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16명이란 충격적인 수치는 출산기피 풍조에다 불임
증가의 합작품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불임부부는 140만 쌍. 기혼 여성의 불임률은 13.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쪽에선 아이를 안 낳아
걱정인데, 또 한쪽에선 아이를 못 낳아 걱정인 꼴이다.
지난주 불임여성 동호회 '아가야'(agaya.org) 회원들을 만났다. 2001년 인터넷 커뮤니티로 시작된 '아가야'는 현재 국내 최대 불임 관련 동호회로 커졌다. 회원수 8600여명에다 전국 6개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이 있으며, 최근엔 서울 석촌동 한 상가건물에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불임(不妊)'이란 말 대신 '난임(難妊)'이라고 해주세요. 임신이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이들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울한 분위기 싫어요"
운영자 박춘선(39)씨가 2001년 '아가야'를 만든 이유는 "기존 불임 동호회들의 어두운 분위기가 싫어서"였다. 두 차례 유산을 하고 불임치료를 받느라 심신이 지쳐 있던 박씨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동호회를 찾았지만 도리어 짜증만 더해졌다. '울고 불고 하지 말고 씩씩하게 아기를 기다리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래서 직접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박씨는 "'아가야'가 여러 명 살렸다"고 자랑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회원들이 '아가야'에서 서로 아픔을 주고받고, 정보도 나누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면서 우울해할 틈이 없어졌단다.
2년 전 자궁외 임신으로 유산한 뒤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 있는 박소영(38)씨는 "한동안 출근하는 남편을 못 나가게 막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젠 천연비누 전문가 과정까지 배우며 바쁘게 산다. 학구열에 휩싸인 '아가야' 분위기 덕분이다.
'동병상련'도 회원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힘이다.
"아이가 없으면 기존 친구 모임에서도 소외되기 일쑤죠. 가족 동반 여행에 슬쩍 빼놓기도 하고, 돌잔치 하면서 연락도 안 하는 경우가 다반사고요. 제 마음이 혹 상할까 배려해서라는데 그래서 더 섭섭해요." 결혼 4년차 주부 이지영(31)씨의 설명. 이씨 역시 두 차례 유산을 겪은 뒤 불임치료를 받고 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아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있다는 김연희(29)씨도 한마디 거든다. "새로 사람 사귀기도 힘들어요. 주부들 대화라는 게 '어느 유치원이 좋아요?''짐보리는 괜찮아요?' 등 아이 얘기 중심으로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아가야'회원들은 만나면 금세 '언니''동생'하는 사이로 친해진다. 친구나 동서.동생의 임신 소식에 서늘해진 가슴을 어떻게 달랠지 하소연도 하고, 아이 없는 걸 은근히 깔보며 속을 벅벅 긁어놓는 이웃의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처세법도 나눈다. 또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은 함께 등산도 간다.
"'저 여자 애 못 낳는데…'라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사는 모습 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딩크족도 있고, 싱글족도 있고 삶의 모습이란 게 다양하잖아요." 세상을 향한 이들의 요구다.
#"바이러스를 받자"
'아가야'에서 가장 기쁜 일은 물론 회원들의 임신 소식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임신 성공 소식이 오르면 '바이러스 받아가요'란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여기서 '바이러스'란 '임신의 기(氣)'를 뜻하는 이들만의 언어다.
임신한 회원들은 '하루 30분 이상 걷기, 사골국물 하루에 한
사발씩 마시기, 석류 엑기스 매일 먹기, 두유.잣.칼슘제.엽산 매일 먹기…'등 성공비법도 빼곡하게 올려놓는다. 최근엔 미국에 사는 한 회원이
'아가야'사이트에 적힌 성공비법을 그대로 따라 한 뒤 잠깐 귀국,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입양을 결정하는 회원들도 많다.
"국내 입양 가정의 80~90%는 난임 가정"이라는 운영자 박씨는 "입양이 더 활성화되려면 입양비용 300여만원의 부담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300만원이 있으면 '이 돈으로 시험관아기 시술 딱 한 번만 더 해 봐야지'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란다. 박씨는 "남편과 시부모님은 입양을 권하지만 폐경 때까진 노력해 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저출산 대책요? 우린 섭섭해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란 가족계획 표어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요즘엔 '출산장려운동'이 한창인 듯하다. 아이를 낳으면 축하금.보조금도 주고, 예금금리도 올려준단다. 또 보건복지부에선 불임부부 지원책도 내놓고 현재 시험관아기 시술 대상자 신청을 받고 있다. '난임'부부 입장에선 희소식 아닐까.
하지만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섭섭함을 풀어놨다.
"무자녀 불임부부뿐 아니라 유자녀 불임부부(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서만 임신할 수 있다는 산부인과.비뇨기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은 부부)도 지원하기로 했거든요. 현재 점수 계산법으로는 나이 많은 무자녀 불임부부들이 나이 적은 유자녀 불임부부보다 지원자로 선정되기가 불리해요. 무조건 출산율을 높이려는 목적만 있지, 불임부부의 고통엔 관심이 없는 정책이에요."
'아가야'게시판에도 "여기서도 자식 있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니, 정말 자식이 무기인 모양" 등 복지부 정책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불임시술 보험적용도 '아가야'의 숙원사업이다. 지난해엔 85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보험적용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불임 시술을 받기 시작하면 대부분 1000만원 이상 돈이 들어가요. 친정이나 시댁에 손을 벌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불임시술은 성형수술이 아니잖아요. 왜 보험혜택을 못 받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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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2006-03-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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