의 숨을 죽이던 현장에서 한꺼번에 탄성이 터질 때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해야 한다. 하늘을 덮어버릴 것처럼 환한 불빛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지며 훨훨 날아갔다.
등불은 동시에 출발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더니 하늘에 무질서하게 선을 그어댔다. 지상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색상이 달랐지만, 하늘에 오른 이상 색깔은 무의미했다. 등불이 제멋대로 그린 그림의 내용은 현대 추상화만큼이나 형이상적이고 알 수 없었다.
'등불이 높이 날자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진다(天燈高飛 美夢成眞)'는 축제의 문구처럼 하늘을 수놓는 등불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핑시를 방문한 가족이나 연인은 염원을 담은 등불과 작별하면서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정성 들여 키웠던 애완용품을 손에서 떠나보낼 때 느끼는 슬픔과 유사한 감정을 경험하는 듯했다. 그들은 천국으로 쏘아올린 등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하늘을 응시했다. 모두의 가슴에는 자신이 띄운 것이 무사히 비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가끔 등불의 종이가 타서 높이 날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녀석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기도했던 내용은 하늘까지 전달됐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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