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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설중매, 그 설레는 만남

피나얀 2007. 3. 8. 20:02

 

출처-[오마이뉴스 2007-03-08 09:21]



▲ 설중매, 그 설레는 만남
ⓒ2007 서종규

3월 7일(수) 출근길에 눈발이 날려서 가슴이 설렜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열망했던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앞섰던 것입니다. 조금 급하게 차를 몰았습니다. 눈발은 계속 흩날리는데 길에 내린 눈은 금방 녹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나무에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인다면 교정에 핀 매화꽃 위에도 눈이 쌓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이 쌓인 매화꽃을 만나다니, 그 황홀한 기대에 출근길이 그렇게 길었는지 모릅니다.

▲ 홍매화 위에도 눈이 쌓였고
ⓒ2007 서종규

바람은 거세지 않았고 눈발은 차분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매화꽃 위에 눈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매년 봄이면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그 순간이 내 앞에 현실로 다가오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설중매, 꽃잎들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서러울 것 같이 청순한 푸른 매화 꽃잎이 쌓인 눈 아래에 꿋꿋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꽃잎이며 수술과 암술 모두 당당하게 그 얼굴을 드러내며 눈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 평생 그리워하던 눈이 쌓인 매화꽃을 만나다니,
ⓒ2007 서종규

금년의 매화 소식은 너무 일찍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이제 매화가 다 피었다가 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남도 섬진강 하구 광양 매화마을의 꽃소식이 너무도 일찍 전파를 타고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매화 한 번 제대로 찾아볼 여유도 없이 전해진 매화 소식에 그렇게 지나버린 세월 따라 내 자신의 바쁜 삶을 되돌아 볼 여유도 없었던 것이지요. 매화가 피었다면 이제 벚꽃이 필 때인가 하는 의문도 가져보지 못하고 또 세월의 줄달음에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것이지요.

▲ 아아, 눈이 쌓인 매화 꽃망울이 더욱 사랑스러워라.
ⓒ2007 서종규

이어 만개해버린 목련의 하얀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소식에 '어?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고개 한 번 갸우뚱거리고 또 다시 앞만 보고 내달렸던 것이 아니던가요? 상상이 가는가요? 노래로 불렀던 목련은 분명 4월에 피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분명 봄꽃 중에서 가장 일찍 핀다는 산수유꽃도 3월 중순 정도에 피었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매화도 3월 중순이 넘어야 피어났던 것이고요. 하얀 목련은 분명 4월이 다 되어서 피었던 것이지요.

그랬던 것이 금년 겨울은 너무 따뜻하여 자연이 일찍 깨어난 것이지요. 눈도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았고, 한강 물도 얼지 않았다는 소식이며, 너무 따뜻한 겨울로 지구 온난화의 재양이 시작되었다고 야단이기도 하기도 하고요.

▲ 홍매화 위에 쌓인 눈은 평생 처음 만나는 감동
ⓒ2007 서종규

우리 학교 교정의 매화나무도 신입생 입학식을 맞추어 서로 다투듯이 꽃망울을 터뜨렸답니다. 매화가 학교를 상징하는 꽃인 덕분에 교정에는 청매화, 백매화, 홍매화 등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년 같으면 3월 중순경에나 피어나던 그 매화가 신입생 입학식에 맞추어 청순한 꽃을 피우니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따뜻한 봄 때문에 자연의 질서마저 앞당겨진 현실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구요.

▲ 눈 속에 핀 매화꽃을 설중매(雪中梅)라고 하지요.
ⓒ2007 서종규

그런데 갑자기 중국 대륙에 폭설이 내려서 난리가 났다더니만, 호남지역에도 많은 눈이 내렸답니다. 물론 높은 산에 쌓인 눈은 하얗게 그대로 있었지만 평지에 내린 눈은 대부분 금방 녹아버렸지만요.

광주지역에도 눈발이 날리는가 싶더니 금방 녹아버리더군요. 그래도 혹시나 하고 카메라를 들고 다녔답니다. 내 평생 눈이 내릴 때 핀 매화를 보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아니 매화가 피었을 때에 눈이 내렸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꽃 위에 쌓인 눈은 보지 못했어요.

선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설중매를 그리워하고 있었지요. 아니 눈에 덮인 매화꽃 사진을 한 번 찍어보고 싶은 열망이 늘 가득했겠지요. 그런데 눈에 덮인 매화꽃을 만나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대부분 3월 중순이 넘어서 피는 매화에 눈이 내리는 것은 쉽지도 않고요. 또 눈이 내린다고 해도 3월에 내린 눈은 금방 녹아버리기 때문에 매화꽃 위에 눈이 쌓이지가 않거든요.

▲ 아뿔싸 눈발이 날리면서 렌즈에 김이 가득 서린 것도 모르고 설중매를 계속 찍었답니다.
ⓒ2007 서종규

그래서 그 눈이 쌓인 매화꽃 사진을 한 번 찍어보고 싶은 열망으로 매년 매화 필 무렵에는 기대를 하며 사진기를 들고 있다가 그냥 보내버린 해가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답니다. 봄눈 녹는 속도만큼이나 내 나이도 흘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매화꽃이 피면 눈이 오지 않고, 눈이 오면 매화꽃은 피지 않았던 봄의 모습은 계속되었답니다.

눈 속에 핀 매화꽃을 설중매(雪中梅)라고 하지요. 고매한 선비정신에 비유돼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그림이나 시 속에 많이 등장하여 칭송받던 꽃이랍니다. 그런데 사실은 설중매를 보기가 쉽지 않답니다.

▲ 눈이 쌓인 홍매화는 더욱 운치가 있답니다.
ⓒ2007 서종규

매화는 입춘 근방에 피는 꽃인데, 그 절기라는 것이 중국 기준이어서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더 늦은가 봅니다. 더구나 중국 강소성, 절강성 등 강남지방에는 매화가 더 일찍 피는데 이 매화를 설중매 또는 한매(寒梅)라고 말한답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나라에는 설중매가 없는 것입니다. 간혹 사진으로 보도되는 설중매는 봄에 핀 꽃에 눈이 내렸을 뿐 겨울 눈 속에서 피는 중국 강남지역의 설중매는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국의 설중매를 선망한 조선시대 선비들은 화분에 매화를 키워 겨우내 방안에 들여놓고 꽃을 피우기도 하였고요.

▲ 설중매, 고매한 선비정신에 비유돼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그림이나 시 속에 많이 등장하여 칭송받던 꽃이랍니다.
ⓒ2007 서종규

봄에 피는 매화꽃이래도 그 꽃 위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답니다. 아뿔싸 눈발이 날리면서 렌즈에 김이 가득 서린 것도 모르고 계속 찍었답니다.

늘 봄이면 그 청순하며 깨끗하게 다가오던 매화가 설중매로 변하여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 설렘을 무어라 표현할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답니다. 그 순간에도 평생 처음 만나는 감동이 하늘하늘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내려와 꽃잎 위에 계속 쌓였답니다.

▲ 그 청순하며 깨끗하게 다가오던 매화가 설중매로 변하여 눈앞에 나타났으니
ⓒ2007 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