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십 평생에 이런 눈은 처음 본다는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눈만 봐도 '넌덜증'이 난다고 하셨다. |
ⓒ2005 배지영 |
넉가래로 눈을 치우는 경비 아저씨는 육십 평생에 이렇게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은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날마다 쏟아지는 눈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아마 2m도 넘게 쌓였을 거라면서, 이제 눈 내리는 것만 봐도 '넌덜증'이 난다고 하셨다.
내가 살고 있는 군산뿐만 아니라 정읍이나 고창은 눈이 더 많이 내렸다. 70여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나 동물을 기르는 축사는 무너져 내려서 농민들은 내려앉은 비닐하우스처럼 폭삭 주저앉아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네들을 차마 못 볼 정도다.
영광에 사시는 친정 아빠가 "아빠 엄마는 무사하다. 딸 운전 조심해라"는 문자를 보내실 만큼,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은 위협적이다. 술을 많이 드셔서 돌아가신 친척 할아버지를 붙잡고, 친척 할머니가 "이 죽일 놈의 술, 이 죽일 놈의 술"하신 것처럼, 14일째 내리는 눈은 '이 죽일 놈의 눈'이다.
▲ 열나흘 째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런 모습이다. 눈 안 쌓인 날이 없다. |
ⓒ2005 배지영 |
아이는 유치원에 걸어갈 때마다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엄마, 혹시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내리는 게 아니고, 우리가 잘 때에 큰 덩어리가 막 내려오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아이라서 눈을 고달프게 보지 않고 재밌어 한다. 내가 유치원 지각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아이는 눈 위에 드러누워 눈도장을 찍고, 나무 아래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나는 할 수 없이 나무를 흔들어서 눈을 폭포처럼 쏟아지게 만들어 주고, 눈싸움을 해서 일부러 쓰러져 준다.
하지만 일터를 오갈 때는 문제였다. 차를 놓고 나가면 택시가 안 잡힌다. 걸어 다니자면 그 거리가 멀다. 오전 11시쯤이면 큰 길에는 눈이 녹아서 차를 갖고 나간다. 저녁이면 길은 또 빙판이 되어서 10분쯤이면 넉넉히 집에 올 수 있는데 40분쯤 걸리기도 한다.
▲ 유치원에 걸어가는 아이. |
ⓒ2005 배지영 |
우리 시댁은 차로 20분 거리지만 지금은 아주 먼 곳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내가 볼 일이 있어 시댁에 잠깐 가겠다고 하니까 눈 녹을 때까지 절대 오지 말라고 하셨다. 진짜 고립 생활이 따로 없다. 주로 노인들이 사시는 시골에 환자라도 생기면 정말 큰일이 나고 말겠다.
나 어릴 때 우리 동네는 논과 밭을 모두 경지 정리한 적 있다. 포클레인으로 파헤쳐놨는데 그냥 논이고 들이었던 곳 속에 엄청나게 깊은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꽤나 강렬했나 보다. 그 뒤로 몸이 아플 때면 꼭 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거의 아프지 않아서 3년에 한 번 꼴로 감기에 걸릴까 말까 한다. 하지만 만약 아프게 된다면, 나는 올 겨울이 꿈에 나타날 것 같다. 펑퍼짐하고 포근한 눈 속에 숨어 있는 빙판. 내 차는 길 위에서 미끄러지고, 할 수 없이 차를 두고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자빠진다. 내 턱은 안 깨졌지만 무안해서 벌떡 일어나야 하는 꿈.
▲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일터로 오가는 차들. |
ⓒ2005 배지영 |
▲ 도로는 염화칼슘을 뿌려서 눈이 녹지만 인도는 계속 눈이 쌓인다. |
ⓒ2005 배지영 |
/배지영 기자
덧붙이는 글
정읍,
고창, 군산, 부안은 거의 날마다 대설주의보와 대설 경보가 내렸습니다.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고, 일기 예보에서는 내일도 눈이 내릴 거라고
합니다.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2005년 12월 17일 (토) 17:04 오마이뉴스
'♡PINAYARN™♡ 【TODAY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DAY 스크랩】 SBS‘좋은 아침’은 ‘연예인의 사생활 아침’ (0) | 2005.12.17 |
---|---|
【TODAY 스크랩】 年 4%대 정기예금 속속 출시 (0) | 2005.12.17 |
【TODAY 스크랩】 "제발 도와주세요."국제전화를 통한 탈북여성의 절규 (0) | 2005.12.17 |
【TODAY 스크랩】 추악해지는 황우석 파동..`국민들 고통스럽다` (0) | 2005.12.16 |
【TODAY 스크랩】 파손ㆍ분실…무성의 택배 짜증나요 (0) | 200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