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음악 들으며, 햇살 이불삼아~ 봄볕 여행

피나얀 2007. 3. 8. 19:11

 

출처-[경향신문 2007-03-08 11:15]




오후 2시. 졸리다. 나가고 싶다. 밖엔 봄이 왔다는데 사무실은 아직도 한겨울 그대로다. 점심시간에 잠깐 맛본 봄볕은 달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현관 앞에서 ‘해바라기 하던’ 우리는 가엾은 비둘기 떼 같았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양지바른 들판 한평. 길게 드러누워 잠시 졸고 싶다. 봄볕을 이불 삼아 몸에 두르고. 그렇게 고요해지면 비로소 계절이 바뀌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이번 주말엔 꼭 시간을 내서…확 이대로 나가버릴까?

 

▶미술관 옆 정원, 희원

 

에버랜드 옆에 이런 곳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앞마당인 ‘희원’은 전통 정원이다. 에버랜드 코앞이어서 오히려 좀처럼 붐비지 않는다. 에버랜드는 가도, 자동차로 5분 거리인 희원은 안 간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한적하다.

 

미술관과 희원을 합쳐 2만여평.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겨놓은 공간이 하나씩 나타난다. 돌장승 벅수가 나무인 양 서 있는 대나무길이 특히 예쁘다.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의 작품 9점을 모아놓은 부르델 정원은 미술관의 자랑거리. 테라스가 딸린 찻집은 봄볕 받으며 졸기엔 딱 좋겠다. 철제 의자가 ‘고상한’ 전체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지만. 커피 3500원, 한방차 6000원.

 

사실 봄볕 아래 게으름 피우기엔 희원 앞 호숫가가 좋다. 험상궂거나 우스꽝스러운 석상들을 따라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다. 도시락 먹고 책 읽을 수 있게 돌탁자와 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에버랜드 직원들도 김밥과 치킨을 싸들고 여기로 점심 소풍을 나온다. 에버랜드 류정훈 대리는 “4월말 벚꽃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며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이 지기 시작할 때 오면 희원과 산 전체가 벚꽃으로 덮인다”고 귀띔했다.

 

▲오전 10시~오후 6시 개관. 월요일 휴관.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이 있으면 무료다. 미술관은 오는 19일부터 4월2일까지 임시 휴관한다. 희원은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휴관 기간 동안 입장료는 반값이다. 에버랜드에서 희원까지 매시 정각 셔틀버스가 다닌다. (031)320-1801 www.hoammuseum.org

 

▶양수리 세미원


경기 양평군 양서면, 즉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은 양평군·환경부·우리문화가꾸기회가 함께 만든 연꽃과 물의 정원이다. 연꽃은 지난 가을 지고 없지만, 박수치듯 반짝이는 물에서는 제법 봄냄새가 난다. 시멘트나 철조망 없이 땅과 강이 바로 닿아있다. 맞은편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다.

 

기존 비닐하우스 실내 전시관에 야외 정원을 추가해 지난해 6월 확대 개장했다.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야외 공간엔 연못이 6개. 도자기, 토기, 장독대는 여름엔 분수로 변신한다. 맷돌, 빨래판 모양의 돌은 보행로라는 표시다. 야외의 연꽃은 6월부터 9월까지 피지만 비닐하우스 ‘수련 전시관’에는 지금도 연꽃이 가득하다. 한해 내내 꽃을 볼 수 있도록 실내온도를 20도로 맞췄다.

 

세미원의 연꽃은 100종이 넘는다. 이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물을 맑게 하는 연꽃을 심어 수질을 정화하는 ‘실험’ 중이다.

