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만드는 것 내가 하면 안 되나?… 응?… 내가 하고 싶은데… 나도 할 수 있는데… 엄만 좋겠다. 하고 싶은 것 이것저것 다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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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념이 골고루 묻도록 잘 섞어 주어야 하지" | |
ⓒ2006 김현자 |
주방에서 무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예사로 와서 기웃거리는데, 사내아이인 첫째와 계집아이인 둘째는 반응이 각각 다릅니다. 첫째는 빨리 먹는 것이 우선이고 둘째는 어떻게든지 음식 만드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말을 요리조리 돌리고, 직접 해볼 수 있는 구실을 만들 궁리를 합니다.
도심을 막 벗어난, 논과 밭을 볼 수 있는 곳에 살다보니 이즈음이면 겨우내 땅 속에 묻어 두었던 무를 몇 개씩은 얻곤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깍두기를 담글까? 남편이 좋아하는 생채를 할까?
그러나 몸살로 혓바늘이 돋은 핑계를 삼아 무를 좋아하는 제가 실컷 깎아 먹었습니다. 무를 실컷 깎아 먹은 덕분인지 혓바늘이 다른 때보다 쉽게 가라앉았습니다. 겨우내 땅 속에 있으면서 노란 싹을 틔우고 솜털 같은 뿌리를 촘촘히 뻗어 낸 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맛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무를 맛나게 깎아먹고, 이젠 더 이상 미루면 무에 바람이 들어 무얼 하든 맛없겠다 싶어 남은 무 5개를 설거지 끝에 씻어 툭툭 큼지막하게 잘랐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깍두기를 담글 요량으로요.
자랄 때, 어머니는 조그맣게 잘라 깍두기를 담갔는데(지금도 여전한데), 서울에 와서 처음 만난 어느 설렁탕집의 인절미만한 깍두기를 보고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저도 먹고 자란 대로 제 엄지손톱만하게 잘라 담갔는데, 자라나는 아이들 입 크기를 따라 조금씩 커지다가 이제는 저희 집 깍두기도 아이들 나이만큼 성장하여 어지간히 큼지막합니다.
"엄마, 이제부턴 제가 김치 담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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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엄마 있잖아요. 이다음에는 처음부터 제가 네모지게 잘라서 깍두기 만들면 안돼요? 그리고 다른 김치도 내가 만들어보면 안되나?"
"그러고 싶어? 그럼 다음에는 그렇게 할까? 그럼 이제부턴 수연이가 김치 담그는 거야. 그리고 김치는 '만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담근다'고 하는 거야."
"와~! 그럼 나 이 깍두기 특별하게 많이 먹어야지. 밥 먹을 때마다 이것만 먹어야지."
"… 왜?"
"그래야 얼른 또 깍두기 담그지 뭐. 와~! 이젠 내가 처음부터 김치 만들 수 있다! 엄마, 이제부턴 제가 김치 담글래요."
아이는 제 손보다 훨씬 큰 일회용 장갑을 끼고서도 척척 야무지게 해냅니다. '저렇게 좋을까?' 싶습니다. 얼굴에 뿌듯함이 물씬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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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꼭꼭' 눌러 담아야지. 그리고 다 담고 나선 생수로 양념그릇을 둘러서 얌전하게 붓는 거야"..아이는 시키는 대로 야무지게 해내었습니다. |
ⓒ2006 김현자 |
지난 여름부터, 일요일이면 한 아이씩 번갈아 데리고 주방에서 밥 준비를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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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두기, 담가보니 재미있습니다" | |
ⓒ2006 김현자 |
처음에 사내 녀석인 첫째는 무척 어색해했고 하기 싫어했으며, 제 딴에는 한다고 하는 모양인데 왜 그렇게 어색하고 엉성하던지. 게다가 설거지까지 한번씩 하라고 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곱지 못한 눈길에는 불만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번씩 싫은 눈치가 보이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익숙해졌고, 이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는 눈치입니다.
매일 해먹는 음식은 물론 조금 특별한 음식이나 녀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옆에 오도록 하여 알려주면서 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귀찮아하면서도 음식이 되어가는 것을 신기해하다가 이제는 제가 주방에서 무얼 하는가 싶으면 와서 기웃거리며 관심을 두고 해보고 싶어 하고, 저어도 보고 그릇에 담고...
지난해 여름방학 내내 아이들은 마당에 널어둔 빨래를 스스로 걷어 차곡차곡 접어두곤 하였습니다.
전 시골서 자라면서 집안일을 예사로 하고 자라서 그런지 일을 앞에 두고 무서워하지 않는 편입니다. 열 살 남짓할 때부터 밥을 하고 김치를 담그며 자랐기에 반찬도 어지간하면 입맛에 맞게 해내는 편이어서, 형제들끼리 모였을 때 냄비바닥 드러낼 만큼은 해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 어깨 너머로 배워 예사로 하였던 집안일은 살아오면서 일을 앞두고 어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의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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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든 쿠션입니다.선생님께서 멋있다고 말씀하셨고 영광의 A를 주셨지요.어때요?-아이 홈피에서 <펌> | |
ⓒ2006 김현자 |
참, 그러고 보니 첫째가 아끼는 것 중에, 엄마와 동생이 십자수 할 때 저도 하고 싶다고 옆에서 꼬물거리며 네잎 클로버를 십자수한 열쇠고리와, 지퍼까지 달아 만든 작은 쿠션이 있습니다. 녀석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하고 대견한 듯,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엄마, 이것 참 잘 만들었지요? 이것 오래 오래 가지고 있다가 이담에 장가 갈 때 가지고 가서 우리 애들에게 자랑하고 물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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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04 16:07]'♡피나얀™♡【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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