 

두물머리 입구 ‘석창원’도 세미원의 일부다. 비닐하우스 외관은 허름하지만 내부는 창포가 가득한 봄 정원이다. 구불구불한 인공하천을 만들고 20여개의 대나무 의자와 소반을 놓은 ‘유상곡수’ 공간이 눈에 띈다. 찻잔을 연잎에 올려 물에 띄워 보내며 시 한수씩 읊는 전통문화를 재현한 것. 대단한 풍류다. 석창원은 자연 관련서적 2500여권을 비치한 도서관이다. ‘침묵’이 원칙. 1일 60명만 받는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관람조건이 까다롭다. 예약자만 받는다. 음식은 먹을 수 없으며 쓰레기통도, 자판기도 없다. 하이힐이나 구두는 현장에서 고무신으로 갈아신어야 한다. 습지에 조성해 땅이 내려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삼각대도 세울 수 없다. 관람료는 무료. 일부 공사중이어서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다소 불편하다. 6번국도 신양수대교를 지나 양수리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두물머리 직전의 양서문화체육공원이 세심원 입구다. 오전 9시~오후 6시 개관. 월요일 휴관. (031)775-1834 www.semiwon.or.kr

 

▶구리 동구릉


돗자리와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가볍게 놀러가기엔 왕릉이 최고다. 대대로 정성들여 가꾼 숲에 왕릉과 부속건물 몇 채뿐. 그냥, 호젓하게 산책하기 좋다. 서울 근교에서도 가장 큰 왕릉인 동구릉은 무려 59만평. 왕릉만 9개다.

 

동구릉엔 국사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왕들이 많다. 동구릉의 핵심인 건원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무덤이다. 세종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모두 겪은 운 나쁜 선조, 조선 ‘르네상스’를 이끈 영조도 여기 잠들어 있다. 동구릉 산책로는 3.7㎞.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입구 수릉과 현릉은 부속건물 수리 중이다.

 

소나무 아래는 제법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선뜻 드러눕기엔 망설여진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헐거워지면서 밟을 때마다 물컹거린다. 숲보다는 왕릉 주변에 자리를 잡을 것. 도시락은 먹어도 좋지만 쓰레기는 되가져가야 한다.

 

▲오전 6시~오후 6시30분 개관. 문닫기 1시간 전까지만 표를 살 수 있다. 월요일 휴관. 성인 1000원 어린이·청소년 500원. 서울외곽순환도로 구리IC에서 가깝다. 수도권 광역전철 1호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로 5분 거리다. (031)563-2909 http://donggu.cha.go.kr

 

▶뭘 준비할까

 

◇낮잠 30분

 

‘15분 이상, 30분 이하.’ 봄볕 여행에 낮잠이 빠질 수 없다. 잠깐의 낮잠은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긴 낮잠은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밤잠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오후 3시 이전에 자둬야 한다. 배를 덮을 작은 담요가 있으면 챙겨둘 것. 머리는 시원하게, 배는 따뜻하게 자는 것이 좋다. 담요가 없으면? 재킷이라도 덮자.

 

◇책 한권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은 봄나들이에 가볍게 가져갈 만한 책으로 ‘동물원에 가기’(알랭 드 보통),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헤르만 헤세), ‘타샤의 정원’(타샤 튜더 외)을 추천했다. 교보문고 강남점 김현숙 북마스터는 20~30대가 여행지에서 볼 만한 책으로 가벼운 일본소설 ‘마미야 형제’(에쿠니 가오리) ‘아주 사적인 시간’(다나베 세이코)과 ‘굿바이 게으름’(문요한), 우리 시대의 명사 15명이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정호승 외)을 꼽았다.

 

◇음악 한곡

 

MP3 플레이어엔 어떤 곡을 담아갈까. 김연우의 목소리는 봄날과 썩 잘 어울린다. 지난해 발매된 3집 가운데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사랑한다는 흔한 말’ 추천.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가사가 이어지는 이한철의 ‘슈퍼스타’도 좋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입술이 달빛’, ‘소울풀한 노라 존스’라 불리는 코린 배일리 래의 ‘풋 유어 레코즈 온’도 마음을 어루만진다. 지난해 한국 재즈의 수확으로 평가받는 배장은 트리오의 데뷔 음반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